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의뢰 수행 중 부상을 입고 조직에서 버림받은 킬러가 여동생의 치료비를 모으기 위해 킬러의 재능으로 게임 스트리밍에 도전하는 이야기.
“은퇴하라는 말씀입니까?”
클래식이 흐르는 고풍스러운 방 안에 서 있던 짧은 머리의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고급 정장 차림의 남자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은퇴 안 하면? 네가 그 몸뚱이로 이제 뭘 할 수 있는데?”
“….”
은퇴를 제안받은 남자의 이름은 차인태.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킬러 세계에 뛰어들어 스무 살이 되기 전 정점에 올랐다는 남자.
현존하는 거의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손에 쥐는 모든 것을 무기로 만든다는 극강의 암살자.
성공률 100%를 자랑하던 그였지만 아무 의뢰나 맡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었다.
인태는 킬러라기 보다는 라이벌 조직의 가족을 모두 죽인 갱단의 보스나 성폭행을 일삼던 악덕 기업 사장 같은 사회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에 더 가까웠다.
국제적 암살 조직 최고의 킬러였던 그를.
조직 내에서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요괴에 빗대어, 이렇게 부르곤 했다.
“야차(夜叉).”
그러나 한 순간의 동정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3개월 전, 인태는 인신매매로 악명 높은 갱단의 보스를 제거해달라는 의뢰를 수행 중이었다.
길을 가로막는 모든 조직원의 이마에는 총알구멍이 뚫렸다.
궁지에 몰린 보스는 폭탄 조끼를 입힌 여자를 앞세워 마지막 발악을 했다.
“쏴봐! 새끼야!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오늘 다 같이 한번 뒤져보자.”
“살, 살려주세요. 제발…. 집에 동생이 기다리고 있어요.”
눈가에 시퍼렇게 멍이 든 속옷 차림의 여자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목숨을 구걸했다.
‘동생’이라는 말에 차갑기 그지없던 인태의 눈이 흔들렸다.
다른 킬러였다면 망설임 없이 둘 다 죽여버리고 현장을 빠져나왔을 것이다.
퓩!
소음기를 단 인태의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여자의 뺨을 스쳐 보스의 경동맥을 관통했다.
“으윽! 씨….”
단말마를 외치며 기어이 손에 쥔 기폭장치를 작동시킨 보스를 본 인태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가만있어. 잘못 움직이면 터진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태의 말을 들은 여자는 덜덜 떨리는 몸을 바로 세운 채, 눈물을 흘렸다.
조끼에 붙어 있는 타이머에 표시된 시간, [04:39].
‘4초.’
인태가 나이프를 꺼내 물 흐르듯 휘둘러 여자의 몸을 감싸고 있는 조끼를 열어젖혔다.
[01:23]
남은 시간을 본 인태가 재빠르게 왼손으로 여자의 목덜미를 잡고 오른손으로 조끼를 벗겨냈다.
그리고 창문을 향해 내던지는 순간.
콰아아아앙!
“꺄아악!”
“크윽.”
그날 밤, 여자는 목숨을 건졌지만, 폭발 반경에 있던 인태의 오른팔은 겨우 형체만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폭발의 빛으로 인해 오른쪽 눈은 시력마저 잃어버렸다.
“그러니까, 그 몸으로는 이제 네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차인태. 알아들어?”
장갑으로 가린 인태의 오른손과 뿌옇게 멀어버린 오른쪽 눈을 번갈아 보던 남자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귀찮은 듯이 내뱉었다.
“내가 그간 쌓인 정이 있어서 치료까지는 해줬다. 그것도 딱 오늘까지야.”
인태의 몸이 멀쩡했을 때는 바닥에 붙어서 망둥어처럼 굽신거리던 중간급 간부였다.
인태가 남자를 노려보며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쥐려 했지만, 화상으로 녹아버린 오른손은 마음처럼 쥐어지지 않았다.
철컥.
양옆에 서있던 경호원들이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인태를 향해 기관총을 겨눴다.
“인태야. 너 아직도 네가 그, 소문의 야차같니? 여기서 개죽음 당하지 말고 나가서 이제 다른 일도 좀 해보고 그래라.”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손깍지를 끼고 인태를 마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인생은 경험이 중요하다잖냐.”
뿌드득.
쾅!
남자의 마지막 말에 이를 악물고 있던 인태가 뒤로 돌아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복도를 걸어가던 인태의 뒤로 남자가 호쾌하게 웃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됐다.
***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온 인태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동서 병원입니다.”
“차인아 보호자, 차인태입니다. 요즘 제 동생 상태는 어떤가요?”
“아 네, 차인태 보호자님. 동생 분, 병의 진행은 간신히 막고 있긴 한데…. 이전에도 설명 들으셨던 것처럼 루게릭병은 유전자 치료제 외에는 달리 완치 방법이….”
“알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선불로 결제한 금액으로는 얼마나 더 병원에 있을 수 있죠?”
“확인해 볼게요. 지금 받고 계신 최고 등급 치료 기준으로는 한…. 8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병원 관계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인태가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태가 전화를 끊으려하자 핸드폰 속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차인아 씨가 가끔 보호자님을 찾는데. 혹시 면회 오실 생각은 없으세요? 아니면 직접 전화라도….”
“나중에…. 때가 되면 가겠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요. 그럼, 이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인태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빛도 비치지 않는 인태의 오른쪽 눈동자에 차가운 가을바람이 스쳤다.
***
“아유! 맷집 더럽게 쎄네!”
퍽! 퍽퍽!
야차라 불렸던 역대급 킬러는 은퇴하고 한달 뒤, 글러브를 착용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누군가에게 연신 두들겨 맞고 있었다.
주변에 세워진 박스에는 ‘3분 동안 맞아주는 인간 샌드백, 단돈 3만원! KO시키면 10만원 돌려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손글씨로 쓰여 있었다.
덩치 큰 남자가 주먹을 있는대로 휘둘렀지만 인태는 머리나 급소를 피해가며 적당히 맞아주고 있다.
아무리 몸이 정상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을 상대로 이정도는 인태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헥! 헥!”
아직 시간이 1분이나 남았는데 인태에게 주먹을 뻗어대던 남자가 지쳐버렸다.
“아오, 뒤질것 같네. 헤엑. 헥.”
“그만 하시는거죠?”
인태가 조금의 지친 기색도 없이 물어보자 남자는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손사래를 쳤다.
“그, 그만.”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도전하실 분 있으실까요?”
“여기요. 저 한번 해보겠슴다.”
형광 반바지를 입은 남자 한명이 껄렁대며 걸어나와 인태에게 현금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일단 글러브 먼저….”
붕!
남자가 글러브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인태의 얼굴에 갑자기 주먹을 날렸다.
인태가 고개를 까딱 꺾어 남자의 주먹을 보지도 않고 피했다.
“와! 이 형님, 어떻게 피하셨지?! 형님 프로 복서예요?”
남자가 장난이라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넸지만, 인태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난은 여기까지입니다. 글러브 착용해 주세요.”
2025.03.31 22:45
2025.03.3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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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31 22:42
2025.03.3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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