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크르르…….” “오, 오지 마……!” 산속에서 짐승을 만났다. 정확히는 짐승으로 변한 사람을. 얼떨결에 집까지 데려오긴 했으나, 어딘가 아파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잘 먹이고 재워야 할 것 같다. 다만……. “테오, 넌 완전히 익히는 게 좋아, 아니면 반만 익히는 게 좋아?” 팡팡! 대답하기 귀찮다고 발만 두 번 구르기도 하고. “크앙!” “야아, 먼지 날리잖아! 그만해!” 접시에 얼굴 박고 먹기 싫다고 직접 먹여 달라 시위하기도 하고. ‘까다로운 고양이 같으니!’ 어디 그뿐인가. “엄마……. 나 이제 어떡해……?” 육식하는 맹수가, 집에서 나가질 않아! *** 하지만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아드넬의 평온했던 일상은 테오로 인해 비틀려 버리고. 8년 뒤, 냉혹한 모습의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오늘부터 네가 내 몸을 책임지도록 해라.” 내가 알던 짐승이 아닌, 황자로서의 테오를.
1화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온 봄의 끝자락, 작은 흥얼거림이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음흠흠, 내 돈줄. 음흠흠, 클리프가 좋아할 거야. 그날엔 삼겹살을 먹어야지! 월급날은 고기 파티! 맛있는 삼겹살!”
얼핏 노랫소리같이 들리는 목소리가 퍽 어렸다.
책상 앞에 서 빈 용기에 향기로운 액체를 붓는 아이의 새하얀 이마 위로 이슬 같은 물방울이 송글거렸다.
온통 삐뚤빼뚤한 밀색 머리며 입고 있는 옷이며 목소리까지 여느 남자아이와 다를 바 없었지만, 말간 얼굴 위 오목조목 자리한 이목구비는 손으로 빚은 인형 같았고 사슴처럼 큰 눈동자는 찬란한 바닷빛으로 반짝였다.
남자아이치곤 지나치게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는 올해로 열두 살이 된, 아렌이었다.
“……다 됐다! 주문 끝!”
아렌은 이마 위로 배어 나온 진땀을 쓱 문지르며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만든 것인데 이번에도 석 달이 지나기 전 주문 수량을 모두 채운 부지런한 자신이 무척이나 대견했다.
“여기에 특별 선물도 준비했지. 클리프가 분명 좋아할 거야!”
안 봐도 뻔한 그의 호들갑을 상상하니 절로 피식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론 그것보다 좋은 건 그의 부하가 건네줄 묵직한 돈주머니지만.
아직 받지도 않은 돈인데 이미 받은 것처럼 마음이 풍족해, 아렌은 책상 끄트머리 액자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투명한 유리 너머 소중하게 보관된 그림 속 여인은 아름다웠다.
아드리아나 프리테.
타오르는 화염 같기도, 최상급 비단 같기도 한 윤기 어린 붉은 머리칼은 강렬했으나 유명한 휴양지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고스란히 담아온 듯한 눈동자엔 언제나 따듯한 온기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은 아렌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었다.
“엄마 딸 능력 좋지? 황후 폐하도 내가 만든 화장품만 쓰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진짜 백만장자 될까 봐 무서울 정도야!”
물론 황후는 ‘아렌’이 아닌 ‘아실라’로 알고 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다 저가 이룬 것이라 아렌은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내 명의의 살롱도 세울 수 있는데. 지금은 돈이 많이 모자라지만 그때쯤이면 다 모이겠지? 참, 살롱 이름은 엄마 이름으로 할까 싶어. 나중에 아빠가 찾아올 수도 있잖아. 그리고 아빠를 만나게 되면…….”
돌아오는 대답도 없는데 아렌은 혼자서 주절주절, 마치 대화하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몸은 바쁘게 움직였다.
오전 중엔 밭일을, 낮엔 화장품만 만들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끈적거려 계곡에서 시원하게 씻고 올 참이었다.
완성된 화장품은 책상 한편에 밀어 놓고, 자잘한 뒷정리를 마친 뒤엔 갈아입을 옷과 몸을 씻을 때 쓸 비누, 수건 등을 빠짐없이 천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빈 양동이까지 챙긴 아렌은 씩씩한 목소리로 액자를 향해 외쳤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씻고 금방 돌아올게요!”
호기롭게 동굴을 나선 아렌은 작은 공터를 지나 진작 파 둔 개구멍 위의 돌덩이를 치웠다.
동굴과 공터를 빙 둘러싸듯 자란 나무는 얇고 빽빽하게 얽혀 있어 굳이 울타리를 칠 필요가 없었지만, 그런 만큼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어 개구멍으로만 통과할 수 있었다.
아렌은 양동이 먼저 건너편으로 밀어 넣고 뒤따라 구멍을 통과했다.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로 입구를 가린 뒤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빨래를 다 하면, 집에 돌아와서 우렁이 된장국을 끓일 거야. 맛있는 된장국! 맛있는 쌀밥! 그리고 달걀 프라이까지 해 먹을 거야!”
입만 열었다 하면 음률이 들어간 혼잣말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아렌은 양동이를 든 팔을 붕붕 흔들며 길이 없는 험한 산을 다람쥐처럼 날래게 타고 내려왔다.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가까워졌을 땐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그렇게 도착한 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었다.
구불구불한 계곡 곳곳에 크고 작은 바위가 튀어나와 있었고, 모기인지 하루살이인지 모를 작은 벌레들이 왱왱거리며 날아다녔다.
모두 그녀의 눈에 익숙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딱, 하나만 빼고.
“크앙……! 캉!”
* * *
‘저게……. 뭐야……?’
기다랗고 부드러워 보이는 꼬리는 퍽 길었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 털은 꼭 비단같이 보였다.
접힌 뒷다리는 고양잇과가 분명했고, 몸통 또한 길쭉했다.
익숙한 풍경 속 유일하게 이질적인 존재는 다름 아닌 흑표범, 그것도 제 몸집만 한 짐승이었다.
‘여기에 왜 표범이 있는 거야……?’
아렌은 너무 놀란 나머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늘게 떨었다.
산속에서 산 지 삼 년이 지나도록 몽실한 토끼털 한 번 본 적이 없는데 이런 날벼락이라니!
아렌이 굳이 이 산을 선택해서 들어온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찍이 사냥꾼들이 짐승의 씨를 말린 탓에 제 목숨을 위협할 만한 큰 맹수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천연 요새 같은 동굴이 있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어쨌든 근 십 년간 멧돼지 한 마리 나타난 적이 없다 들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표범이 나타나냐고……!’
심지어 흑표범은 하는 짓도 이상했다.
대뜸 자갈밭 위에 발라당 뒤집어 눕고는 연신 비비적거리다가, 또 벌떡 일어나서는 두꺼운 나무 둥치에 옆구리를 마구 비벼 대며 울었다.
“크헝……. 크르릉……!”
“…….”
원래 흑표범이 저렇게 울던가……?
다소 경박한 울음소리에 아렌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저런 행동을 어디선가 본 것도 같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머릿속에 한 가지 이미지가 떠올랐다.
‘설마 번식기?’
사실 표범은 처음 보지만 그래도 고양잇과가 아닌가.
아렌은 길고양이들이 교미할 때가 오면 이곳저곳 몸을 비비적대며 독특한 울음소리를 내는 걸 몇 번 보았다.
그리고 흑표범의 행동은 그것과 꽤 흡사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산까지 흘러 들어왔을 수도 있겠어.’
꽤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2024.08.15 18:11
올라온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