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여자친구가 다른 놈과 도망갔으니…… 잡아 올 수밖에. 그러려면 덫이 필요했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지만, 가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비열하고 잔인한 개자식 권해준. “네가 싫어. 언제나 자기밖에 모르는 너란 인간이…… 너무 싫어.” 상처와 배신감을 이기지 못한 가윤은 보란 듯이, 그의 뒤통수를 치고 떠나버렸다. 그러나 8년 후, 결국 권해준의 계략으로 인해 돌아오게 되는데.... *** “감히, 다른 놈도 아닌 권석준과 도망을 가?” ‘권석준’을 입에 올리는 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번뜩거렸다. 비틀린 집착과 질투, 분노와 애증이 한데 뒤섞여 시종일관 평온하던 그의 이성을 흔들었다. 뜻 모를 비소를 지은 해준은 강한 원망의 눈길로 자신을 노려보는 가윤을 응시했다. “나는 손해 보는 거래는 안 해. 그러니 그 빚, 네가 갚아.” “어떻게! 무슨 수로!” “방법이야 간단하지.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갚아.”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요구에 가윤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흔들렸다.
1화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배경 설정은 허구이며 특정 상황은 작가가 글의 전개를 위해 극적으로 쓴 부분으로, 현실과 매우 다를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 표기 안의 대사는 전화통화를, 〈〉는 외국어를 표기한 것입니다.
#1.
뉴욕 맨해튼, 모닝 사이드 하이츠. 컬럼비아 대학교 소유의 학사와 기숙사들이 많아, 동네 자체가 거대한 컬럼비아 캠퍼스나 다름없는 곳.
가윤은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신학기 준비로 붐비는 캠퍼스를 누볐다. 상쾌한 바람과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빛이 입가에 걸린 그녀의 미소를 더욱 밝게 했다.
투명할 정도로 깨끗하고 하얀 피부, 시선을 끌어당기는 신비한 분위기의 다갈색 눈동자. 곧게 뻗은 콧대와 붉은 입술이 아름답고 성숙한 그녀의 인상을 도드라지게 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파트를 향해 바퀴를 꺾자,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방향에 따라 흔들린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 가윤은 요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처음 낯선 이국땅에 도착할 때만 해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다.
이제는 피가 철철 나도록 고통스럽던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고, 그를 향한 분노와 원망도 흐릿해졌다.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하고 박사 학위를 딴 가윤은 이제 삼 주 후, 대학 강당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일주일에 두 번, 세 시간 강의가 전부이지만, 그래도 나름 자리를 빨리 잡은 편이다.
가윤은 이것이 시작이라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강의 준비를 했다.
“후우…….”
아파트에 도착한 가윤은 숨을 깊게 몰아 내쉰 후 자전거를 들어, 그리 많지 않은 계단을 올라갔다. 8년 전만 해도 낑낑대며 자전거와 사투를 벌였건만. 단단해진 정신만큼이나 요령도 늘어, 이제는 가뿐하기만 하다.
공동현관문을 통과해 승강기에 올랐다. 버튼을 누르자, ‘덜컹’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승강기가 위로 이동했다. 평소 듣던 쇳소리가 유독 날카롭게 느껴져 가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윤은 늘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 인사를 했다. 그것은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 나름의 방법이었다.
막 문을 닫는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가윤은 얼른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다.]
짧고 건조한 대꾸에 눈을 동그랗게 뜬 가윤은 상대를 인지하고서야, 한국말로 통화했다.
“안녕하셨어요, 고모?”
가윤은 의아한 눈빛으로 고모, 채용희에게 인사했다.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녀가 먼저 전화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안녕 못 해. 너, 당장 귀국해야겠다.]
“네? 갑자기 왜요?”
당혹스러운 요구에 가윤이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쉰 용희가 딱딱한 음성으로 알려주었다.
“아…….”
충격적인 소식에 가윤은 수화기를 놓치고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숨통이 조이는 공포가 엄습했다. 방금 전까지 솜사탕처럼 달콤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바뀌었다.
***
“도착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의 알림에, 멍하니 차창에 시선을 두었던 가윤이 차비를 건넸다. 인천 공항에서 강남까지 택시를 타고 온 탓에, 두둑한 차비가 기사의 손에 쥐였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사는 냉큼 차비를 받고 하차해,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넨 가윤은 중간 크기의 캐리어를 끌고 병원으로 들어섰다. 집으로 갈 여유조차 없었다.
‘집으로 가 봤자 좋을 꼴 못 봐. 그냥 병원으로 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눈 통화에서, 용희는 차가운 어조로 지시했다. 좋지 못한 꼴이 무엇인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일하게 연락이 닿는 친구 윤주를 통해 소식을 대충 접한 터였다.
흔한 말로 집이 완전히 망했다. 아빠는 경제사범으로 구치소에 수감 중이고, 엄마는 갚지도 못할 빚을 떠안고 쓰러지셨다.
“하아…….”
가윤은 드라마에서 보았던, 온 집 안에 붉은 딱지가 붙은 장면을 떠올리며 병실 앞에 섰다. 2년 만에 만난 엄마 앞에서 그래도 밝은 표정을 지어보려는데. 자꾸만 한숨이 나고 어깨가 축 늘어진다.
몰골은 또 어떻고. 며칠 잠을 못 자 퀭한 눈과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갈라 터진 입술과 창백한 안색. 웃으면 오히려 무서울 얼굴이라 가윤은 결국 미소를 포기했다.
“울지나 말자.”
가윤은 작게 중얼거리며 병실 문을 열었다.
“엄마.”
“왔니?”
안으로 들어서자, 침상 곁에 앉아 책을 읽던 용희가 가윤을 보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인사를 건네지도, 안부를 묻지도 않았다.
“조금 전에 잠들었어.”
딱 필요한 말만 하곤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나가자. 할 말이 있어.”
“엄마 얼굴 좀 보고요.”
가윤은 침상에 누워있는 모친, 성미령에게 갔다. 마음고생과 병마로 인해 엄마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근심이 드리운 얼굴은 광대뼈가 선명하도록 야위었고, 주름도 많이 늘었다.
“수면제 먹고 간신히 잠들었어. 괜히 건드려 깨우지 마.”
쌀쌀한 주의에, 엄마의 얼굴로 향하던 가윤의 손이 멈칫한다.
“네에…….”
가윤은 마지못해 손을 거두곤 용희를 따라 병실을 나섰다.
***
빈속에 커피가 내키지 않아 예의상 한 모금 마신 가윤은,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용희를 마주 보았다. 그녀 성격에 선뜻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윤주를 통해 들은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가 보다.
2024.08.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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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윤과 해준 사이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기대되네요ㅠ
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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