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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장난감이었나요? 갖고 놀다 버릴?” "장난감이라. 그건 좀 지나친 표현 아닐까요? ‘예쁜 장식품’ 정도로 해 두죠.“ 믿었던 황태자 남편이 나를 살해했다. 제 애인이 가진 아이를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이유로. 눈을 떠 보니 혼약 발표 3일 전. “혹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겁니까? 신탁대로군요.” 끊어진 인연을 잇기 위해, 내가 회귀할 것이란 신탁을 받았다는 사제. 잘못된 인연 때문에 목숨을 잃었건만. “그 인연은 대체 누구일까요. 다시 살아나서까지 찾아야 하는…” 인연을 찾는 것보다는, 우선 목숨을 구하는 게 먼저다. 그런데, “자네는 누구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아가씨. 누구길래 이렇게 제 명을 재촉하고 싶어 안달이신지, 궁금해서 미치겠거든, 지금.” 위험한 남자와 마주쳐버렸다.
“‘신의 눈물 테스트’를 거행하겠습니까?”
제국 569년 봄, 대신전에서 사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신의 눈물. 수백 년 전 약혼자의 부정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 쓰였지만, 이제는 근원을 찾을 수 없는 약물이었다. 그런만큼 이 질문 역시 형식적인 절차가 된 지 오래였다.
‘과연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있기나 한지.’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순서가 진행되기만을 기다렸다.
“거행하겠습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바로 오늘의 신부인 아델라이드 폰 에델하임 공주였다.
사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그 말을 번복해 주길 바라는 듯, 아델라이드 공주를 바라보는 그에게 공주는 다시 말했다.
“진행해 주시죠.”
이마의 식은땀을 손으로 훔친 사제는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 그 말씀은….”
“코르반 드 아르카디우스와 세레나 서펜티스.”
아델라이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코르반은 이미 좁아진 미간을 더욱 구겼다.
“두 사람에게 ‘신의 눈물 테스트’를 요청합니다.”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코르반은 흥미와 분노가 반쯤 섞인 듯한 눈길을 보냈다. 어디 뭘 어떻게 하나 보자, 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래, 지금이라도 여유 부려 둬.’
아델라이드는 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예, ‘신의 눈물’이 필요하죠.”
아델라이드가 눈짓하자, 시녀가 작은 약병을 들고 나왔다.
“그 약물, 제게 있습니다.”
아델라이드의 말에 사제는 나직한 목소리로 신을 찾았다. 동시에 코르반의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선물인가요, 공주님?”
그가 아델라이드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뭐 하자는 거죠?”
주먹을 쥔 그의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도드라졌다.
“뭐 하자는 거라뇨? 제 약혼자의 부정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뿐인데요.”
아델라이드는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었다.
“레이디 서펜티스께서 마침 저기 계시는군요.”
그녀의 눈이 얼굴이 새하얘진 세레나를 향했다.
“제 발로 나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델라이드의 달빛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 드릴까요?”
세레나는 마치 도움을 청하듯 코르반을 간절하게 바라봤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안면 근육이 떨렸다. 잠시 고뇌하듯 얼굴을 찌푸린 그는, 곧 황족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세레나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벌어진 일에, 신전 내에서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하던 아델라이드마저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호위무사의 검을 뺏어 든 코르반이 세레나의 목에 칼을 겨눴던 것이었다.
“이런, 어쩌지요. 문제의 그 레이디 서펜티스께서는 테스트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안 될 것 같은데.”
코르반이 느릿느릿 말했다.
“레이디는 제가 지금 처리할 테니 식을 계속 거행하도록 하시죠, 사제님.”
사제는 이제 신에 이어 성인들의 이름까지 읊기 시작했다. 아델라이드는 두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비열한 자식! 이렇게 꼬리 자르기를 할 줄이야….’
설마 세레나를 죽이려고 할 줄은 몰랐다. 아델라이드의 붉은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코르반.”
하지만 코르반이 채 칼을 휘두르기도 전 누군가가 말했다. 속삭임보다 조금 큰 목소리였지만,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코르반이 기묘한 표정을 한 채 그 자리에서 굳었다.
‘황태자가 된 후 누가 자길 이름으로 부르는 건 처음일 테지…..’
아델라이드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표정에 얼마간의 희열을 느꼈다.
‘누구냐?’라고 하는 듯한 코르반의 표정에 목소리의 주인공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제는 이제 신을 찾을 기력마저 없어 보였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아델라이드는 아, 하고 작게 탄식을 흘렸다.
“너….!”
저도 모르게 소리친 아델라이드에게, 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살짝 까딱여 보였다. 그의 입가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에 아델라이드는 잃어버렸던 평정심을 조금이나마 되찼았다.
“뭣들 하는거지.”
코르반이 신전의 문을 지키는 기사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기사들이 채 움직이기도 전, 그가 오른손을 높이 올려 보였다. 그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본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순백색의 문스톤을 향해 울부짖는, 은으로 주조한 늑대로 장식한 반지.
‘황태자의 반지잖아!’
아델라이드 역시 그것을 알아보고는 충격에 눈을 끔뻑거렸다.
“가짜 황태자 노릇은 끝났어, 코르반.”
죽었던, 아니 죽었다고 알려진 선황태자, 카리스 드 아르카디우스의 귀환이었다.
그가 이어 덧붙인 말에는 코르반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위엄이 담겨있었다.
“내 말을 따르라. 황명이다.”
***
제국 579년, 아델라이드는 죽었다.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 코르반에 의해.
아델라이드가 열여섯 살이 되던 제국 564년. 코르반의 성년식을 축하하는 무도회에서 그들은 처음 만났다.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황금빛 불빛이 호사스러운 드레스들을 비추고, 악단이 연주하는 우아한한 선율이 홀 안을 가득 메웠다.
아델라이드는 각국의 귀족들과 왕족들에게 의무적인 인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2025.06.08 07:00
2025.06.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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