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취업전선에서 밀려난 역사학도. 헌터로 취직하는데 아이템은 유물 속에서 찾으란다. 그거 내 전공인데?!
1. 현실
금빛으로 일렁이는 물결이 내 몸을 감쌌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온몸에서 뻗어 나왔다.
내 몸을 가득 채운, 보석처럼 반짝이는 마나 방울들이 몸 안에서 나가려고 끓는 물처럼 방울방울 터져 올랐다.
몸 안에서 화산처럼 끓어오르던 마나가 뭉쳐져서 핵폭탄처럼 발화하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방안이었다.
내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 또 꿈이네.’
며칠째 비슷한 꿈을 꾸고 있다.
마나가 몸에 차오르고 터져 나오는 꿈.
나는 헌터가 아니고, 헌터가 사용한다는 마나를 직접 본 적도 없으니, 이건 뭐 그냥 꿈도 아니고 개꿈이라고 해야 하나.
시계를 보자, 벌써 오후 3시였다.
에이 씨. 또 지각인가.
나는 총알같이 튀어 일어났다.
분명히 알람을 맞춰 놓고 잤는데 이놈의 휴대폰이 문제인 건지 내가 문제인 건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자알 한다, 잘해. 또 지금 나가냐?”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방문 앞에 서 있다가 잔소리를 했다.
“너는 어제 지각해서 그렇게 혼났다면서 나아지는 게 없어?”
“진작 좀 깨우지. 깨우지도 않고 엄마는 잔소리만 해?”
엄마의 잔소리에 반사적으로 말대꾸를 하고는 즉시 후회했다.
“깨워? 니 동생은 새벽부터 서울 회사로 출근한다고 버스 타러 나갔는데 너는 대낮에 일어나서 코앞 가게로 출근하면서, 엄마가 깨워 줘야 해?”
엄마는 한층 더 커진 목소리로 화장실 밖에 서서 동생과 나를 비교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몇 시간 알바 하면서 그것도 시간을 딱딱 못 맞춰 가?”
‘아, 쫌만 참을걸.’
나는 순간 욱해서 엄마한테 말대꾸를 한 내 입을 때렸다. 상대를 하면 일이 더 커지는데.
“일찍 좀 자라니까 밤에 뭐하고 맨날 늦게 자다가 이제 일어나?”
‘안 들려. 안 들려. 아무것도 안 들려.’
나는 마음속으로 노래하듯이 중얼거리며 화장실 문 앞에 서서 투덜거리는 엄마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후다닥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았다.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입고 나왔다.
“잘 갔다 와. 무리하지 말고.”
문을 나서는데 엄마가 따라 나와서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속 뒤집는 소리를 퍼부어놓고 잘 갔다 오라니.
‘에휴.’
한숨을 쉰 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벽의 거울을 보며 뻗친 머리를 눌렀다.
누구를 탓하랴. 자업자득이었다.
역사를 좋아해서 사학과에 갔다. 좋아하는 역사 공부를 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성적도 우수했다. 좋아하는 유적을 답사하고, 유물을 감상하고, 고문서를 읽고,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며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런데 취업 준비를 하는 선배들을 보니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상당수가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 전공과 관련 없는 회사에 취직했다. 취업을 해도 어디에 취업했는지 잘 알려주지 않았다.
나 역시 졸업하고 나니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수백 곳에 서류를 넣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거의 없었다.
문과라도 경제학이나 경영학, 법학과 같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전하는 학과는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최첨단 과학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이미 지나버린 역사를 공부한 나는 그저 방구석 선비 취급을 받았다.
대학원을 간다고 해도 나와서 취업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대학원에 가는 선배들을 보면 대부분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살 만한 집 자식들이었다.
집 앞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2년 동안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역사학도를 뽑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동생도 나처럼 역사를 좋아했지만 내가 역사학과에 가서 취업 걱정을 하는 걸 보곤 재빨리 고등학교 때 이과로 방향을 틀었다. 동생은 사람의 역사가 아닌 동물의 역사, 진화생물학으로 전공을 정했다.
그 덕분에 동생은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에 일찌감치 동물제약회사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작은 차이가 지금의 동생과 나의 처지를 결정한 것이다.
동생이 먼저 취업한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2년째 취업이 안 되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우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밤마다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 보니 아침에는 번번이 늦게 일어나게 되고.
‘이상한 꿈이나 꾸고 말이야.’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야속하지만, 엄마도 내가 걱정되니 그러시는 거다. 뭐라도 대신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한숨과 말만 많아지는 거.
쓰린 마음을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1층 현관문을 나왔다.
입구에 아래층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젊었을 적에는 선녀 보살이라고 꽤 용한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었는데, 지금은 노망이 나서 헛소리만 한다는 할머니였다. 가족들의 괄시를 받는 할머니를 보면 왠지 내 처지하고 비슷한 것 같아서 짠한 마음이 들곤 했다.
할머니는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을 막다시피 앉아 있었다. 할머니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빠른 걸음으로 옆을 지나갔다.
“밤길 조심해.”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저요?”
“그래.”
할머니는 비죽비죽 튀어나온 흰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2024.08.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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