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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보스 in 폐급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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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사과
5화무료 5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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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게임의 마왕으로 48조 2708억 19만 28번의 삶을 살았다. 간신히 살해당할 뻔 했는데, 현실로 소환이란다. 그냥 좀 죽여라.

#현대판타지#현대#게임#시스템/상태창#빙의

눈 앞이 검어진다.

금색 글씨가 단 두줄, 허무하게 나왔다가 사라진다.

 

[CLEAR!!]

[그리고 왕국은 오래오래 평화로웠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

 

후두둑.

붉은 카펫에 검은색 피가 떨어졌다. 검에 뚫린 배에서 꿀럭거리며 새어나온 피의 색깔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마족의 피다.

 

시야 한켠의 채팅창에서 글자가 올라간다.

 

-?

-엔딩스크립트 이게 끝임?

-ㅇㅇ끝임

-와 이겜 ㅈㄴ성의없네

-스크립트좃노잼

-ㅇㅈ

-섭 종 해

-섭 종 해

-조용히해주세요 12시에 섭종하십니다

-앗……

-판사님 이 글은 고양이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린다.

 

“인정합니다. 아무리 40년 된 게임이라지만 너무 성의없어요.”

 

-방금 초집중해서 클리어한 사람이 말했다

-40년 롱런했으면 갈때됐지ㅋㅋ

-그래서 이겜 내용모임?

-방금옴

-전투겜은 맞지?

-ㅇㅇ

 

그들은 모를 것이다. 히히덕 대며 채팅을 치는 것이 내게 보인다는걸.

 

방송 화면에 노출되고 있는 조악한 도트그래픽 게임.

게임의 이름은 <아르시아 구원기>였다.

 

피를 많이 흘려 웅웅대는 귓가 멀리로 목소리가 들렸다.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목소리였다.

 

-40년 된 게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

 

그야 당연하지. 게임 안의 세계에 자아를 가진 캐릭터들이 즐비하니까.

 

-개인적으론 서비스 종료 후에 리메이크가 나왔으면 좋겠……

 

리메이크로 이 짓을 또 하라고?

어림도 없지.

 

-그래봤자 곧 섭종……

 

그 외에도 플레이어는 떠들어댔다.

<아르시아 구원기>의 장점들이었다.

 

마치 AI를 적용한 듯이 매번 달라지고 새로워지는 전투 패턴.

어떤 기괴한 플레이를 하든 하나같이 어려운 난이도.

옷 벗고 달려서 최종보스 앞으로 가기, 검 하나만 들고 가기, 기본 무기만 들기, 성검에 선택받았으면서 마법만 쓰기 등의 컨셉질을 하면 지적해주는 스크립트까지.

알려진 컨셉질만 200개가 넘는데, 심지어 그 컨셉질의 1회차와 다회차 대사도 달랐다.

 

<아르시아 구원기>가 조악한 그래픽에도 롱런한 이유였다.

사실상 최종보스, 마왕이 멱살잡고 끌고간 게임.

 

-검 하나만 달랑 들고 갔을 때 마왕이 ‘미쳤나…… 아니 너 정도면 정상이지.’ 스크립트 출력됐을때는 제작진 미친놈인가 싶었……

 

방금 내가 용사의 검에 찔리기 전에 했던 말이다.

이 게임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스크립트로 출력해 플레이어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아르시아 구원기>의 마왕.

카인 아르시아였다.

 

그리고 내게 있어선…….

‘게임’이라는 말로는 다할수 없는 시간의 집합체였다.

 

‘너희는 고작 한번의 게임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한번의 삶이었어.’

 

저들에게 게임은 한때의 유흥일지도 모르겠지만, 게임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매 플레이가 한번의 삶이었으며, 끔찍한 시간이었다.

플레이어에 의해 조종당하는 자아가 없는 용사.

그리고 그 용사에게 나의 동료, ‘마족’인 모두가 죽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재시작’ 또는 ‘새로운 게임’이라는 명목으로, 용사는 성검에게 선택받고 여행을 떠나는 시점으로 돌아온다.

‘마족’ 또한 다시 살아났다.

용사에게 살해당한 모든 기억을 갖고서.

 

‘회귀를…… 몇 번을 한 건지.’

 

통칭 ‘회귀’라고 부르는 것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섭종까지 4분@@@@@

-이거 도트겜인데 서버가 있?

-있음

-회사가 망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중ㅋㅋ

-마왕은 여자인게 국룰아님?

-40년전 게임이라 그딴거없음

-마왕이라니! 카인 님이라고 하셈

-도트쪼가리에 이름도 있음?ㅋ

 

채팅창이 간간히 올라간다.

<아르시아 구원기>는 폭발적이었던 과거의 위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영락했다.

서버 종료를 앞둔 지금, 플레이어는 방송을 하는 어떤 스트리머 한명뿐이었다.

 

‘우리한테는…… 잘 된 일이지.’

 

플레이어가 없으면 게임은 시작하지 않는다.

게임이 없으면 회귀도 없다.

드디어 영원히 쉴 수 있었다.

 

“잠시 후면 12시네요. 12시 이후에는 게임이 켜지지도, 진행하고 있던 것도 불러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정말 좋아하던 게임의 마지막을 여러분과 공유하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저희 마지막으로 ‘아구원’에 안녕 해볼까요~”

 

-안녕~~~~

-관짝잘가

-안녕해안녕

-엄마가기싫어요!엄마가기싫어요!

-안녕

-안녀엉

-안녕

-안녕~~~~~~

 

틱.

12시가 되었고……

게임은 자동적으로 꺼졌다.

 

비로소 자유였다.

 

‘이 빌어먹을 게임이 끝났어…….’

 

내가 이 세상이 게임임을 알게된건, 게임이 발매된지 고작 6시간이 지나서였다.

그 후로 나는 약 4만 5천 700번의 회귀를 겪었다.

 

가장 먼저 이 세계가 게임이며, 플레이어라는 것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나의 ‘마왕’ 이라는 설정값을 이용했다.

‘마왕’이라는 설정값을 가진 자로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마족’이라는 존재들에게 나를 도우라 명령했다.

‘플레이어’라는 것을 박살내고 자유를 찾기 위해.

 

내 명령을 받은 마족들도 처음엔 열성적이었다.

내가 게임을 인지하고나서, 그게 시발탄이 된 듯 모두가 그것을 깨달았으니까.

안타깝게도 마족을 제외한 인간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심으로 항쟁했다.

 

-우리는 단 한번의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

 

용사를 이길 때도 있었고, 질 때도 있었다. 용사의 해괴한 짓을 바라보며 모두가 웃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게임이 발매된 지 약 2개월이 지났을 때.

즉, 내가 2천만번의 회귀를 더 겪었을 때.

 

나는 ‘플레이어’가 한명이 아니며, 복잡하게 얽혀서 돌아가는 ‘현실’의 시스템을 깨달았다.

그건 우리 힘으로 박살낼 수 있는게 아니었다.

 

마족들은 포기했다.

스스로의 자아를 말살한 뒤에, 스크립트만 읊는 데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40년.

이제 자아를 가진 마족은, 마왕인 나 하나였다.

그마저도 죽지 못해 사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니.’

 

그래서 나는 환하게 웃었다.

조롱을 담아.

 

용사가 울것같은 얼굴로 말했다.

 

“카인 아르시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임이 진행되던 내내 한번도 말을 하지 않던 용사였다.

 

피에 젖은 푸석한 머리카락 사이로 연한 붉은색 눈동자가 눈 앞의 상대를 향했다. 자신과는 상반되는, 하늘이 내려준 찬란한 금발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 아래 혼란스러운 파란색 눈동자도.

 

하하! 웃음이 나왔다.

 

“네 자아도 깨어났구나.”

 

서버가 종료되고, 세상이 게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플레이어에게 조종당하던 용사도 깨어난 것이다.

자아 없이 똑같은 선택지, 똑같은 스크립트, 똑같은 살인을 행하던 시간.

용사는 그간의 일이 기억난 듯, 혼란스러운 모양새였다.

 

물론 용사의 반응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이제 죽는다!’

 

그토록 바라던 죽음이었다.

회귀할 것도 없이, 더 이상 ‘재시작’ 따위 볼 일 없이, 완전한 암전이었다.

 

그러니 마왕도 마족도 없는 세계에서 살아갈 용사따위.

혼란스러워 하던 말던 알 바 아니었다.

 

“나는 대체…… 마왕, 카인, 넌…….”

“알 바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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