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최선우. 너 키스 잘해?” 나긋하게 묻는 나의 질문에 최선우는 조용히 날 본다. 혹시 취한 건가 살피는 듯한데, 취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으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궁금해?” “응.” “그게 왜 궁금한데?” 최선우는 아주 담담히 내 질문에 답했다. 나의 뇌와 연결이 끊긴 몸뚱어리는 눈을 곱게 접어 최선우에게 미소 지었다. “너랑 키스하면 어떨까 생각했거든.” 솔직히 생각은 해 봤다. 웹툰에서 유하진이 최선우에게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꼴을 볼 때마다 최선우가 얼마나 좋길래 저럴까 싶었거든. 키스하는 내내 잔뜩 성질을 부리던 유하진의 그것이 진짜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게 당사자에게 확인시켜 달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는데. “그걸 왜 생각해?” “내 취향이거든. 너.” 아니요. 아니요. 내 취향이 아니라 유하진 취향인데요. 지금 유하진의 악령이 나에게 씐 거라면 당장 명석한 두뇌만 두고 떠나면 좋겠다. 하지만 실실 웃는 걸 보면 유하진일 리 없다. 그 새끼는 못 웃는 병에 걸렸거든. 그런고로 지금 이건 나의 무의식이 내뱉는 소리였다. “그래? 취향 독특하네.” “나 너랑 키스하고 싶은데.” “지금?” “응. 한번 해 보고 싶은데. 안 될까?”
#001
“개새끼.”
와. 저 단어가 저렇게 점잖게 말할 단어였던가? 마치 회사 오너가 ‘김 부장’을 부르는 듯 낮고 느릿한 목소리였다. 그의 점잖은 목소리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다행이었다. 나의 아버지로 보이는 저 잘난 얼굴의 중후한 남성은 그다지 화가 나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났다면 지금과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귀청을 울리는 소리를 내질렀을 거다. 보통 드라마에서 보던 재벌가의 사람들은 늘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였으니. 뭐 이 정도 욕은 나의 예상보다 꽤 괜찮은 반응이었다.
“너는 그러고 사는 게 꽤 재밌나 봐? 아주 여기저기 개새끼 소리를 안 듣는 곳 없이 사고 치고 다니는 걸 보면.”
신랄하게 씹어 대는 말을 하는데 내게는 꼭 신제품을 소개하는 기업의 임원진처럼 보였다. 부드럽고 나긋한 말투로 나를 찰지게 패는 신종 훈육에 그저 미소만 지었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에게 저런 소리를 듣기에 좀 억울한 면이 있었다. 그가 지칭하는 개새끼가 내가 아니었으니까.
“내 아드님은 대가리에 뭘 넣고 다니기에 이러실까? 내가 갈라서 열어 봐야 그걸 알려 줄런가?”
살벌한 소리도 점잖게 말하니 타격이 하나도 없구나.
나는 차렷 자세를 유지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나의 올곧은 자세에 감명이라도 받은 걸까? 아버지 되는 사람의 입꼬리가 몇 번 씰룩거리다 말았다.
“개새끼야. 내가 사람은 패지 말라고 했잖아. 그게 제일 수습 힘들다고.”
‘제가 안 때렸습니다.’라고 말해야 했지만 내 주먹에 묻은 피가 아직 마르지 않았으니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누가 봐도 내 주먹은 사람 제대로 패고 온 모습이었다.
“회사 법무 법인팀이 아주 네 전속이지? 그깟 폭력 사건에 유능한 인재들이 쓰여서야 되겠어?”
이제 더는 내가 한 일이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뭔가 항변이라도 하려 입을 열려고 할 때, 빠르게 날아오는 무언가로 인해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와 동시에 극심한 통증이 이마에 느껴졌다.
“윽.”
절로 고통에 찬 신음이 입 밖으로 나온다. 카펫이 깔린 바닥에 퉁 소리가 나 쳐다보니 투명한 유리로 된 재떨이가 떨어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본다면 내 이마를 때린 게 저것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재떨이 끝에는 새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이거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실제로 보니 살벌하기도 하여라. 점잖은 말투와 그렇지 못한 아버지의 폭력성에 놀라 그를 보았다. 이 개새끼가 맞을 때도 다 있었나? 내가 알던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성격 파탄자에 쾌락만 추구하는 미친놈. 그가 왜 그런 성격인가 했더니 이제 보니 딱 제 아버지랑 똑같네.
“아파? 네가 아픈 걸 느끼면 안 되지. 사람을 반 죽여 놓고 고작 이걸로 아프면 안 되잖아?”
아버지는 재떨이를 던진 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가와 구두코로 정강이를 찍어 찼다.
“악!”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발 개아프네. 명품은 구두코에 쇠붙이라도 덧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집으로 갈 걸 그랬다. 그럼 적어도 구두는 신고 있지 않을 것 아닌가? 괜히 순순히 끌려왔다. 좀 반항해서 집으로 가자고 할걸. 정강이를 까인 다리를 들고 학 다리 자세를 취한 채 두 손으로 감쌌다. 고통이 얼마나 센지 손으로 눌러도 자꾸만 정강이뼈를 쿡쿡 찌르는 통증이 사라지질 않는다. 그 상태로 아버지는 커다란 손을 내게 내밀었다.
“카드 내놔.”
“?”
‘무슨 카드?’
내가 멀뚱히 보자 아버지는 지금껏 이 공간에 있는지도 몰랐던 김 비서님이라는 분을 불렀다. 아, 그러고 보니 날 아버지 앞에 데리고 오신 분. 내가 맞는데 그냥 보고 계신 그분! 첫 만남에서는 날 그렇게나 말리더니 아버지는 말릴 생각을 못 하는 듯했다.
“이 새끼 카드 정지시켜. 차 키 압수하고.”
“알겠습니다. 대표님.”
“너 또 사고 치면 군대로 보낼 줄 알아.”
“네?”
고통에 찬 신음을 제외하고 처음 말다운 말을 한 게 고작 ‘네?’라는 멍청한 반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군대라는 단어에 질겁을 하며 따져 물었다.
“군대라고요?”
‘내가 왜? 군대를 왜? 아니 군대? 씨발. 나 군대 다녀온 군필인데?’
여기서 군대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건데? 남들 10억 줘도 다시 안 할 거라는 게 재입대인데.
“김 비서 내 눈앞에서 이거 당장 치워.”
축객령을 내리는 아버지는 단호했다. 김 비서님의 손에 끌려가면서 나름 반항이라는 걸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김 비서님 그렇게 안 봤는데 힘이 굉장히 좋으시다.
김 비서님 손에 끌려 회사 대표실과 직통인 전용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억울한 듯 물었다.
“제가 맞을 만큼 잘못한 건가요?”
김 비서님은 나의 억울함 따위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격무에 시달린 회사원의 얼굴로 정면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계속 바라보자 김 비서님은 좀 귀찮은 듯 입을 열었다.
“적어도 지금은 사고 쳐선 안 되었습니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더 걸리면 아무리 저희라도 손쓰기 힘듭니다.”
‘여기서 무슨 사고를 더 쳤다는 거야? 와 이 새끼 진짜 개새끼네.’
“아 씨발.”
욕을 안 하고는 버틸 수 없는 캐릭터였다. 얼마나 쓰레기같이 살았기에 김 비서님에게 이런 소리를 듣는 거지? 그러고 보니 그의 이름에 늘 연관 검색어로 뜨던 개새끼가 참 잘 어울린다 싶다.
김 비서님은 내가 측은했던지 조금은 다독여 준다.
“카드는 어쩔 수 없이 정지시키겠습니다. 대표님 성정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마 카드 정지되었는지 더블 체크 할 겁니다.”
“그럼 저 돈은요?”
김 비서님은 어깨만 한번 으쓱하시곤 층수가 바뀌는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더는 해 줄 말이 없다는 듯 구는 태도에 한 손은 이마에 한 손은 정강이를 만졌다.
“아픈 걸 보면 꿈은 아닌 것 같고…….”
꿈이 아니라고 해서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이 실감 나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빙의라는 것은 자다가 일어나서 어색한 자신의 몸을 살피며 ‘으악! 아니 내가 소설 속 xx라니!’ 하는 게 정통 아니었나? 나는 자다가 빙의가 된 것도 아니고, 빙의 직행 트럭에 치여 죽은 것도 아니다. 거기다 빙의한 순간이 이 사달을 만든 사람을 패는 중도 아니고. 팰 거 다 패고 김 비서님이 말리는 상황에서 빙의가 되었다.
“이거 좀 억울하네.”
재벌 캐릭터에 빙의했는데 곧장 카드와 차를 빼앗겼다. 이러면 억울하지. 안 억울하겠어? 게다가 한 번 더 사고 치면 군대 보낸다잖아. 군대 전역한 지 겨우 두 달째란 말이다.
“그건 안 될 말이지.”
혼잣말하는 나를 김 비서님이 흘긋 살펴보더니 불쌍했던 모양인지 한마디 덧붙였다.
“한 달 정도만 조용히 계시면 대표님도 풀어 줄 겁니다. 하진 도련님.”
하진 도련님이라. 내 이름이 아닌데 김 비서님은 나를 그렇게 칭한다. 하지만 익히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내가 어찌 그 이름을 모를 수 있겠나.
유명하지, 유하진. 나랑 똑같이 생긴 웹툰 캐릭터.
그래 나다. 서브광공.
* * *
삶이 고달파도 나만큼이나 고달픈 사람이 있을까? 학교에 오자마자 동기라는 것들이 날 놀리기에 열을 올렸다.
“오늘 뉴스 봤어? 너 공중파 뉴스에 나오던데?”
2024.08.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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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술술 읽히네요
24.12.01
1화부터 너무 재미있어요!
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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