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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요원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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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작가
31화무료 31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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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이 그리 말을 했으니 사실이겠지.

난 그들의 말을 믿을 수가,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누가 확 죽여줬으면.’

어제 그 사람과 헤어지고부터 방금 저 소리를 듣기 전까지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고 있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건가. 내가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분명 내가 원하던 일이었는데, 기쁘지가 않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어제저녁, 그가 내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와 꽂혔다.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만우절이라고 장난하는 거지? 그런 장난 재미없어. 하지 마.”

“오늘이 만우절이었나? 장난 아니야. 우리 그만 헤어져. 미안해.”

“그럼, 지금까지 날 사랑한다고 했던 건 전부 거짓말이었어?”

“그렇게 됐다. 그동안 널 가지고 논 거야. 이제 다른 사람이 생겼어.”

“너 어쩜 나한테 이럴 수 있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그를 처음 본 건 2년 전,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막 입사한 직후였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배구를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팀에 입단, 장래를 촉망받는 거까진 아니고, 팀에 민폐 끼칠 정도는 아닌 준수한 실력이었다.

선수 생활을 한 5년 정도 했을 무렵 일이 터졌다.

연습하다가 실수로 그만 쇠로 된 지지대를 향해 강스파이크를 때린 것이다.

그 즉시 병원으로 실려 가 응급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고만고만한 실력을 갖춘 무명선수를 찾는 팀은 없었다.

그 이후로 실업팀을 전전긍긍하다가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나는 결국 파란만장한 배구선수의 길을 접었다.

지긋지긋 해던 배구를 그만두면서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게 바로 엄마였다.

하나밖에 없는 이쁘지도 않은 키만 멀대같이 큰 딸을 옥이야 금이야 애지중지하며 뒷바라지하시던 우리 엄마.

아빠란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다.

난 왜 아빠가 없냐고 묻지도 않았고, 말해 주지도 않았다.

쿨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모녀지간이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가 사는 이 집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빠가 있는 집 애들이 부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와 달랐다.

그렇기에 아빠 없는 애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엄마도 나에게 더 애착을 가지셨던 것 같았다.

내가 배구를 그만둔 다음 날부터 엄마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됐다.

앞으로 어떻게 하냐는 둥, 어디 코치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둥, 하다못해 해설 자리라도 안 되겠냐는 둥,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배구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났고, 무엇보다 코치나 해설을 할 만한 실력도, 말주변도 없었기에 엄마가 하는 말을 깡그리 다 무시해 버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의 융단폭격은 계속되었고, 우리 모녀는 매일 싸워야만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모아둔 돈도 없어서 집을 나가면 굶어 죽을 게 뻔했기에 애당초 생각을 접었다.

그러다가 엄마의 아는 사람에 아는 사람을 통해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입사하기 전, 정장을 사고, 그동안 곱게 기른 머리도 단발로 싹둑 잘랐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사람은 처음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미용실을 하는 엄마가 당신의 손으로 직접 자르셨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자는 머리가 생명이라며, 목을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머리카락은 절대 사수하라고 했던 엄마였다.

맨날 운동복만 입다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맞춤 정장에, 어색한 단발에, 거기다 생전 처음 신어 보는 구두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출근하는 첫날, 엄마가 날 배웅해주며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너 회사 때려치우면 죽여 버린다.”

나지막이 내뱉은 그 말이 나에게 큰 공포가 되어 날아와 꽂혔다.

겉보기엔 그냥 평범해 보이지만 한다면 하는 엄마이기에 날 죽여 버리고도 남을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스물 후반의, 그것도 낙하산으로 들어온 나를 달갑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할 줄 아는 건 없고, 컴퓨터 다루는 것도 서툴러 초반에는 괄시와 미움만 받았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에게 회사의 기본적인 업무를 알려 드릴 송주성 대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송 대리라 소개한 그는 서글서글한 미남형 얼굴에 170cm 후반대인 나보다도 훨씬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얼굴만큼이나 성격도 좋아 모든 여성에게 인기였다.

여성들뿐만이 아니라 회사 사람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미영 씨, 이건 이렇게 하는 겁니다.”

특히 모든 것이 서툰 나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고, 친절히 대해 주었다.

“저는 처음 입사했을 때, 미영 씨보다 더 어리바리했어요.”

꼭 신입 시절의 자기를 보는 거 같다나 뭐라나.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나와 사귀기 위해 수작을 부렸단다.

‘자식! 그냥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지.’

그는 내가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 백마 탄 왕자님처럼 위기에 처한 나를 구해 주었다.

결국, 입사한 지 6개월 되던 날,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사귀기로 한 첫날부터 서로 불꽃이 튀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여러 번 넘어 버렸다.

송주성, 그는 내 인생 최고의 남자였다.

이 남자는 이제 내 남자라고, 우리 사귄다고 동네방네 떠들며,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뭇 여직원들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어서 회사에는 연애 사실을 비밀로 했다.

몰래 하는 사내 연애가 스릴이 있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1년 6개월을 남들 몰래 사귀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우리는 헤어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제 회사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귄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나 의논했었는데 말이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에게 온갖 욕을 퍼붓고는 혼자 집으로 와 깡소주를 들이켰다.

얼마를 마셨는지 필름이 끊겨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군데군데 기억나는 건 술에 취해 그에게 전화해 질질 짰다는 것이다.

「띠띠띠띠띠」

“하..”

지금 시간 오전 다섯 시 반, 맞춰 놓은 알람이 방 전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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