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프로 생활 내내 수비수, 그것도 센터백으로만 뛰었다.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
1화
프롤로그
프로 생활 내내 수비수, 그것도 센터백으로만 뛰었다.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
* * *
“형님, 꽃다발들 다 위로 올려드릴까요?”
차 문을 열어 준 매니저의 물음에 나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꽃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양이 너무도 많았다.
“됐어. 그냥 트렁크에 넣어 놔.”
“으음…. 이거 여기 계속 놔두면 상할 텐데요. 그래도 팬 분들이 주신 건데….”
매니저가 끝말을 흐렸다.
매니저의 눈빛 속엔 마치 생전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지.’
팬 서비스하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나는 팬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했었으니까.
“그냥 둬.”
차가운 내 말에 매니저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속으로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은퇴하니까 바로 변한 거 봐, 역시 가식이었구나.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오랜 팬들이 은퇴를 축하한다고 준 선물인 저 꽃다발들을 집으로 가져가기 싫은 진짜 이유가 있다.
“내일 뵙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형님!”
인사를 건네는 매니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나는 그대로 주차장에 있는 주민 전용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자동문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에 같이 탑승한 사람은 없었다.
띡!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카드 키를 찍었다.
이 펜트하우스 층은 보안상의 이유로 카드 키를 찍어야 추가로 문이 열린다.
이해는 하는데, 솔직히 귀찮을 때가 많다.
덜컥!
오랜만에 문을 열어서인지 문고리가 제법 퍽퍽했다.
그래도 문이 열리는 건 무척 부드러웠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커튼이 움직이며 창밖의 서울 도심 풍경을 비췄다.
나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 몸을 맡긴 채, 창밖 풍경을 빤히 바라봤다.
이 비싼 펜트하우스 꼭대기 층의 매력이 바로 이것이다. 한강을 비롯해 서울의 야경이 훤히 보인다는 것.
솔직히 이것 외엔 딱히 값어치를 하는 것 같지가 않다.
깨톡! 깨톡! 깨톡!
띠링! 띠링! 띠링!
알람을 풀자마자 폰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다양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내용은 다 비슷했다.
은퇴를 축하한다, 그간 고생 많았다 등….
죄다 내 은퇴와 관련된 얘기들이었다.
굳이 답장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답장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먼저 처리해야 하니까.
천천히 시선을 창밖에서 뗐다.
그러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 시야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을 불러냈다.
띠링!
축구를 포기해야만 했던 중학생에게 기회를 준 것도 모자라, 게임 시스템을 결합해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만들어준 바로 그것.
[AI ‘Wish’가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이내 홀로그램이 시야를 덮었다.
* * *
의사의 그 한마디는 내게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더는 축구를 해선 안 됩니다.”
의사가 부연했다.
수술을 해도 재발할 가능성이 크며, 무리를 하면 염증이 도져서 극심한 통증이 올 것이고, 진통제로 버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축구를 그만둬라.
중학교 2학년. 내게 있어 축구란 인생의 전부였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탈출구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런데 축구를 그만두라니?
“소식 들었다.”
“감독님, 전 뛰고 싶어요. 아픈 거 참고 뛸게요. 그러니 제발….”
“안 돼. 이건 널 위해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아니야, 이건 아닌 거야. 다른 꿈을 가져봐라. 그래도 넌 아직 어리니까 다른 길을 택해도 절대 늦지 않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축구 쪽 관련 업무를 해도 되잖아?”
축구부 감독은 그렇게 나를 축구부에서 내보냈다.
떼를 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하는 나를 몰래 도와주는 등, 이 감독은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으니까.
“엄마가 미안해.”
어머니는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당신의 잘못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가난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어릴 적 나를 두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그리웠다.
만약 이 순간 아버지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힘이 나지 않았을까?
허망함이 밀려왔다.
축구와 관련된 업무만으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피치 위를 누비고 싶었다.
직접 공을 만지고 차면서, 그렇게 땀을 흘리고 싶었다.
나는 내 자신을 제법 잘 알았다.
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기적이 찾아왔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만한 기적이.
[AI ‘Wish’가 당신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시야에 뜬 홀로그램.
푸른 창 위에 새겨진 글귀들.
우연히 봤던 한 웹툰에서 나오던 것과 대단히 흡사했다. 그 내용이나 시스템은 다소 다르긴 했지만.
이 신비로운 프로그램은 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그것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훌륭한 축구 선수가.
[Wish : 소원이 접수되었습니다.]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건 내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딱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종종 즐겨하던 PC 축구 게임.
그 게임의 선수 스탯창과 동일했으니까.
대가는 없었다.
다만 조건은 있었다.
1. 프로 축구 선수 생활 내내 중앙 수비수로 출장하는 시간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할 것.
2. 유럽 3대 1부 리그(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에 입단할 것.
3. 발롱도르 포디움(3위 이상) 안에 들 것.
처음엔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달성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기대는 이어진 인공지능의 말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Wish : 위 세 가지 조건을 은퇴 전에 모두 성공해야 합니다.]
[Wish : 성공 후 은퇴할 시 소원권이 추가로 지급되며, 이 소원권을 통해 현실을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2024.08.1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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