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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왕세자비의 독보적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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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이쓰
163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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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윅의 왕세자로서 묻겠습니다. 내가 왜 루실 공녀가 아니라 이디스 공녀와 결혼해야 하는지, 왕성의 모든 귀족들 앞에서 대답해 보시지요.” “……미안한데, 설명하기 어렵다.” 윌프레드가 쏘아보자 이디스가 얼른 고쳐 말했다. “어렵……사옵니다……?” 이 나라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펜윅의 왕세자비가 되겠다 한 여자는, 대타 주제에 박색이 아니었다. 실은 그 언니보다 훨씬 예뻤다. 펜윅의 정당한 계승자, 하트웰가의 윌프레드 왕세자 전하에게 아무때고 반말을 해 대서 그렇지. “전하는 어째서 그런 형태인가?” 내뱉는 말마다 이 모양인데, “침묵은 은.” 심지어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나, 아직 기절 안 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엉뚱한 짓만 저지르는 여자. 하지만 이디스만큼 사랑스러운 여자를 윌프레드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작은 머리통에 그를 당황시킬 생각만 가득한 여자를 본 적도 없었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를 웃게 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그를 미치게 했다. “당신이 아기를 원하는지 물었잖아요, 이디스.” “......아기 제조를, 생산을?” “그건 당신이 말해 줘야지.” 펜윅 여자만 아니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는데. 그의 비, 이디스는 그가 공국에 보낸 소금 대신조차 아닌 대타 신부였는데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펜윅도, 왕관도 다 필요 없어요. 당신만 있으면.” “펜윅과, 왕관과, 나와, 전부 전하의 것.” 이제 윌프레드에게 중요한 사실은 딱 하나였다. 이디스는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펜윅을 다스릴, 그의 유일한 비이자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


#01. 대타 공녀가 펜윅의 왕세자비가 된 사연

정원에서 티 파티를 열기에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늦봄의 햇살은 아직 따갑지 않았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회랑의 아치 너머로 꽃망울을 잔뜩 매단 라일락이 달콤한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전에, 진짜로 티 파티가 열리긴 했었다. 그리고 그 파티는 더없이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티 파티의 주최자이자 주인공인 왕세자비는 속상한 마음에, 방으로 돌아가 애완 고양이의 털에 얼굴을 묻고 조금 울기나 할 생각이었다.

처소로 가던 중 자신의 발길을 붙든 남자의 방해만 아니었어도.

“오늘 왕세자비 전하께서 티 파티를 여셨다지요? 그거 우연이로군요. 제 모친이신 전대 보들리 공작 부인께서도 오늘 보들리가 타운 하우스에서 티 파티를 여신다고 그러시던데.”

“그래서?”

“어머니께서 본의 아니게 왕세자비 전하의 손님을 빼앗은 게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두 걸음 뒤에서 왕세자비를 수행하던 근위 기사, 주드 경이 이 불청객을 향해 말했다.

“로드 비숍. 비전하께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하실 말씀이 끝났다면 이만 비전하를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것참 유감이로군요, 왕세자비 전하.”

검은 머리 공작이, 전혀 유감이 아니라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왕성 귀족들만큼 펜윅의 관습과 예법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없지요. 비전하께서 그렇게 피로하지만 않으시다면, 지금이라도 전대 보들리 공작 부인께 가셔서 한 수 배워 보시라 권해 드리려 했건만.”

왕세자비는 외국인이었다. 그것도 원래는 펜윅 왕국으로 시집올 예정도 없었던 먼 나라의 공녀였다. 그래서 공작이 한 말은 누가 들어도 명백한 모욕이었고, 그것을 좌시해서는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왕세자비의 근위 기사였다. 더구나 근위 기사는 예전부터 이 보들리 공작과는 척을 진 사이였다.

“방금 하신 말씀에 대해, 비전하께 사과하시지요. 로드 비숍.”

“내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설명을 하자면, 비전하께서 펜윅의 관습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가신으로서 도움을 드리려 한 거라네. 이거 하나 못 알아들을 정도로 아둔한 데다, 감히 왕세자비 전하와 공작의 대화에 끼어들다니 무례하기까지 하군, 주드 경.”

“무례를 저지른 것은 로드 비숍입니다. 이 자리에서 비전하께 용서를 빈다면 이번만큼은 못 본 척해 드리지요.”

보들리 공작이 팔짱을 꼈다.

“한낱 근위 기사 주제에 나더러 용서를 빌라고? ……그렇게는 못 하겠다면?”

공작도, 주드 경도 서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먼저 입을 연 쪽이 주드 경이었다.

“모시는 분이 모욕을 당했으니, 기사로서 마땅히 이를 갚아 드려야겠지요. 기사의 방식으로.”

“주드 경.”

왕세자비가 나직이 만류했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두 남자의 투기를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허리춤에 손을 먼저 갖다 댄 것은 금발의 기사였지만, 검을 먼저 뽑은 쪽은 검은 머리 공작이었다. 왕세자비가 뒤로 물러났다. 회랑에도, 안뜰에도, 그 많던 기사들이 다 어디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주드 경?”

“왕궁 안에서, 그것도 왕세자비 전하 앞에서 검을 뽑은 로드 비숍만 하겠습니까?”

두 남자는 금방이라도 칼을 맞댈 기세였다. 왕세자비가 한 번 더 둘의 이름을 부르며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이 싸움은 둘 중 하나가 죽거나, 죽을 만큼 다쳐서 결국 죽게 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영리한 왕세자비는 직감했다. 소리를 쳐서 누구를 부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동했다.

“……왕세자비 전하.”

주드 경의 검 끝이 떨렸다. 기사의 목소리도 사정없이 떨렸다. 원래대로라면 보들리 공작에게는 이것이 기회였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왕세자비의 행동에, 할 말을 잃고 얼어붙은 것은 공작 쪽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붉은 피가 뚝, 떨어졌다. 왕세자비의 하얀 손에서 흐른 피는 그녀의 손을, 상앗빛 드레스 자락을, 회랑 바닥을 적시고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래도 그녀는 손을 놓기는커녕 더 강한 힘으로 손안을 파고드는 칼날을 움켜쥐었다.

“비전하, 놓으십시오.”

“무기를 거두면.”

“거둘 테니 제발 놓으십시오.”

기사가 거듭 말했다.

대답 대신 왕세자비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공작 쪽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에 흥미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손을 놓더라도, 주드 경이 검을 거두더라도, 저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검을 거두지 않으면 주드 경은 이번에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검을 휘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왕세자비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사태의 돌파구는 회랑 맞은편, ‘왕의 길’에서 나타났다.

“이디스!”

나타난 이는 왕세자였다. 두 가신의 싸움을 말리느라 그녀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이 황당한 광경을 발견하자마자 젊은 왕세자는 보기 드물게 잘생긴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한달음에 ‘왕의 길’의 난간을 뛰어넘고, 안뜰에 파놓은 연못의 옅은 여울을 건너 회랑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것 놔요, 이디스.”

“…….”

그녀는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할 말이 펜윅어로 빨리 생각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사이에도 피는 계속 나와서 이제는 숫제 검날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왕세자의 어조가 절박해졌다.

“제발.”

“전하의 검을 뽑으면.”

마침내 단어가 생각난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왕세자, 윌프레드가 검을 뽑았다. 왕세자비와 그 근위 기사에게 감히 검 끝을 겨눈 보들리 공작을 향해서.

* * *

말이 서툰 애버딘 공국 출신의 공녀가 섬나라 펜윅의 왕세자비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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