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강세현. 나와 동갑. 말이 없고 무뚝뚝한 성격. 친한 사람 극소수. 새로운 사람은 사귀지 않음. 까탈스럽다던 그 소문의 주인공이 나를 특별 대우하는 것 같다. *** ‘번호 좀. 연락할게.’ 강세현은 처음 본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친구는커녕 지인조차 안 만든다더니. 예의상 건넨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음 날 곧바로 연락이 올 줄 몰랐다. 그 연락이 끊이지 않고 계속 올 줄도 몰랐고. 어디 그뿐일까. 내가 있는 곳에 불쑥 찾아와서는. “언제까지 할 거야?” “모르겠는데. 일단 두세 시간은 더 해야지.” “그럼 자리 옮겨.” “어디로?” “우리 집.”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 대체 무슨 생각일까. 남들한테 까칠하다는 강세현이 왜 나한테 잘해 주는 걸까.
#01
<소설 속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 중 한국어는 “ ”, 영어는 [ ]로 표기되었습니다.>
1. 이사
권성하
정리는 다 했어?
“어. 대충은. 이제 막 끝난 참이야.”
아무것도 없는 거실은 그저 휑하기만 했다. 어느 집에나 있을법한 소파나 선반 따위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텅 빈 거실을 지나 발코니 문을 열었다. 발코니라 해 봤자 겨우 서너 명 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였지만, 혼자서 담배를 피우기엔 적당했다.
이제 끝났다고?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짐은 별로 없는데 그 전에 청소하는 데 좀 걸렸어.”
아, 아. 그랬겠지. 내가 아는 권성하가 얼마나 대단한 앤데.
대단하다는 말과는 달리 상대의 말투는 잔뜩 꼬여있었다. 또 얼마나 쓸고 닦은 거냐는 핀잔도 따라왔다. 청소나 정리 정돈을 좋아하기는 해도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소라는 매번 내게 유난을 떤다고 말했다. 뭘 그렇게 깔끔을 떠냐고.
거기서 학교까지는 얼마나 걸려?
“강의 한 시간 반 전에는 출발해야 해.”
그렇게 일찍 출발해?
“거리는 20마일 정돈데 다운타운 쪽에 교통체증이 심하대서.”
거의 매일 왔다 갔다 하는데 괜찮겠냐.
“괜찮아. 나 운전하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도 너무 멀다. 학교가 다운타운 안에 있으면 그냥 그쪽에 있는 데로 하지.
“여기가 조용하고 좋아.”
고심해서 고른 아파트는 상당히 괜찮은 곳이었다. 높은 건물 대신 나무가 많아 공기가 좋고 누가 사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차만 있으면 움직이기 편한 곳으로 차 타고 5분 거리에 큰 마트도 있었고, 15분 이내에 한국 식당들도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가격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운타운 오피스텔이 고작 7평에 1,400불인데, 방 하나와 넓은 거실이 딸린 이 아파트는 크기가 두 배나 되는데도 보증금 2,000불에 월세가 850불밖에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학교와 가까운 거리를 포기하고 교외 쪽을 살펴본 것이 현명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정도도 만약 한국이었다면 대학생에게 월세 100만 원짜리 아파트가 무슨 호사냐며 욕을 먹겠지만, 이 정도 수준도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네 엄마가 올해부터는 자주 가겠다고 하더구나. 사는 곳은 적당히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구하거라.’
새아버지에게 시카고에 있는 대학에 붙었다고 하자 가장 먼저 돌아온 말이었다. 애초에 축하한다는 따뜻한 말은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학비를 대신 내줄 사람에게 내가 서운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쪽이 일 찾기도 쉬워.”
일? 학교 다니면서 언제 하게? 파트타임으로 하려고?
“화, 목, 금, 토. 나흘 동안 저녁에만.”
구체적이네. 벌써 구했어?
“어. 한국분이 하시는 일식당. 이번 주부터 하기로 했어.”
- 빨리도 구했다. 누가 집 청소도 하기 전에 일을 먼저 구하냐?
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 시발. 갑자기 짜증 나네.
갑작스레 들려온 욕설에 놀라기보다는 웃음이 났다. 툭 하면 들리는 거친 욕이 너무나 익숙했다.
- 존나 망나니짓만 하는 그 새끼는 일주일에 몇천 불씩 막 쓰고 다니는데, 넌 왜 그렇게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냐.
“무슨 눈치. 눈치 보는데 이런 아파트 구했을까 봐? 여기 이 주변에서 그래도 꽤 괜찮은 아파트야. 이 정도면 감사해야지.”
- 눈치 보니까 그런 데 골랐겠지. 내가 네 속을 모르겠냐? 새아버지한테 보여줘야 하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데는 골라야겠고, 도심 쪽은 너무 비싸고. 그래서 또 돈 걱정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거기로 한 거면서.
하여간 눈치 하나는 빨라.
내게 아버지가 생긴 건 12살 때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나는 늘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그 전까지는 다른 집 친구들처럼 쉬는 날에는 함께 목욕탕을 가는 다정한 아버지가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쉬는 날에도 대단한 분들과 골프장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목욕탕은커녕 바로 앞 슈퍼조차 함께 가지 못할 정도로 바쁜 사람. 그런 사람이 유일하게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쓰면서까지 최선을 다하는 상대가 바로 엄마였다.
2024.08.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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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분위기 있고 좋네요 ㄷㄷ
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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