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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 그냥 너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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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닐슨생
129화무료 3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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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눈을 떠 보니,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어 있었다. 에린 스필렛. 나는 소설 속에서 악랄하기로 소문난 악녀로 빙의했다. 내 남편이라는 남자는 자꾸 다른 여자랑 눈을 맞추며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그 상대는 바로 이 소설 속의 여주인공. 남의 결혼식에서 둘이 뭐 하는 거람. ‘이 남자가 뭐가 좋다고.’ 그런데 그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조연이자 불청객인 나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여기 계시겠습니까,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신발도 없이 얼떨떨하게 서 있는 나에게, 소설 속 황태자는 새 신발을 선물해 주었다. 이 와중에 다정하기도 하셔라. “식이 끝났으니 제가 더 있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그가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여주인공님, 남주는 그냥 너 줄 테니 가져가세요.


1화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에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을 몇 번인가 깜빡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

짝짝-!

“아가씨, 일어나세요! 머리 망가져요. 아이참, 몇 시간이나 공들인 건데.”

“……어?”

“어서 고개 좀 똑바로 해 보세요.”

“여기가 어디…지?”

퍼프를 들고 있던 메이드 복장의 여자가 갸웃하다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기뻐서 지금이 꿈인가 싶으신 거예요?”

“하긴, 그러실 만도 하죠. 결국에는 소원을 이루셨잖아요. 대단하세요, 그 집념…… 아니, 그 사랑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메이드 복장을 한 채 내 머리 위에 하얀 면사포를 씌우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잠이 덜 깬 것처럼 기분이 멍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

“잠시만요, 움직이지 마세요. 이제 정말 다 됐어요.”

투명한 알이 엄청나게 큰 티아라가 정수리에 씌워지는 것을 끝으로 그들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저게 진짜 다이아몬드는 아닐 거야, 라고 태평하게도 생각했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거기에 면사포를 쓰고, 정수리엔 티아라까지.

이건 영락없는 신부의 모습이었다.

이 사실도 참 당황스러웠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탈색과 염색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찰랑거리는 로즈핑크 빛의 머리가 반은 묶이고 반은 어깨 양옆으로 곱게 빗겨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거울 속 여자와 눈을 마주했다. 이건 나였다, 하지만 내가 아니었다.

커다랗고 노란 황금빛 눈동자가 깜빡거리며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제야 흠칫,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아, 그래. 이건 꿈이구나.

그러나 꿈에서 어떻게 깨어나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열려 있는 문으로 누군가 들어오며 가볍게 노크했다.

“잠시 비켜 주지.”

묵직한 중저음이 울리고, 내 옆에서 재잘거리던 하녀들은 두말하지 않고 문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제복 같은 것을 갖춰 입고 있었다.

옅은 금발을 포마드로 넘겨 잘생긴 얼굴이 제대로 드러났다.

누구지, 저 남자는?

그는 벽에 기댄 채 비스듬히 서서 무감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는 푸른 눈동자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에린 스필렛, 잘 들어.”

그리고 눈빛만큼이나 무감정하고 딱딱한 목소리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에린 스필렛, 이 몸의 이름이구나. 그런데 어디서 들어 봤더라. 나는 그를 모르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네 소원대로 해 줬으니, 이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마.”

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여기가 무슨 상황인지, 어디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막 결혼식을 치를 남자가 자신의 신부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누굴 만나든, 어딜 가든, 절대로 알려고도 하지 말고 찾지도 마.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란 소리야. 알아들어?”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마치고 남자는 뒤돌아 나가 버렸다.

쭉 어리바리하게 멍때리고 있다 남자의 말에 어딘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돌아왔다.

“후우, 뭐…지, 저 새끼는.”

기분이 나빴다. 그러는 사이 아까 나갔던 하녀들이 들어와 옷이며 머리를 다시 만져 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봤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문밖에서 다 들은 모양이군. 나는 어쨌든 생각나는 가장 무난한 대답을 했다.

“괜찮아요.”

“아, 안, 안 괜찮으신 것 같은데요? 왜 말을 높이시는 거예요?”

“충격이 크실 만도 하죠……. 자, 일어나세요, 이제 곧 신부가 입장할 차례예요.”

정말 괜찮은데.

왜냐하면 나는 저 남자를 모르니까. 남자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다.

에린 스필렛.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한 명은 내 앞에서 팔을 잡고 나를 인도해 주었고, 다른 한 명은 뒤에서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들어 주었다.

길고 긴 복도를 지나자마자 이어지는 커다란 홀에서 밝은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찡그리며 그 홀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단상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배분되어 앉아 있었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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