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유성우에게 느닷없이 다가선 용. "너! 마법사가 돼라." 뒤죽박죽이 돼버리는 삶에서 유성우의 선택은?
누구나 한 번쯤은 용꿈이라는 걸 꾸지 않나.
승진, 합격, 계약, 소원성취, 그도 아니면 큰돈을 암시하는 꿈이고, 혹은 주변의 누군가가 임신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용꿈은 소위 길몽이었다.
“젠장….”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유성우는 얼굴을 감쌌던 손을 올려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용꿈도 하루 이틀이지, 이건 뭐 눈만 감으면 튀어나오는데 시쳇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고작 대화 몇 마디 나누는 게 전부였다.
문제는 그 대화 끝에서 눈을 뜨면 아침이라는 점이었다.
훈련소에 처음 들어가 잠드는가 싶은 직후에 기상나팔이 울리는 것처럼 신기한 현상인데, 당사자인 유성우는 잠이 부족해 글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한국이다.
태극기 펄럭이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잠들었는데 왜 중세 시대에 날아다녔을 법한 용이, 그것도 공룡 대가리에 박쥐 날개, 악어 배때기를 한 서양의 용이 잠드는 것과 동시에 나타나는 건지, 게임이나 중세 시절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유성우로서는 진심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처음 용을 본 다음 날에는 혹시 몰라 복권도 샀었다.
재수 없는 용 같으니라고.
피 같은 돈 만 원을 과감하게 배팅했는데, 어쩌면 5천 원짜리 하나 안 맞는지. 두 번째 밤에도 용은 어김없이 나타났었다. 사흘, 나흘, 그렇게 한 달이 다 돼가면서 지금은 아예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난밤이었다.
‘오늘은 제발.’
머리맡에 부엌칼을 두고 자면 괜찮을 거라는 조언에 따라 베개 위쪽의 침대 틈에 꽂아두고 잠들었으나 용은 비웃는 것처럼 뻔뻔한 대가리를 유성우에게 들이밀었다.
“진짜 왜 이러는 건데?”
“한 달 가까이 같은 말을 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게 미안하지도 않냐?”
어떻게 공룡 대가리를 한 서양의 용이 우리말을 이리 유창하게 할까? 그것도 으르렁대는 느낌을 팍팍 살려가면서.
“그러니까! 나한테는 네 몸을 만들어 줄 능력이 없다고!”
“방법 역시 한 달 내내 떠들었다.”
“미치겠네! 지금 세상에는 마법사라는 게 없다니까! 있다고 해야 그 뭐냐, 카드나 사람 사라지는 거 짜서 공연하는 마술사가 전부라고 몇 번을 말해? 결정적으로 나는 절대 마법사가 아냐! 이제 좀 알아주라!”
거칠게 항의하는 유성우를 의심하는 것처럼 눈앞의 용은 공룡 대가리를 비틀었다.
배경도 참.
아무리 꿈이지만, 이 캄캄한 세상은 또 뭔지.
온통 새카만 세상에서 용과 유성우만 색깔을 지닌 채 드러나 있었다.
크르르.
눈알 안쪽에 세로로 길게 이어진 눈동자를 뾰족하게 좁힌 용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죽여라!
꿈에서 죽인다고 해봐야 깨어나면 그만이다. 막말로 그러고 나면 이 캄캄한 세상에 혼자 남은 너만 아쉽지.
유성우는 세로로 뾰족하게 변한 용의 눈알을 피하지 않았다.
“너 찐따지?”
느닷없이?
거기에 뭔 용이 저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비속어를?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잖아?”
“마법사가 아니어서 그렇지, 그 정도는 아니다.”
“흥!”
공룡 대가리가 터트린 코웃음에서 후끈한 바람이 튀어나와 유성우의 머리칼을 휘날렸다.
“하겠다고만 해. 그러면 내가 마법사를 만들어 주마.”
“거절이다.”
뾰족한 눈알에 분노가 슬며시 올라오고 있어서 유성우는 마른침을 슬며시 삼켰다.
겁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다.
생각해 봐.
10미터는 너끈히 돼 보이는 용이 눈알에 분노를 스멀스멀 피워 올리는데 안 무서운 사람이 있겠나.
“마법사가 되려면 동정을 지켜야 한다며? 스물아홉이 되도록 모쏠인 것도 서러운데, 그런 거 안 해. 못 해!”
“꼴에 여자는 사귀고 싶은가?”
“내가 어때서?”
크르르르-.
빌어먹을. 한 달을 상대하다 보니 용의 웃음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됐다.
“그래, 얼마든지 비웃어. 대신 나 좀 살려주라. 일해야 먹고 살지. 밤마다 시달리다 보니까 마법사고 뭐고, 아주 죽겠다.”
왜 대꾸가 없어?
침묵이 길어질 때였다.
“하루 쉬자.”
빤히 유성우를 바라보던 용이 들이밀었던 대가리를 빼고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거기까지였다.
그런 뒤에 깨어난 유성우는 아침을 맞이한 상태로 침대에 앉아 머리칼을 연달아 뒤로 넘기고 있는 거였다.
‘이러다가 대머리 되겠네.’
이불 위에 흩어진 머리칼을 보며 유성우 또 다른 걱정을 가슴에 품었다.
찐따라고?
대놓고 찐따냐고 묻는 건 또 어디에서 배워 먹은 거야?
“아 불쾌해!”
유성우는 거칠게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서둘러 씻고 원룸을 나섰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했고, 제대한 뒤에 복학하지 않았다. 솔직히 악착같이 매달렸다면 할 법도 했지만, 여건과 환경을 고민한 뒤에 결정한 일이었다.
오전에는 편의점 알바를 뛰고, 점심시간부터는 스크린골프장으로 향해서 마감할 때까지 일했다.
편의점과 스크린골프연습장은 쉬는 날이 없다.
많은 아르바이트 자리 중에서 유성우가 두 곳을 선택한 이유였다. 군대 제대 후 바로 시작했고, 옮긴 적 없어서 양쪽 사장과 직원들 모두에게 신뢰와 친분도 쌓였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 유성우가 전날 근무자였던 이순심과 인사했다. 살집이 적당히 붙은 마흔세 살의 아줌마였는데, 홀로 지낸다고 들었다.
아는 사정은 그게 전부였다.
이순심이 더는 말하지 않았고, 유성우도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도시락 두 개, 김밥 한 줄, 빼놨어.”
“고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편의점 사장은 샌드위치와 김밥, 도시락을 넉넉하게 주문하라고 지시했다. 유통기한 지난 거 먹지 말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말이 없다고 해서 불편한 관계로 지내는 건 아니었다.
창고로 들어간 유성우가 빈 우유 박스를 뒤집어 앉아 도시락을 열었을 때, 이순심이 들어섰다.
“어제 온 거 정리하셨네요?”
“진열도 해놨는데 한번 봐줘.”
“그냥 받아만 두시라니까요.”
“어젯밤은 한가했거든.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매번 맡기는 게 미안하고.”
피곤함을 눈가에 붙인 이순심이 들고 왔던 종이컵을 도시락 옆에 내려주었다. 달달한 냄새가 강렬한 거로 봐서 이건 노란색 봉지커피가 틀림없었다.
2025.04.02 10:29
2025.04.02 10:17

잘 읽히고 이해되고,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집니다!
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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