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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꽃으로, 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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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야(丹夜)
24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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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끝이 났다고 생각한 순간, 과거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너도 내가 싫어진 건가? 이제 와서?” 이전 생에서 나를 사랑하지 않던 황자. 그런 그가 나에게 집착한다. “놓아주지 않을 거야. 곁에 있겠다고 말한 건 그대야. 이제 와서 싫다고 해도 물러주지 않아.” “……읏.” 간절함이 가득 담긴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가 내 앞에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나는 떠나지 않아요. 당신의 곁에 끝까지 남아있을 거예요.” 질식해버릴 것처럼 새파란 눈이 먹이를 앞에 둔 맹수처럼 번뜩였다. 광기는 집착이 되어 열에 들뜬 새파란 눈을 가득 물들였다. “……날 혼자 두지 마.” 난폭한 짐승이 자물쇠를 부수고 깨어났다. 내 유일한 구원자. 이번에는 내가 꼭 당신을 지켜줄게요. 당신이 황제가 되는 그날까지.


1화

Prologue.

“아이시엔 에르본. 그대가 죽을 자리는 이곳인가.”

“……황제.”

찢어지고 불에 탄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제 집무실에 무장한 기사들이 들어올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타는 냄새와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으며 아이시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책상 위에 놓인 손이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 것인가.’

참으로 모질게도 산 인생이었다.

언제든지 기회가 있다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는데 죽음이 닥쳐오자 손이 떨렸다. 비아타 제국의 재상답게 늘 손에 묻어 있는 까만 잉크는 얼룩처럼 지워지는 날이 없었다.

나를 보며 차가운 비소를 짓는 황제의 시리도록 푸른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나의, 주군(主君)께서는. 그분께서는 어찌 되셨습니까?”

아이시엔의 묻는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낀 황제는 그녀를 비웃었다.

“반역자를 감히 주군이라 칭하다니 참으로 우습군.”

“……설마 죽이셨습니까?”

“그래. 죽였다.”

그의 대답에 손의 떨림이 멎었다.

대신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꾹 쥐었다. 체념 어린 보랏빛 눈에 절망이 덧씌워졌다.

“그렇습니까. 결국 그리 가신 게로군요.”

“너 역시 그리 죽을 것이다.”

오만한 황제의 말에도 아이시엔은 차분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 속은 새까만 어둠으로 타들어갔다.

‘바보 같은 사람.’

늘 활기차게 장난치길 좋아하던 대공의 소년 같던 미소가 떠올라 입 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어쩌면 제 우울하던 인생에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였다. 또한 나의 첫사랑이었다.

나는 한때 사랑했던 그의 찬란한 금발과 생기 넘치던 푸른 눈을 떠올리며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서랍엔 언젠가 전쟁을 치르고 온 대공이 선물이라며 던져주고 간 모르고 왕국의 보검이 지도 위에 얹어져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작은 검이라 사선으로 놓으면 서랍에 들어갈 것 같아 넣어둔 검이었다. 재상의 자리에 있는 내가 검을 쓸 일은 없을 터이니 평생 쓸 일이 없겠구나 했는데.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검은 처음 써보는 것인데.”

은색 검집에 제 눈동자와 닮은 자수정이 단아하게 박혀있었다. 스르릉. 검집에서 검을 뽑자 순백의 날카로운 검신이 드러났다.

“문신(文臣)으로 반평생을 책상에서 보낸 자가 검을 들어서 반항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무리 철혈의 재상이도 죽기는 싫은가보지?”

황제가 이죽이며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주군의 복수는 조금이라도 하고 가야 저승에서라도 그분을 볼 낯이 서지 않겠습니까.”

비록 검을 써본 적도 없지만, 황제를 죽일 수도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상처라도 입혀야 이 멍울진 마음이 풀릴 것만 같았다.

“하, 검을 잡는 것조차 틀렸다. 그 검으로 내게 닿을 수나 있겠나, 재상?”

“아이시엔입니다.”

이름 없던 길거리의 소녀가 처음 가진 이름이었다. 너무나 소중해 닿을 수 없는 사람이 지어준 너무나 소중한 내 이름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온전히 가진 것이었다.

유르젠 대공, 한때 루첼 키스아르타 비아타 제 1황자였던 나의 빛, 나의 유일한 가족, 그리고 나의 주군이자 세상, 나의 모든 것이었던 사람.

그런 그를 죽인 황제, 당신.

용서하지 않아.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를 위해 그가 준 이 검으로 당신을 베어버릴 것이다.

차갑고도 뜨겁게 분노하며 검을 고쳐들고 다리를 휘감는 짙푸른 정장치마를 찢어버렸다. 기사들이 내 행동에 경악을 했지만 움직임을 방해하는 거슬리는 치맛자락 따위, 그가 죽었는데 무엇이 중요할까.

이참에 발을 조이던 굽이 있는 구두도 벗어던졌다. 작고 흰 발과 종아리가 훤히 드러났다.

나는 그를 향해 검을 겨누고 살기 어린 눈으로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기억하십시오. 제 이름은 아이시엔입니다, 폐하.”

당신이 준 이름으로 당신의 적을 베겠습니다. 먼저 간 내 주군이시여.

“하, 정말 내게 덤비기라도 할 기세로군.”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찬다는 듯 한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웅크려있던 몸을 펴듯 튕기며 그를 향해 도약했다.

기사들은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나의 검에 당황해 급히 검을 빼들어 황제의 앞에 섰다.

챙-. 소름끼치게 서늘하고 섬뜩한 금속의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맞닿은 검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손이 징하고 울렸다.

나는 검을 떼며 나비처럼 사뿐하게 뒤로 거리를 벌렸다.

“……그대.”

조금 놀란 듯 눈이 커진 황제를 보며 말했다.

“다음은 눈이 아니라 목을 노릴 것입니다, 폐하.”

나의 눈은 황제의 목에 고정되어있었지만 그렇다고 방 안의 기사들의 움직임을 놓치진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에서 기사가 검을 틀어잡더니 곧 빠르게 사선으로 치올리며 검이 들어왔다.

챙강-. 챙그랑. 나는 검을 마주 빼며 회전하듯 검을 얽어 날려버렸다.

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자 검을 놓친 기사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물러섰다.

“그대, 검을 쓸 수 있었나?”

그의 목에서 시선을 들어 그 얼빠진 표정을 보았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검은 처음 써보는 것이라고. 영특하다 소문이 나 있던데 다 거짓이었나 봅니다.”

그를 조롱하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올려치는 검을 막은 기사가 맹렬하게 공격을 해왔다.

챙, 챙챙챙, 채앵-. 집무실이 온통 금속음으로 가득 찼다. 여러 번의 공방 끝에 먼저 나가떨어진 것은 기사였다.

검을 날려버리자 기사가 감히 여자에게, 그것도 문신 따위에게 졌다는 것이 엄청난 모욕인 줄은 아는지 얼굴을 붉히고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물러섰다.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황제까지 앞으로 열 걸음 남았다. 내가 열 걸음을 더 걸어 나가면 황제는 그를 죽인 대가를 그 고귀한 피로 치러야 할 것이다.

“나를 막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건방지군. 비록 그대의 검술이 생각보다 뛰어남은 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닿을 정도는 아니다.”

아이시엔은 틀어 올렸던 머리를 고정하던 핀을 앞의 기사에게 단검을 던지듯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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