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눈앞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천하제일인이 죽었다. 이제부터 내가 천하제일인이다.
#001화. 내 이름이 뭔지는 아냐
깊은 밤 어느 숲속.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기껏해야 약관 남짓한 청년이 전력을 다해 뛰고 있었다.
“허억! 허억!”
거칠어진 숨에 폐부는 찢어질 것만 같고, 심장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치 쿵쾅거린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수시로 뒤까지 확인해야 했으니.
눈앞에 웬 절벽이 나타났을 땐 정말이지 하늘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제기랄….”
간절함 다음에 찾아온 감정은 좌절이었다.
그리고 마치 이를 기다렸다는 듯.
부스럭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세 명의 복면인.
그들은 하나같이 기다란 장검을 패용하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스윽.
청년이 최대한 거리를 벌려보았지만. 절벽까지 남은 발자국은 고작 두세 발.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괜한 놈의 방해 때문에 놓쳤다 했더니, 고작 이런 곳에 멈춰있었나?”
“독에 당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약해져 있을 줄이야. 천하제일인이라 해도 인간의 몸인 건 매한가지였군.”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놈 정도 되는 고수가 그냥 당해줄 일은 없으니.”
그런 그들의 말을 가만 듣고 있자니 청년은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론 정말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천하제일인이고 나발이고 그 흔한 삼재검법조차 배워본 적 없는 몸이었으니까.
그래, 죽음을 앞둔 마당에 못 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청년이 참아왔던 말을 쏟아냈다.
“이런 씹…. 야 이 미친 새끼들아!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냐? 응? 천하제일인이고 자시고 그거 나 아니라고! 안 그래도 인생 고달파 죽겠는데 왜 네놈들까지 나타나서 지랄이냐, 지랄이! 앙?”
여태 죽어라 도망만 치던 그가 그렇게 나오자, 복면인들도 퍽 놀란 눈치.
눌러쓴 복면 탓에 유일하게 보이는 그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져 있었다.
허나, 이미 눈깔이 헤까닥 돌아버린 청년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는 아예 복면인들에게 하나하나 삿대질까지 해가며 소리쳤다.
“내 이름이 뭔지는 아냐? 풍운휘(馮運輝)다. 풍운휘.”
“…풍운휘?”
“그래! 할 줄 아는 것도 고작 객잔에서 음식 나르는 게 전부인 점소이라고! 그런데 뭐? 천하제일인?! 지나가는 개새끼 똥싸는 소리 하고 있네.”
“크윽!”
“왜, 욕먹으니까 분하냐? 그러면 처음부터 확인 좀 잘하지 그랬어. 다짜고짜 검부터 휘두르지 말고 이 개자식들아.”
속에 있는 말을 모두 쏟아내고 나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자기가 한 잘못이라곤 평소 잘 때를 제외하면 늘 착용하고 있던 두건을 잃어버려 오늘 하루 맨얼굴로 일한 것뿐이거늘.
산으로 도망치기 전, 자신을 대신해 죽은 숙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자신에게 숙부는 부모나 다름없었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그를 거둬준 유일한 사람이 숙부였고.
약관을 넘어 성인이 됐을 때도 자신이 운영하던 객잔에 일까지 시켜줬었으니까.
‘참 강한 분이셨는데….’
숙부는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조카를 위해 몸을 던졌단 이유 하나만으로 죽어야 했다.
자신은 무력하게 그 죽음을 지켜만 봐야 했고.
눈을 감기 직전까지 도망치라 손짓하던 숙부를 뒤로 도망쳤으나, 이리 붙잡히고 말았다.
이대로 죽었다간 숙부를 볼 면목이 없다.
그가 누구를 위해 죽었는데.
“와라. 먼저 오는 놈 한 명은 내 반드시 길동무로 삼을 것이다. 한번 해보자고. 네놈들의 검이 날 베는 게 빠를지. 아니면 내가 너희 중 하나를 붙잡고 절벽으로 몸을 던지는 게 빠를지.”
풍운휘의 안광에도 살기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에 반면 복면인들의 살기는 처음에 비해 사그라들어 있었다.
그 비워진 자리엔 풍운휘가 광기를 터뜨리며 스쳤던 당황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공기의 흐름이 바뀌려나 싶은 찰나.
복면인 중 한 명이 잠시 잊고 있었단 말과 함께 품속을 뒤지더니, 웬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과 풍운휘의 얼굴을 번갈아서 보고는 조소를 지었다.
“정말 대단한 연기로군. 이걸 챙겨뒀었단 걸 잊었더라면 속아넘어갈 뻔했어.”
“음? 어디 나도 좀 봄세. 하! 아무리 살고 싶다고 해도 그렇지. 그 콧대 높던 무림맹주 위명천(魏明天)이 설마 점소이를 연기할 줄이야.”
“쯔쯧. 온갖 추한 꼴은 다 보이는구나. 이만 죽어라.”
스르릉.
시퍼런 검날 위로 내려앉은 은은한 달빛.
그곳에 서린 예기는 마주한 풍운휘에게 선명한 섬뜩함을 남겼다.
허나, 이미 각오를 다진 그였기에 전과 달리 물러서는 일은 없었고.
그는 역으로 용기를 내어 복면인들을 향해 물었다.
“자, 잠깐! 그 종이가 대체 뭐길래 내 진심을 고작 연기 따위로 치부하는 것이냐!”
“끝까지 모르는 척은. 좋다. 대체 언제까지 발뺌할 수 있을지 한 번 보자꾸나.”
처억.
복면인이 풍운휘도 볼 수 있게 종이를 뒤집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종이의 정체.
그것은 누군가의 용모와 특징을 그려 넣는 용모파기였다.
한데 놀랍게도 그곳에 그려진 얼굴은 풍운휘와 정말 똑같았다.
닮았다는 말론 부족할 정도.
다른 게 하나 있다면 그려진 얼굴 밑에 적힌 이름이 전부였다.
그 하나가 동공에 지진을 일으킬 만큼 지대했지만.
“무, 무림맹주 위명천(魏明天)? 어찌 내 얼굴에 이런 이름이…?!”
너무 놀란 나머지 풍운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처음엔 그저 놈들의 착각으로 인해 벌어진 참사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놈들만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하늘마저 원망스러웠다.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림맹주와 똑같은 얼굴로 태어났었다니.
이게 하늘의 장난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오, 오해다. 설마 무림맹주가 이토록 나와 닮아있을 줄은…. 내 이름은 위명천이 아니라 풍운휘란 말이다!”
얼굴에 혼란이 가득해진 풍운휘가 소리쳤다.
하지만 복면인들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귀를 닫고 어찌 목을 베어낼지만 생각할 뿐.
‘불운도 무슨 이런 불운이…!’
그렇게 그들의 검이 반짝 빛나는가 싶더니, 풍운휘의 시야로 날 선 검날이 가득 들어찼다.
풍운휘가 뒤늦게 손을 뻗어보려 했지만, 손가락 끝에 복면인의 옷자락이 닿기도 전에 목이 떨어질 것 같았다.
‘아뿔싸. 이대로 죽는구나. 그래도 한 명은 데려가려고 했거늘. 죄송해요, 숙부. 어떻게 지켜주신 목숨인데 이리 허무하게….’
흔히들 말한다.
이렇게 죽음을 눈앞에 둘 때면 주마등이 스친다고.
그런데 왜 나는 주마등은커녕 사람은 목이 잘려도 몇 초간 살아있단 말이 떠오르는 걸까.
풍운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문인가?
서걱! 하고 소름 돋는 소리가 들릴 거라 생각했던 거와 달리, 채앵! 하는 금속음이 귓가를 때렸다.
이에 대체 뭔 일인가 하고 눈을 뜨자.
2024.10.13 17:38
2024.10.13 17:38
2024.10.13 17:38
2024.10.11 06:59
2024.09.28 08:45

무공에 문외한인데 맹주를😯 어떻게 연기를 해나갈지 기대됩니다:)
24.11.30
수정

무림맹주와 똑같이 생기다니😯 앞으로 주인공이 처할 상황들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기대되네요:)
24.11.30

망자를 연기하는 솜씨가 제법인 걸요. 아직 부족한 무위로 인해 오해 아닌 오해를 살 거 같은데, 어떻게 대처해나갈지 기대돼요,.
24.10.31

사이다는 언제 주시나요! 다음 화 보고 싶습니다.
24.10.29

연기를 어떻게 해야...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까... 정말 대단합니다!
24.10.29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너무 궁금합니다
24.10.29

다음 화가 어떻게 전개 될지 궁금합니다!!!!
24.10.29

착각물이라 봤는데 재밌네요.
24.10.29

고인물들이 썩은물로 변해버렸군요... 빨리 주인공의 참교육이 필요합니다..
24.10.29

연기마저도 천재였네... 이정도는 되야 천하제일인을 연기하는구나.
24.10.29

주인공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기대됩니다
24.10.29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24.10.27

무협 착각물 처음 보는데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
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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