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그 아이에 대한 설명을 하라고.” 1년도 못 채웠던 결혼 생활. 해윤은 몰래 낳아 기르던 딸 예원과 백화점 쇼핑 중, 전남편 서기한과 마주친다. 재빨리 자리를 피했지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딸이 아니라 부정해보지만, 서기한이 내민 카드는 ‘유전자 검사’ 였다. “아버지는 예원이를 서원 총수 일가에 포함시켜야 된다고 생각하시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둬요.” 딸 예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한의 재결합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해윤은 괴로워 한다. “당신은 예원이를 뺏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서기한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절대 없다. “내가 당신을 갖는다면.”
1.
“정해윤.”
그의 낮은 목소리가 바닥을 긁는 것처럼 거칠었다.
“다시 말해 봐.”
부드러운 가죽 소파에 앉은 해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커다란 창가에서 우뚝 서 있는 넓은 어깨의 남자.언제나 당당하고 거침없던 남자를 해윤이 올려다보았다.
“당신과 이혼하겠다고요.”
이토록 차갑고 메마른 해윤의 목소리를, 남자는 처음 들었을 것이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침묵에 해윤의 심장이 옥죄어 왔다.
“진심이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해윤이 무릎 위의 주먹을 꽉 쥐었다.
“서기한 씨.”
내가 아무리 당신을 사랑한다 해도.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이제 당신 따위는 필요 없어.
* * *
서원 백화점은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여성 의류관인 3층에서 멈추었다. 유모차를 미는 해윤을 보고 젊은 남자가 재빨리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 주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해윤의 해사한 미소에 청년의 귓바퀴가 붉어졌다. 하얗고 자그마한 얼굴에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 탐스러운 붉은 입술은 그녀가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잊게 했다.
“해윤아, 원피스부터 둘러볼까?”
사촌 언니 나경을 돌아보는 해윤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그럴까, 언니?”
조금은 상기된 해윤의 얼굴을 보며 나경은 속으로 혀를 찼다. 생각해 보면 이혼 후, 제대로 된 외출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아기를 낳고도 카페 운영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긴 했었지만, 백화점 한 번 올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해윤이 그동안 시내로 외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신이 났는지 눈이 동그래져서 여기저기 둘러보던 해윤은 곧 시선을 내려 자신의 아기를 살폈다. 나경이 해윤의 등을 두드렸다.
“예원이는 잘 자고 있으니까, 어서 쇼핑이나 하시죠. 사장님!”
나경의 호칭에 해윤이 웃음을 터트렸다. 사촌 언니 나경과 동네에 카페를 연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사장이라는 호칭이 어색했다.
“사장님은 언니잖아.”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던 해윤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언니. 여기 좀 봐! 너무 예쁘지 않아?”
파스텔 톤의 원피스가 디스플레이 된 매장 앞에서 나경의 발이 멈췄다.
“와, 이 원피스 너한테 잘 어울리겠는데?”
“아. 정말?”
기쁘게 웃는 해윤에게 나경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평범한 스커트와 카디건을 입었음에도 숨길 수 없을 만큼 볼륨 있는 몸매를 가진 해윤이었다. 저런 시폰 소재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해윤의 예쁜 몸매를 더욱 부각해 줄 것이다.
매장 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색상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고객님. 들어오셔서 둘러보시겠어요?”
“그래. 해윤아. 몇 벌 입어 보자.”
나경이 해윤의 등을 밀었다. 매장에 들어서던 해윤이 칭얼거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어머. 우리 예원이 언제 깼어요?”
“예원이 깼어?”
나경이 해윤을 따라 유모차를 들여다보았다. 완전히 잠에서 깬 예원의 눈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예원아. 엄마 여기 있네.”
해윤이 예원의 품에 있던 작은 인형을 흔들었다.
“……움마.”
예원이 방긋거리며 엄마를 부르자 해윤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 번졌다.
“그래.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해윤은 쇼핑 같은 건 잊어버렸다는 듯 예원에게 집중했다. 나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해윤은 아직 7개월도 안 된 예원이가 엄마를 불렀다면서, 천재라고 말하는 딸 바보였다. 나경이 웃으며 예원의 자그마한 손가락을 잡았다.
“우리 천재 아가씨. 이제 잠이 안 와요?”
나경의 말에 해윤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예원이가 천재일 필요는 없어. 건강하게만 자라면 되지. 그렇지, 예원아?”
“어머, 얘 좀 봐!”
나경이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후후후…….”
짓궂은 표정으로 웃는 해윤을 보며 나경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점점 웃음이 많아지는 해윤을 보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올게요.”
나경이 매장 직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해원을 보아하니 예원을 안고 백화점을 한 바퀴 돌아야 쇼핑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원아. 저기 봐. 저게 뭘까?”
2024.08.1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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