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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버터
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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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풍#판타지

천영은 신을 믿지 않았다.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영의 어머니는 생전에 몸과 마음을 다해 신을 모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공물을 바치고 기도를 올렸다. 이른 새벽마다 단잠을 깨우던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천영은 잠만 잘 수 있으면 어디서든 잘 정도로 게으른 편이었지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잔 적은 없었다. 대문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깰 정도로 잠귀가 밝은 탓이었다.

천영은 걷는 내내 어머니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가 걸어갔을 길을 따라 걷고 있으니, 그분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억 속 어머니의 뒷모습을 좇으며 길을 계속 걸었다. 마을을 떠나 산길에 접어드니, 으슥한 공기가 감돌았다. 어머니는 그곳을 갈 때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길만 골라 다녔다. 길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곳을 헤쳐가며 험준한 산을 올랐다. 발목까지 덮은 나뭇잎을 발로 치우고, 앞을 가로막는 가지들을 손으로 꺾었다. 산을 오르고 한참이 지나서야, 천영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 차올랐다. 그냥 쉬운 길로 갈걸.

아침부터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으나, 예상과 달리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천둥만 이따금 울렸다. 파도가 잔잔하게 물결치는 것처럼 부드러운 천둥소리였다. 하지만 천영은 천둥이 칠 때마다 마치 누군가 몰래 다가와 등을 찌른 것처럼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천영은 분명 신을 믿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천둥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목소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였을까. 어머니가 영면에 든 그날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하늘은 곧 무너질 것처럼 천둥이 치고 벼락이 내렸지만, 그 매서운 천둥소리도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비명보다 크지는 않았다.

천영은 어느 날 갑작스레 어머니의 출산을 맞닥뜨렸다. 어머니는 천영을 부르는 것조차 힘에 겨운 듯 마루에 누워 입만 벙긋거렸다. 천영이 달려가 귀를 가까이 대자, 어머니는 천영의 팔을 거세게 붙잡았다. 어머니의 입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거친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천영은 머릿속이 새하얘져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허둥대는 사이 바닥에는 피가 가득 고였다. 어머니의 숨이 곧 끊어질 것만 같아 의원을 부르러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천영이 불안해하는 걸 느꼈는지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고 천영과 눈을 마주쳤다. 흔들림 없는 맑은 두 눈은 천영이 아는 어머니의 눈 그대로였다. 천영은 굳은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의원에게 달려가는 동안 벼락이 동산 너머로 무수히 떨어졌다. 천둥소리는 마치 아버지에게 야단맞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벼락이 한 번 칠 때마다 천영은 속으로 아버지께 사죄했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이 왜 신을 믿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니는 천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인한 사람이었다. 억센 비바람을 뚫고 간신히 집에 돌아왔을 때까지 어머니는 천영과 뱃속의 아이를 위해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아이는 그칠 줄 모르는 천둥과 함께 태어났다. 천둥이 멎을 즈음, 어머니도 기력을 다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날 이후 천영은 천둥을 무서워했다. 하늘이 요동칠 기미가 보이면 저도 모르게 몸이 굳고 숨이 막혔다. 천둥은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꾸짖는 아버지의 호통 같았다. 모든 것을 앗아가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하늘의 저주 같기도 했다.

하늘의 목소리가 두려워 천영은 도망치듯 무작정 걸었다. 문제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집보다는 어디든 나을 거라는 생각에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머니가 매일 새벽 거닐었던 사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뒤를 밟았던 딱 한 번의 기억이 수면 아래 잠겨 있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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