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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가 어느 날 첫사랑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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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리
131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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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가 결혼식인데, 약혼자가 전 여자 친구이자 첫사랑을 데려왔다. 둘이 같이 서 있는 꼴을 다시 볼 줄은 몰랐기에 꿈일까 했는데. “임신 삼 개월째야. 결혼식은 취소하고 약혼은 파기했으면 하는데.” 그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을 하고 일방적인 약혼 파기를 요구했다. “배가 불러 오기 전에 약혼식 먼저 끝내야 해서.” “굳이 식까지 올리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칼라일.” 그의 옆에서 그의 아이를 밴 여자가 수줍게 웃는다. “파혼장은 저택에 돌아가자마자 보낼 테니 서명만 해 주면 돼, 아일린.” 언제고 내 것이었던 그의 품에 이제 다른 여자가 있다. *** 고작 종이 한 장으로 오 년의 시간은, 우리 사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으윽.” “뭐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검 하나 맞받아쳤다고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그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그랬을 터였다. “……아일린, 정말 미안해. 내게는 언제나 너뿐이었어.” 그래, 무릎을 꿇고서 내게 빌어 오는 칼라일이 아니었다면, 그것으로 끝이었을 텐데.


1화.

그러니까, 칼라일이 이상해진 건 약 이주 전부터였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짝사랑해 온 그와 사귄 게 3년, 약혼한 지 2년. 함께한 지 도합 5년.

그 세월 언제나 한결같았던 그가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시점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세라, 나 오늘도 저택에 있을 거야.”

느닷없이 들리는 담담한 목소리에 막 목욕물을 준비하던 세라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아일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팔랑거리는 종이를 들어 보이며 천진하게 웃었다.

“오늘 약속도 취소하자고 하네?”

“……백작님이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요.”

“그러게. 결혼식이 2주밖에 안 남았는데. 그치?”

싱글거리며 웃고는 있지만 속이 타들어 가는 걸 세라가 모를 리 없었다.

세라는 백작에게 한바탕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삼키며 의례적인 변명거리를 느릿느릿 읊었다.

“결혼 직전에 이것저것 마무리하느라 바쁘신 거겠죠. 길게 휴가도 내고 그러려면…….”

“그런 걸까.”

“그런 거겠죠. 백작님이 어디 보통 분인가요!”

원래 넣으려던 라벤더 꽃잎 대신 새빨간 장미를 욕조 안에 뿌려 대며 세라가 단호하게 외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라 또한 요즘 미묘한 기류를 느끼고 있긴 했다. 아일린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며 지난 5년간의 연애를 지켜본 게 바로 그녀였으니.

아가씨의 연인이 저런 식으로 약속을 취소하는 건 그녀 또한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러니 제 아가씨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수밖에.

세라는 애써 불길한 생각을 떨쳐 내며 곧 있을 아가씨와 백작의 대련 약속을 떠올렸다.

“곧 아가씨와 백작님의 정기 대련이 있잖아요. 우리 기다려 봐요, 아가씨.”

이건 설마 취소하지 않겠지. 그러나 이 또한 오산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 * *

그 이야기가 오간 바로 다음 날. 칼라일의 보좌관이 직접 저택으로 찾아와 모레 있을 대련 약속을 취소하자는 상관의 말을 전달하고 갔다.

요즘 갑자기 바빠진 바람에 저택을 자주 비우게 되었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아일린을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며.

“대체 요즘 에이버그 백작님, 왜 그러시는 거죠?”

드디어 참다못한 세라가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쥐며 화를 냈다.

그래, 많이 참았지. 그간 세라가 그녀의 눈치를 보느라 성질을 죽인 걸 생각하면.

“이제 결혼식이 코앞이라고 마음을 놓은 걸까요? 백작님은 다를 줄 알았는데!”

세상에 믿을 남자 하나 없다며 세라가 분노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일린은 바람 빠진 웃음을 내뱉으며 세라를 다독였다. 이제는 농담처럼 빈정거릴 힘도 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봐. 아니면 결혼 전에 가끔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칼라일이 그런 건가?”

“백작님이요? 그건 좀.”

세라가 질색을 하며 대꾸했다. 아일린은 쓰게 웃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만간 칼라일에게 한번 가 봐야겠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직접 들어야지.”

“잘 생각하셨어요. 꼭 한마디 하고 오세요!”

“그래.”

그러나 그날은 오지 않았다. 아니, 올 필요가 없었다.

아일린이 찾아가기도 전에 칼라일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기에. 옆에는 아일린도 지극히 잘 알고 있는 여자를 대동하고.

조만간 찾아오겠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는지 칼라일이 사람을 통해 방문을 미리 알렸다.

대체 얼마 만에 그가 방문하는 건지. 아일린은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한편 약간의 긴장으로 경직된 가슴을 쓸어내리며 칼라일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주 더디고 빠르게 흘렀다. 응접실을 서성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 떨리는 집사의 목소리와 함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버그 백작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동시에,

“이게…….”

아일린은 저도 모르게 한숨처럼 터져 나오는 경악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주디스.

저도 모르게 입 모양으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저 당당하게 빛나는 새빨간 눈동자를. 아일린이 외로운 짝사랑을 이어 가는 동안 그의 옆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던 저 여자를.

고양이처럼 끝이 치켜 올라간 눈매는 변함없이 매력적이었다. 젖살이 빠지고 더 갸름해진 얼굴에는 그늘 한 점 없었고, 오른 눈 밑의 눈물점은 그녀를 더 매혹적으로 보이게 했다.

게다가 쇄골이 도드라진 가냘픈 어깨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반짝이는 눈빛까지.

아일린은 눈을 감았다 떴다. 다시 한번 그 이름을 되뇌었다.

주디스. 칼라일을 사랑한 이후 단 한 번도 잊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때때로 불쑥 아일린의 머릿속을 침범했던, 그의 첫사랑.

대체 왜 저 여자가 이곳에, 자신의 저택에, 다른 사람도 아닌 칼라일과 함께 있는 걸까.

쇳덩이로 머리를 얻어맞기라도 한 것 같은 충격에 사고가 멈추었다. 칼라일의 옆이라면 잘만 재잘대던 입술이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대체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현실이 맞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혹시 지난밤 그녀가 독한 위스키를 마셨는데 기억에 없는 건가? 그게 아니면, 칼라일이 마시기라도 한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약혼녀 앞에 전 연인을 데려올 수는 없으니까.

그것도 유일무이한 첫사랑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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