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을 그리는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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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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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했고, 헌터가 살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대판타지

세상이 멸망했다.

이유는 터무니 없었다. 게이트 너머의 괴물들이 점점 강해진다 싶더라니, 결국 대륙마다 있는 게이트에서 드래곤이 한 마리씩 나와선, 간단하게 세상을 멸망시켜버렸다.

 

기원전부터 쌓아온 유구한 역사의 인류 문명이 그렇게 멸망했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괴물 잡으면 나오는 마석으로 우주 진출도 못했고, 온 지구에 있는 모든 헌터가 힘을 합쳐도 드래곤 하나 겨우 잡을까 말까 하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둥 몇 개로 겨우 버티는 건물에서 바깥을 살폈다.

 

한때 수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망가진 서울. 하늘이 아닌 바닥을 향해 솟아있는 63빌딩, 그 안에서 울부짖는 외뿔 늑대와 그 근처를 조심히 살피는 생존자 두 사람이 인상 깊다.

 

그런 그림과도 같은 풍경은 3가지를 의미했다.

 

새벽에도 가로등이 거리를 밝히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전파가 터지던 안락한 세상은 이젠 없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친절히 진압해주던 우리의 헌터들은 이제 없고, 대신 당신의 물품을 친절하게 약탈해주는 강도가 되었다는 현실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세상이 망해도 살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것 정도.

 

애당초 제 몸 하나 부지할 수 있던 헌터부터, 때마침 캠핑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가족과 함께 사람 없는 캠핑장에 방문한 가장, 건강에 가장 해롭다는 밤샘 글쓰기 행사로 깊은 산속에 모인 어느 작가 집단까지.

 

세상이 멸망했음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있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것도 아니고 사람은 있으니, 핵무기를 맞아도 끄떡없는 드래곤 20마리만 어떻게 잡으면 인류 문명도 다시 부활하리라. 살아있는 동안 가능할지가 문제다만.

 

나는 가장 목 좋은 자리를 찾아 침낭을 폈다. 세상이 멸망했는데도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내일도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편안했어야 할 수면 시간은 늑대 울음소리에 간단하게 지워졌다.

 

-아우우!!

 

소리가 굉장히 가까웠다. 방금 63빌딩 주변을 살피던 일행이 근처에서 들킨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상관없겠지만, 외뿔 늑대에게 쫓기는 이들은 하필 내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와중에도 남자 쪽이 품에 분유를 안고 뛰고 있길래 둘이 부부인가 싶어 인상 깊었지만, 그건 그닥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이대로 달려오는 걸 가만 보고 있다간 강철도 뚫는 뿔로 내 건물을 공격할 지도 몰랐다.

 

그랬다간 야밤 중에 다시 잘 곳을 찾아야 했다. 그것만큼은 싫다.

 

특히 건물이란 건물은 무너진 서울에서 이런 건물 찾기가 얼마나 힘든데.

 

누가 죽더라도 상관없다. 멸망한 세상은 관련 없는 남까지 도와주기엔 너무 각팍하다. 그래서 무시하려고 했지만, 아예 관련이 없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활과 노트를 꺼냈다.

 

노트에서 깔끔한 종이를 뜯어 연필로 화살을 그렸다. 깔끔한 처리를 위해 특별히 그 끝에 마나 회로가 그려 넣었다.

 

30초도 지나지 않아 완성된 그림.

거기에 내 마나를 불어넣자 그림을 그려진 종이가 사라지고 현실에 그려낸 결과물이 빈자리에 나타났다.

 

그대로 활에 화살을 기우고,

헐떡이는 생존자를 쫓는 늑대에게 발사.

 

야밤의 도시를 가르고 화살이 늑대를 향해 날라갔다. 정확히는 늑대와 쫓기는 사람들 사이였다.

 

-콱!

 

화살이 두꺼운 아스팔트를 꿰뚫고 땅에 박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시간의 텀을 두고 회로가 빛나며 불이 났다.

 

탁한 모닥불과는 다른 정순하고 맹렬한 불길이 정확히 둘 집단을 갈랐다.

 

외뿔 늑대들은 불을 으르렁거리며 경계하고, 생존자들은 이 화살이 과연 아군일지를 의심하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지원사격에 아군이라고 곧바로 믿었다가 뒷통수에 바람구멍 뚫린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걸 보면, 이들은 굉장히 신중한 생존자들이었다. 물론 내가 헌터고 상대가 일반인이라면 경계하더라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다행인 점이라면 내가 그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다는 점일까.

 

그 두 집단의 의미 없는 대치는 불이 꺼지기 직전까지 가서야 끝났다.

 

외뿔 늑대는 진작에 자리를 떴고, 두 사람은 전신주 뒤에 엄폐하곤 조금 더 기다리다 추가로 날라오는 화살이 없자, 화살의 발사된 장소,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연필 다 써버렸네.”

 

이런 한밤중에 아까운 종이 한 장과 연필을 날렸다.

종이가 넘치던 시절에나 장난삼아 종이 수백 장을 낭비했지, 문명이 무너진 지금은 종이가 더 이상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했다.

 

탐색을 끝내고 돌아가면 종이를 좀 더 챙겨놔야겠다.

 

그럴려면 푹 쉬어둬야 한다.

 

“내일은 집에 돌아가야겠다.”

 

세상이 멸망하고 나는 여전히 헌터로 살고 있다.

 

*

 

세상이 멸망하고 대략 3개월이 지났다.

 

지금 살아남은 이들의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였다. 멸망 이전부터, 혹은 멸망 후에 각성한 헌터들이거나, 그런 헌터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생존자들.

 

원래 나 한유진은 B급 헌터, 그 중에서도 굉장한 재능을 지닌 다른 동료에 비해 내 한계를 일찍 깨닫고 은퇴한 헌터였다.

 

나는 내 능력을 싫어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림으로 무기나 함정을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살아남고 있고,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전투계 능력이던 동료에 비하면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마력 회로를 담은 화살을 만들어 쏘아낼 때면, 검을 쓰던 동료는 검을 한 번 휘둘러 수십의 괴물을 베어냈다. 얼음 관련 능력을 각성한 동료는 손짓 하나로 거대한 보스급 괴물마저도 얼릴 정도였다.

 

그러니 내가 부족한 전투 능력을 훈련과 지식으로 채워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내가 B급에 머물러 때 그들은 S급이 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예전의 나는 참 과분한 동료들과 함께 활동했었다.

 

그래서 왜 갑자기 재능과 동료들 이야기를 하는가.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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