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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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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기류
95화무료 4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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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폭군이 될 황자를 잘 부탁해. 네가 스승이 되어서 말이야. 그 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 주기만 하면, 네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게 해 줄게.’ 죽음을 결심한 세진의 앞에 나타난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 영문도 모를 제안에 그와 영혼이 뒤바뀌고, 자그마치 20년 동안 폭군이 될 새싹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엇나가지만 않게 키우면 되겠지. 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금이야 옥이야 정성스레 돌봤는데, “스승님, 스승님이 좋아요.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 …얘가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유리,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못 들어줘. 너랑은 이어질 수 없는 결격 사유가 있거든.” …얼마 안 남았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의 영혼을 입은 세진의 육신이 붕괴하기까지, 앞으로 고작 2년. 죽음이 예정된 시한부 스승은 제자와 사랑에 빠질 수 없었다. 절대로.


1.

“스승님, 스승님이 좋아요.”

금발의 소년 황제가 스승을 보며 눈을 접고 웃었다. 초승달처럼 곱게 휜 눈썹 사이로 첫사랑의 기쁨으로 반짝이는 자색 눈동자가 보였다.

갓 스무 살이 되어 성인이 된 소년. 그 소년이 스승을 위해 구해 온 오색찬란한 꽃은 소년의 눈부신 미모에 미치지 못했다.

“나도 너를 아낀단다. 유리.”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여상한 말이었다. 스승은 제자를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폈기에 황제의 애정 표현이 익숙하기만 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무엇이 말이더냐?”

“제가 스승님을 좋아한다는 건,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솨아아. 둘 사이를 제법 거친 바람이 헤치며 지나갔다.

“나를…… 연애 상대로 본다는 말이냐?”

“예. 스승님.”

사랑합니다.

다섯 음절을 내뱉는 황제는 더는 소년 같지 않았다. 그의 나이는 이미 스물로, 어엿한 청년이었으나 아직도 앳된 얼굴 탓에 스승은 제자를 그저 소년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눈앞의 사내가 낯설었다. 스승인 그가 말도 못 하던 젖먹이 때부터 먹이고 키워 온 어린아이는 어디로 가고, 사랑받길 원하는 수컷 하나가 서 있는 것인지.

“……나는 네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다.”

어떤 술수도 없이 순수하게 진심을 맞부딪친 황제에게 스승은 축객령을 내렸다.

하나 황제는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였다.

“어째서입니까?”

“나는 너의 어린 시절부터 곁에서 너를 지켜 온 사람이다. 너는 지금 내게 연정과 익숙함을 혼동하여 떼를 쓰고 있는 것이야.”

“제가 그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를 바보로 보이십니까?”

젊은 황제, 율리시즈가 미간을 구겼다.

“제가 언제까지 스승님 앞에서 어린아이일 줄만 아셨습니까. 혼란스러울 적은 이미 지났습니다.”

“…….”

성장의 벽을 넘어 근사한 금발의 미남이 된 황제가 스승에게 화사한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스승님께 청혼합니다.”

“…….”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대답은 언제가 되어도 좋으니, 스승님께서 편하실 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백을 마친 젊은 황제는 귓불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자리를 피했다. 황제의 첫사랑이었다. 하늘하늘한 꽃잎이 흔들리는 봄의 정원에서, 황제의 스승은 그저 꽃다발을 들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어쩌려고 이러느냐.”

꽃잎을 실은 바람이 색이 다 빠져 바랜 듯한 백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황제의 스승, 클로드 하센티온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미안하지만 유리, 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성 지향성 이전에……. 너랑은 이어질 수 없는 결격 사유가 있다고.”

새하얀 머리의 남자는 제 머리카락처럼 흰 앞섶을 풀어 헤쳤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가슴팍에 그려진 시계 모양의 문신이 보였다.

12시 자정까지 남은 칸은 고작 2칸이었다.

“……얼마 안 남았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

한 칸의 수명은 1년씩이니.

고작 2년.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 아니 그 껍데기를 껴입은 남세진의 육신이 붕괴하기까지.

앞으로 고작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죽음이 예정된 시한부 육신의 스승은 제자와 사랑에 빠질 수 없었다.

절대로.

* * *

숨이 끊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차가운 물이 나를 삼켰다. 순식간에 폐부로 물이 차올라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저항하지 않고 다가올 죽음을 향해 몸을 늘어뜨렸다.

더는 살고 싶지 않았으므로.

* * *

“……어나!”

‘누구지.’

흐릿한 의식 속에서 겨우 생각했다. 낯선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일어나. 지금 네가 죽어서는 곤란하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아.

‘……나는 분명 물속으로 뛰어들었는데?’

멍하던 정신이 퍼뜩 맑아졌다. 뛰어내린 순간 피부를 매섭게 때리던 물의 감촉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필시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죽어서 저승에라도 온 것인가. 얼떨떨해하면서 눈을 힘겹게 뜨자 시야에 웬 백발의 잘생긴 외국인 남성이 보였다.

“드디어 일어났네.”

“……너 뭐야?”

“좋아. 역시 나는 운이 좋아. 영혼까지 소멸하기 전에 건질 수 있었다니. 휴, 잘못되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금색 눈동자를 찬란히 빛내는 남자는 내 목소리를 가뿐히 무시했다. 일어나라고 해 놓고서, 그는 태연히 자기 할 말만 지껄였다.

자살했으니 천국에 갈 수는 없었을 터. 그렇다고 악마라고 보기엔 외형만큼은 천사처럼 아름다운 남자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하, 이 완벽함이란.”

“야, 너 뭐냐고.”

나는 죽었다. 마지막 숨이 끊겨 주마등을 본 것까지 확실했다. 더구나 내가 눈을 뜬 공간은 온통 새하얗기만 해 절대 현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저승사자도 아닌 거 같은데.’

대체 뭐야?

천사같이 생긴 미형의 남자는 경계심 어린 내 얼굴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나는 너를 살리러 왔어.”

“……뭐?”

“정확히는, 너를 이용하기 위해서 찾아왔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걸까. 표정 가득 의구심을 떠올린 내 귓가에 남자가 속삭였다.

“소년, 자네 혹시 책 빙의라는 걸 하지 않겠나?”

그 말에 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인가?

* * *

나도 소설을 읽어 봐서 알았다. 책 빙의를 하는 주인공들은 꽤 많다는 것을.

하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우선 이 책부터 읽어. 너희 세계에서는 아주 흔한, 폭군에 관한 이야기지.”

“이걸 왜?”

“그거야 네가 그 책에 빙의해야 하니까?”

‘이 미친놈이?’

보통은 자신이 읽었던 책에 빙의하는 것 아니었나? 책 빙의를 시켜 줄 테니 다짜고짜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놈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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