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신내림을 거부하고 출가한 단영은 어느 날 괴한에게 살해당해 로판 엑스트라 '유제인'에 빙의된다. 새 삶을 살아 보려 했으나 실수로 세계를 멸망시킬 악귀를 서브 남주인 우현의 몸에 넣어 버린다. 단영은 이 일로 그렇게나 거부하던 신을 받기까지 한다. 단영과 우현은 위험천만한 일을 겪으며 점점 가까워지는데...
흰 캡모자를 쓴 여자가 정신없이 좁은 골목길을 달린다. 투박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때문인지 여자는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만다.
여자가 넘어짐과 동시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봉투에서 참치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그렇게 굴러가던 캔은 누군가의 발에 닿아 움직임을 멈춘다.
“반가워. 이제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네.”
고저 없이 서늘한 목소리가 여자의 귓가에 닿는다. 여자? 아니, 남자인가? 반갑다는 건 뭐지? 날 아나? 의중을 알 수 없는 괴한의 말에 여자의 미간이 좁아진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여자는 괴한이 멈춰 있는 틈을 타 다시 도망치기 위해 몸을 일으킨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몸이 움직이기만 했어도 여자는 다시 뛰었을 것이다.
왜 몸이 움직이지 않지? 마치 마비가 된 듯 움직이지 않는 몸에 여자의 동공이 흔들린다.
“왜? 몸이 안 움직이나 봐?”
저를 향한 명백한 조롱에 여자가 고개를 올린다. 그러자 바람이 일면서 몇 걸음 떨어져 있던 괴한이 순식간에 여자의 앞에 도달한다. 사람은 움직일 수 없는 속도로 말이다.
... 이게 말이 돼? 아니, 사실 말이 안 되는 건 이전부터 있었지. 여자는 골목에서의 상황을 떠올린다.
뛰어도 뛰어도 집은커녕 집 근처 담벼락도 보이지 않았던 골목, 사람은 물론 개미 한 마리조차도 보이지 않았던 그 상황을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패닉이 왔겠지만 여자는 아니었다. 이 괴한의 기운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니. 여자는 무당의 피를 타고난 자니까.
“너, 이곳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잖아.”
“이런, 숨긴다고 숨겼는데 역시 알아차리는구나.”
여자를 향해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던 괴한은 천천히 몸을 숙여 여자와 눈높이를 맞춘다. 이 순간, 여자는 무언가를 알아챈다. 깨끗한 영혼과 불결한 영혼이 섞였다는 것을.
“둘이었구나? 무슨 배짱으로 온 거지? 난 널 없애 버릴 수도 있는 사람인데 말이야.”
여자는 괴한의 얼굴로 추정되는 곳을 바라보며 단단한 목소리로 말한다. 조금씩 떨리는 손은 뒤에 감추고.
“그렇지, 너는 무속인의 피를 타고났으니. 그런데, 골목에서는 왜 그랬어?”
정곡을 찔린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인다.
“안 한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거겠지. 신내림을 거부하고 출가한 주제에. 그렇지? 서단영 씨.”
괴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여자의 두 눈이 커진다.
“그건 어떻게,”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나도 말해 주고 싶은데 말이야.”
곧 죽으니 안 들어도 상관없을 것 같네.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닥 위로 마법진을 연상케 하는 새빨간 문양이 나타나고 검은 연기가 올라와 여자의 몸을 감싼다. 불이 붙지 않았음에도 타는 듯한 느낌에 여자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겪어본 적 없던 고통에 여자의 정신이 점점 흐려진다. 정신을 차리려고 눈에 힘을 주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풀리고 만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 오늘 집 밖으로 나간 거? 아니, 신내림을 거부하고 출가를 했던 그 순간부터 문제였나.
여자는 서서히 사라지는 자신의 몸을 허탈하게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는다.
“... 나중에 봐.”
그 말은 못 들은 채.
***
웅성웅성.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뜬다. 누가 자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어? 잠시만, 나 죽었잖아. 이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고개를 확 들었다.
... 뭐야? 여기 어디야?
고개를 드니 천국과 지옥은커녕 교복을 입은 파릇파릇한 학생들이 보였다. 허리를 들어 상체를 세운 뒤 주위를 둘러봤다. 누가 봐도 교실이었다. 어딘가에서 KTX를 타고 있을 태식 씨한테 여기가 어디일까요? 물어봐도 아, 교실이네요! 할 정도로 교실이었다.
근데, 아니, 나 죽은 거 아니었나? 고등학교 졸업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웬 교실이야? 심지어 내 모교도 아니야.
방금 전 골목길에서의 상황을 떠올리자 혼란은 가중되어만 갔다. 주위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걷어내자 교실 풍경이 더욱 잘 보였다. 음? 잠시만, 앞머리?
나 앞머리 없잖아.
어, 사실 이 교실을 봤을 때부터 떠올렸던 것이 있다. 빙의. 그러니까, 무속적인 거 말고. 로맨스 판타지에 나오는 책 빙의 말이다.
귀신 보는 것도 모자라 책 빙의라니, 말이 될 리가 없잖아. 나는 손톱까지 동원해 있는 힘껏 내 뺨을 꼬집었다. 진짜... 개아팠다.
아프다는 건 꿈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이 상황이 진짜라는 뜻이겠지. 난 대체 무슨 작품의 누구로 빙의한 것일까.
그때, 교실 앞에 걸려 있는 깃발이 보였다. 각각 하늘색, 금색 실로 자수가 새겨진 고래와 태양의 형상. 모를 리가 없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건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의 학교 로고니까. 이 사실을 알고 주위를 다시 한 번 더 둘러보니 이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가득이었다. 와, 이걸 보고도 몰랐다고? 애독자 실격이다. 나 그거 엄청 봤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를 처음 접했을 때가 고등학생 때였나 그랬을 것이다. 출가한 뒤로도 몇 번 정주행했었지. 이 작품의 팬이 된 계기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초반 몇 번 정도는 잘 사는 집 딸이 부러워서 대리만족용으로 텍스트가 닳고 닳도록 읽었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여자 주인공의 성격에 빠지게 됐고. 그래서 이 작품의 팬이 된 것이다.
그러면 나... 은소진의 실물을 볼 수 있는 건가. 나 누구로 빙의했지? 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은소진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정해지는 거니까.
그때 교실 뒤편에 붙어 있는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로 보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지. 나는 독백을 치려는 뮤지컬 배우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로 향했다.
책걸상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주변 학생들이 나를 보며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나라도 갑자기 누가 벌떡 일어나면 저런 반응일 것 같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거울 앞으로 다가가자 한 소녀가 보였다. 부스스한 남색 머리에 앞머리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 꼴이 말이 아니네.”
2024.09.28 05:42
로맨스 판타지에 호러가 섞이니까 좋아하는 장르가 두 배라 더 재밌어요 o(*////▽////*)q
24.11.30

주인공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24.11.12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제입니다 다음화가 기대됩니다.
24.10.27
빨간 문양이 대체 뭘까요?!! 다음화가 필요해요 ㅜㅠㅠ
24.10.25
헐!! 다음에 어떻게 되나요!!ㅜㅜ 빨리 보고 싶어요!
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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