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업적 달성: No. 60 세계 정화]
[이번 회차 플레이 시간: 121시간]
[새로운 이야기가 해금되었습니다]
난 방금 엔딩의 스토리를 보고 실망했다.
힘겹게 얻어낸 엔딩 리스트의 마지막 넘버가 이딴 식이라니.
마음고생 후 직장에서 퇴사한 뒤 3년 동안 <하얀 나무>에 영혼을 갈아 넣으며 수백 번의 회차를 돌았다.
주인공은 앞으로 스테이지를 나아가면서 동료로 사귈 수 있는 캐릭터들을.
불필요하다며 버리고.
쓸모없는 짓을 했다며 죽이고.
심지어 가족까지 희생되면서 해피 엔딩의 ‘조건’을 달성하게 되었다.
최종 보스를 잡고 난 뒤 등장하는 엔딩 크래딧 끝에는, 엔딩 달성 기념으로 등장하는 일러스트가 있는데.
사진 같이 그려진 일러스트 안에는 주인공 혼자 공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표정이 그려진 게 너무나도 섬세해서 나까지 공허해질 거 같았다.
보통이라면 일러스트에 주변인들이 몇 명 비었거나.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함께 웃음을 지었을 텐데.
이번 엔딩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날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라 눈을 감지 못했다.
“야이 제작자 새끼들아! 게임 스토리 이따구로 할 거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모니터 양쪽을 잡고 흔들었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메일을 보고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메일에 있는 보상을 슬금슬금 기대하고 있는 내가 미웠다.
어쩔 수 없이 내 본능에 따라 마우스를 메일함에 맞췄다.
[???의 편지]
의미를 읽기 어려운 제목과 이어지는 장문의 글을 읽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이 세계를 구원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어쩌구저쩌구······.”
대신 멘탈은 무너진 터라 드문드문 읽혔다.
그리고 장문의 글 맨 아래.
[New Story]를 클릭했다.
이후 모니터 빛이 화아아- 하고 나를 덮쳤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
···분명 모니터 빛에 휩싸인 걸 기억한다.
그리고 메일의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하긴 하는데······.
당신을 믿습니다.
구원을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희망입니다.
라는 식의 내용이었던 건만 기억난다.
기억이고 나발이고.
내가 왜 <하얀 나무> 속 세계에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깨어나니 귀족이 쓸 법한 침대에.
감각이 묘해 다급하게 일어서서 거울을 보아하니, 내 모습도 아니었다.
갈색 머리에 갈색 눈, 평타 치는 얼굴.
어느 하나 일면식 없는 인물로 빙의된 것이다.
일면식 없는 캐릭터임에도 내가 왜 게임 속 세계라는 걸 알아차렸냐면.
“왕성은 방법을 강구하라!”
바로 저 밖에서 창문을 울려대는 시민들의 함성 때문이다.
거리로 나온 저마다의 손에는 횃불 또는 온갖 무기가 될 것은 하나씩 쥐어 든 채다.
공료롭게도 계속되는 침공에 연달아 군대를
잃은 왕성은 저런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
저런 분위기는 텍스트뿐인 서사를 내가 스토리 분석한답시고 반복적으로 읽은 탓에, 뇌가 무의식적으로 기억해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신할 수 있는 점은.
“이게 무슨······.”
[상태창]
[랑 알베도]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허공에 있는 푸른 홀로그램이 <하얀 나무>의 인터페이스를 연상시켰다.
스테이지형 RPG 인디 게임 <하얀 나무>.
총 챕터 9까지 있는 긴 스토리를 자랑하고 있으며 13개의 하얀 나무숲을 청소하고 재앙을 이겨내리라 라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재앙의 원인은 10서클의 마법사가 하얀 나무라는 감염 마법을 창조하고.
마법에 감염된 감염자들이 대륙을 휩쓸게 되었다는 것이 이 게임의 서사다.
내가 서 있는 세상은 <하얀 나무>의 세계이자 그 서사 속이고, 아직 면역 마법이 발명되기 이전의 시기다.
[Chapter 0 - 1]
-목표: 남작가에서 탈출하라.
-실패 시: 사망
-보상: ???
짝! 나는 두 손으로 양 뺨을 때리고 꿈이 아니라는 걸 직시했다.
내 눈은 이미 이곳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두려움을 떨치고 이성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니까.
‘······일단 정보가 필요해,’
내가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숨을 고르며 마음에 침착을 데려올 사이.
끼익, 푸른빛 머릿결의 메이드 차림을 한 여인이 내 방문을 조심히 열었다.
“알베도 도련님? 깨어계셨나요?”
“···어 그래.”
그녀는 일면식도 없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도, 도련님이라니······.
하긴, 내 복장은 따지자면 어디 귀족 같았다.
그리고 이 메이드 차림의 사람은 내 하인 정도로 치부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날 도련님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니,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나마 현 상황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인물 같기에 난 곧바로 물었다.
“이봐, 오늘이 며칠이지?”
“9월 10일입니다.”
“연도는?”
“네? ···1452년이요······.”
음, 아무래도 난 멸망이 약 2개월 남지 않은 칼란드 왕국 위에 있는 듯하다.
-1452년 한가을, 칼란드 왕국이 멸망하고, 클라벨 제국만이 유일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하도 서사를 읽은 탓에 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난 살기 위해 이 왕국을 떠날 필요가 있었다.
며칠간 여기 집안에서 어색한 연기를 부리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이곳 남작가의 가주, 랑 남작.
지금 상황으로 따지면 내 아버지가 되는 사람은 참으로 개 썩어빠진 사람이었다.
“멍청한 실패자들이 발끝 하나 닿아보려 안달이야. 저 녀석들의 역할이니 이해해라.”
식사 시간일 때면 저런 말은 디폴트였고.
“내 말에 반응이 느린 것 같으니, 손가락이라도 잘라줄까?”
짜악! 짜악! 하인들이 한 번이라도 실수한다면 모를까.
그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구한 날 뺨이나 채찍으로 몸 이곳저곳을 때렸고.
“저것들을 지하에 가두고 굶겨 죽여라, 시체는 불태우고.”
제일 가관이었던 점은 영주라는 지위를 남용하여 영지민들의 재산을 주기적으로 약탈하는 것이다.
그런 남자 밑에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장남은 어디선가 행방불명된 상태고.
차남은 바로 나, 랑 알베도다.
나흘을 남작가에서 지냈을까.
2024.09.28 05:23

실패 시 사망이라... 저런 게 있어야 주인공이 움직이죠. 재밌습니다.
24.11.06

모브 캐릭터라 정보가 많이 없는데 그와중에 실패 시 사망이라니,.. 마음이 조급해지면서도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네요... 흥미롭습니다!
24.10.30
모브캐릭터로 이 세계의 해피엔딩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 •̀ ω •́ )✧ 술술 잘 읽혀서 재밌었습니다!
24.10.26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요! 다음화도 기대합니다!!
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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