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아버지는 내 여동생을 남자아이로 길렀다. 왜냐하면, 그 애한테 가문을 물려주고 싶었으니까. 내가 아니라 사생아인 알렉스를. 나는 알렉스의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고 나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자살하려는 알렉스를 붙잡고 함께 추락한 날, 나는 알렉스를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왔다. 내가 망쳤던 것을 모조리 돌이키고 싶었다. “사랑해. 알렉스.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네 편이야. 우린 가족이니까.” 새로 시작된 삶에서 알렉스 로윈은 내 인생의 오점에서 전부가 되었다. 그런데 인생의 전부처럼 여겼던 내 여동생이 여자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저도 사랑해요. 누님.” 그럴 리가 없잖아. 이렇게 예쁜데. 사랑스럽고 귀여운 내 여동생인데. “그래서, 그 남자 때문에 날 버리겠다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내 여동생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거지?
1화
다락의 창틀은 녹이 슬어있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불길했다. 알렉스는 거기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내려와. 알렉스. 착하지…….”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알. 제발.”
처음으로 부른 애칭이었다. 떨리는 다리로 다락 안으로 들어섰다.
“내려오자. 응?”
창이 크다. 새삼 드는 생각에 황급히 손을 뻗었다.
“이리 와. 제발. 위험하잖아.”
억지로 웃었다. 바람에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텅 빈 회색 눈동자가 나를 훑었다.
“옛날에는…….”
“응. 알렉스. 내려와서 얘기하자. 다 들어줄 테니까. 내려와서…….”
“당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형이었다.
“당신이 내게 무슨 짓을 해도 참을 수 있을 만큼 좋아했죠.”
“다시 시작하자. 내가 잘할게. 누나가 잘할게.”
“그럴 필요 없어요. 당신은 이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고개를 젓는 얼굴이 아름다웠다. 누가 공들여 일부러 만든 것처럼 조형적으로 완벽한 미모는 섬뜩하게까지 느껴졌다.
“내가 지켜줄게. 응? 다시는 아무도 너한테 손도 못 대게 할게. 우리 좋은 남매는 아니었잖아. 나 때문에. 내가 나빠서.”
“꼭 당신 탓만은 아니었죠.”
“아냐. 내가 잘못했어. 이제부터 내가 잘할 테니까…….”
나는 그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억지로 올린 입가가 떨렸다.
“내가 잘하면, 우리 좋은 자매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알렉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혹시나 하는 희망에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알렉스. 그러니까…….”
“우린 가족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랬죠.”
알렉스는 그대로 뒤로 추락했다. 날개가 달린 것처럼 아무 준비도 없이.
“알렉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애를 붙잡기 위해 몸을 던졌다. 결국 내 몸 또한 아래로 추락했다.
구할 수 없으면 같이 죽기라도 해야지.
나는 눈을 감았다.
* * *
여긴 지옥인가?
나는 눈을 비볐다. 죽은 지 8년이나 된 유모가 왜 내 눈앞에 보이는 건지.
응?
손끝이 뭉툭했다. 아이들의 것처럼.
“우리 애기씨. 절대 잊지 마셔요. 그 더러운 것에게 아무것도 빼앗기면 안 돼요.”
나는 유모의 말에 눈을 찌푸리면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방이었지만 좀 달랐다.
낮은 책상과 침대. 레이스 옷을 입은 꽃병들.
15살 이후로 내 방에 꽃은 전부 치워버렸는데?
“백작님의 것은 모조리 애기씨 것이에요. 애기씨는 헤더 아가씨의 딸이니까.”
다짐처럼 중얼거리는 늙은 유모는 소름이 끼칠 만큼 익숙했다.
유모는 죽을 때까지 내게 당부했었다. 절대 빼앗기지 말라고.
어미가 다른 동생에게는 그 어떤 자격도 없다고. 사생아 주제에 감히 가문의 것을 탐내게 두지 말라고.
“그 도둑새끼를 몰아내셔야 해요. 우리 애기씨, 꼭…….”
“그만해. 유모. 죽어서까지 그 얘기를 해야겠어? 어차피 우리 둘 다 죽었는데.”
지옥은 과거에 후회했던 일들을 다시 보여주는 건가?
“애기씨! 무슨 그런 말을……! 험한 꿈이라도 꾸셨어요? 그것이 뭐라고 했기에!”
“그 앤 아무것도 못 해! 뭔갈 했다면 나겠지! 알잖아. 유모. 걘 제대로 먹지도 배우지도 못해서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던 거!”
내가 그렇게 만들었는데. 아무것도 못 배우고, 못 먹고, 못 쉬게. 그걸 기억 못 할 리가 없잖아…….
“세상에. 애기씨. 그것이 원망이라도 하덥니까? 그래서 그러셔요? 그것은 그래도 싸요.”
“왜? 알렉스가 사생아라서?”
죽자마자 저승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유모와 한 일이 말다툼이라니.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늙은 유모의 얼굴이 이어지는 내 한 마디에 하얗게 질렸다.
“나도 사생아잖아.”
2024.08.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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