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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서 빌어먹는 종으로 태어난 여자, 유종이. 종이가 종이듯 그 어미도 종이었고 그 어미의 어미도 종이었으며 까마득한 옛날, 태초의 어머니 역시 그러했다. 태어나기는 그러했으나 그녀는 집안의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언젠가 제 엄마를 데리고 그 집을 나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인집 사람들, ‘민씨 일가’ 의 온갖 악행을 버텨왔지만 이들은 그녀의 사랑도 꿈도 가족도 모두 망가뜨렸다. 그래서 종이는 결심했다. 민씨 일가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 나쁜 종이 되겠노라고. 종이에 대한 사랑을 비뚤어진 방식으로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주인집 아들 헌기, 주인집 딸의 정혼자였으나 종이와 사랑에 빠진 남자 한새, 그리고 홀로 남겨진 종이의 보호자이자 후원자였던 그녀의 새로운 가족 온주. 세 남자와 얽히고설키며 때로는 사랑에 발목을 잡히고 때로는 사랑의 도움을 받으며 원수인 민씨 일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어느 나쁜 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완결무
“종이는 종이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교실 안의 아이들이 일제히 웃는다. 웃음을 터뜨리는 이 중학생들은 국어 교과서에 실린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다. 종이는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듯 반응하지 않는다. 저런 천치의 놀림에 일일이 반응해 봤자 더 큰 놀림으로 돌아올 뿐이다.
“조용, 조용. 다음 구절은 6번이 읽어. 6번 누구니?”
선생이 아이들을 진정시키자 출석 번호가 6번, 민정경이 일어난다. 정경은 일부러 한참을 깔깔 웃다 겨우 호흡을 다듬고 글을 읽기 시작한다.
‘정경부인처럼 살라고 내 이름은 정경이고, 종년처럼 살라고 네 이름은 종이인 거 몰라?’
종이는 언젠가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정경은 언제고 말이나 행동이나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정경이 그렇게 말했을 때, 종이는 그녀에게 정경부인은 남편이 고관대작에 오르면 그 부인이 받던 봉작인데 넌 남자 없이 스스로 뭔가를 이룰 생각은 없냐며 받아쳤다. 남편의 지위에 내 지위가 좌지우지되는 삶을 사느니 나 스스로 종년으로 사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날, 종이는 정경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잘 먹고 자란 덕분인지 정경은 종이보다 키가 반 뼘은 더 크고 힘도 셌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던 싸움 끝에 그녀는 정경에게 두들겨 맞기만 했음에도 정경의 엄마에게 뺨까지 맞아야 했다.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겪은 후에야 종이는 시도 때도 없이 싸움을 걸어오는 정경에게 맞서는 걸 그만두었다. 종년의 운명이라는 게 그렇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종이는 종이다. 아니, 종이는 종년이다.
*
종이가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과 집에 대해 설명할 때면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정말로 2000년대에도 그런 곳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 비상식적인 공간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다. 그것도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도 파주에.
유악리라고 하는 그 작은 마을에 집은 50호나 될까. 개중에 몹시 큰 집 하나가 있었다. 오래 전엔 임금이 사는 100칸에 조금 못 미치는 99칸짜리 한옥이었다던 그 집은 1930년대에 친일파인 정경의 증조부에 의해 조선 총독부의 옛 건물을 연상케 하는 근대식 석조 건물로 재건되었다. 정경은 그 어마어마하게 큰 집에 살았다.
그리고 종이도 그 집에 살았다. 그녀는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얼른 교복을 벗고 편한 옷―편한 옷이라고는 하나 초등학생 때 입던 체육복이나 정경이 입다 질려 던져준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것―을 입었다. 환복을 하고나면 그녀는 정경이 입었던 교복 셔츠와 양말, 입었던 속옷 따위를 손으로 빨았고, 빨래가 끝나면 엄마를 도와 저녁을 준비했다. 그 집에는 식솔이 많지도 않고 식탁은 광활하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넓었지만 종이와 그녀의 엄마가 이 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은 없다. 대신 두 사람은 이들이 저녁을 먹을 동안 지붕 아래, 제비 둥지처럼 조악한 그네들의 방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이 시간을 보냈다. 종이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종이가 공부를 하면 그녀의 엄마는 그런 제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종이가 종이듯 그 어미도 종이었고 그 어미의 어미도 종이었으며 까마득한 옛날, 태초의 어머니 역시 그러했다. 유구한 노비로서의 역사는 혈관을 타고 이들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갑오개혁이 이뤄진 지가 언젠데 종이니 노비니 하는 말을 지껄이느냐고 할 것이다. 종이의 선조들은 갑작스럽게 노비의 삶에서 해방이 되었을 때, 스스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지 몰라 이 집에 남기로 한 자들이었다. 처음 그들이 이 저택에 남았을 때만 해도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기는 했다. 당시 이 집의 주인은 독립운동을 하던 명망 있는 선비로 만민을 평등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제 발로 곁에 남은 노비들을 아끼고 삯도 제대로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경의 증조부는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는 동지들을 밀고하며 부를 축적했고 제 종친들을 불러 모아 이 마을을 여흥 민씨 문양공파의 집성촌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제 발로 이 집에 남은 노비들이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을 금하고 남자들은 술과 노름에 빠지도록 꾀어 가정을 돌볼 수 없게 만들었으며 이들이 조금이라도 재산을 축적할라 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그리 빼앗았다.
그 악습은 집주인이 정경의 아빠, 민병학으로 바뀐 지금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데다 누구의 아인지도 모를 딸까지 낳은 종이의 엄마 역시 어디로도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공부할게.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가면 엄마를 이 집에서 데리고 나갈게.”
종이는 무기력해진 엄마를 대신해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좋은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 과외를 해서 돈을 벌기만 하면 이딴 집에서 나가도 두 식구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진심으로 믿었다. 그 믿음만으로도 종이는 이미 제 어머니와 그 위의 어머니들과는 다른 여자였다.
*
유악리 사람들은 모두 이 모녀를 불쌍히 여겼으나 아무도 이들을 도와주지는 못했다. 마을 사람 중 삼분의 일은 여흥 민씨 사람이라 병학과 한통속이었고 나머지도 이 민씨들이 가진 집이나 점포, 하다못해 땅이라도 빌리지 않은 사람이 없어 민씨 일가가 하는 일이라면 넌지시라도 말릴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그나마 측은지심이라도 가졌지만 아이들은 더 했다. 유악리의 공주인 정경이 제 집안의 하녀나 다름없는 종이를 무시하니 다른 아이들도 이를 따라 종이를 무시했고 더러는 그녀를 괴롭히기까지 한 것이다. 거기까지가 시련의 전부였다면 나았을까. 그러나 종이를 진짜 힘들게 하는 건 저보다 두 살이 많은 정경의 오빠, 헌기였다. 그의 괴롭힘은 열네 살 동갑내기인 정경의 질 낮은 횡포와는 결이 달라 무시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2025.08.25 18:12
2025.08.24 18:19
2025.08.22 18:06
2025.08.21 18:19
2025.08.19 18:13
2025.08.18 18:06
2025.08.17 17:54
2025.08.15 18:12
2025.08.14 17:58
2025.08.12 18:15
ㅜㅜㅜㅡㅠㅜㅜㅜㅜㅜㅜㅜㅜ작가님정말수고하셨습니다 너무너무 잘봤어요 마지막에 소름이 쫙,,,!!!!! 종이의 인생이 너무나 서글프고 굴곡져서 보기 괴로운 적도 많았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온주가 있기에 잘 이겨내며 살리라 믿습니다 떠나보내기 아쉽지맛 만족스럽게 결말을 맞이합니다 감사합니다!!!!!!
25.08.27
민씨일가...너무나씁쓸하고슬픈 마지막이네요.... 가슴이 미어짐...
25.08.27
ㅆ..ㅆ...욕하고싶게슬프다...아ㅡ느누ㅜ너무슬퍼요 부녀의 동상이몽이ㅜㅜㅜㅜㅜ(동상은 아니지만)
25.08.27
우리 모두?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안됫...ㅜㅜㅜㅜㅜㅜㅜ나쁜사람이었지만 종이한텐 하나뿐인가족인데...설마.. ㅜㅜㅜㅜ?
25.08.27
와....민정경의 최후가 이렇게.... 진짜 충격적이다 몰입 ㅎㄷㄷ
25.08.27
아이참 주책이네요 자꾸눈물이나요ㅠㅠㅠㅠㅠ 아빠 그 한마디에ㅜㅜㅜㅜㅜ
25.08.09
진짜...우리 온유커플좀 행복하게해주세여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미친 민씨일가들아ㅜㅜㅜㅜㅡㄴ
25.08.09
한새도 참 불쌍함...... 나쁜놈인데... 말을들어보면좀그려(대충 막례할머님 짤)
25.08.09
미쳤다...진짜 미쳤다는말밖엔....!!!!!
25.08.09
호식아ㅜㅜㅜㅜㅜㅜ 진짜 눈물난다 감동임... 낼 호식이두마리치킨시켜먹는다 내가ㅜㅜㅜ
25.08.09
어떻게 이렇게 수많은 사건을 창조하실수잇죠 작가님 진짜 천재같아여..흥미진진
25.08.09
아니..아직모자라 종이야... 넌정말착하구나ㅜㅜㅜㅜㅜ
25.08.09
와 이걸 이렇게 풀어가시다니... 빌드업 미쳤네요 작가님이 천재이실듯👏👏👏👏👏
25.08.09
어휴 ㅁㅊㄴ.... 단단히 ㅁㅊㄴ일세ㅗㅗㅗ
25.08.09

오오 작가님 기다렸어요! 화이팅입니다
25.08.08

드디어 바람이 슬슬 불겠네요 ~^
25.07.29

온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25.07.29
진짜 미쳤나 민정경;;;;;;;;;;;; 소름 완전 돋았음...미치겠다ㄷㄷㄷㄷ역대급이어요
25.07.04
무서워..너무무서운데...민정경 너무무서워... 무서워요...ㄷㄷ
25.07.04
민정경 이 ㅁㅊㄴ....ㅕ...ㄴ...... 수많은 악역들을 봣지만 이ㄴㅕ..ㄴ만큼 쌍ㄴㅕㄴ은 처음이어요...그래서 더 존잼ㄱㅋㅋ
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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