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낭만? 근본? 그런 건 무시하고 뛰었다. 그랬더니 '악마의 재능'이란다. 그래. 나도 지쳤다. 인생 2회차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뛴다. 퍼기도 그러더라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1. 빌어먹을 축구
축구가 싫어졌다.
“빌어먹을 축구 때문이다.”
문자 메시지로 받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억눌렀던 본심이 튀어나왔다.
[사진은 알아서 해요. 언론에 부고 소식 안 나게 신경 써 주시고요.]
한국 매니지먼트사 직원에게 답문을 보냈다.
[네. 엠바고 요청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들어오세요.]
어차피 언젠가는 알려질 소식이다. 잠깐이라도 부고 소식을 감추고자 하는 건 한국에 돌아가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어서다.
같잖은 유명세가 뭐라고. 조용히 슬퍼할 권리를 왜 타인에게 요청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처지가 서글펐다.
언론이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아버지의 죽음은 그동안의 내 삶에 대한 준엄한 평가로 이어질 거다.
프리메이라 리가(Primeira Liga) SL벤피카 소속 축구 선수 신이준. 10년 동안 쉼 없이 유럽 축구에 도전했던 불굴의 아이콘, 혹은 10년 동안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고독사하게 만든 패륜아.
스스로 나를 평가한다면 후자였다.
* * *
나에게 축구는 생존이었다.
‘여긴 전쟁터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각오로 이를 악물고 싸웠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악마의 재능’.
찬양과 비난이 공존하는 이명인데. 목표를 끝내 쟁취하는 의지와 재능을 찬양하는 거고, 목표를 방해하는 것들을 철저히 배제했던 냉정함을 비난하는 것이다.
억울하게도 첫 프로 계약부터 그런 평가를 받았다. 해외 진출을 위해 나를 유스로 키워 준 대남 FC를 ‘배신’했다는 건데.
대남 FC 입장에선 6년간 애써 키운 유스를 돈 한 푼 못 받고 뺏긴 꼴이었으니까. 아주 틀린 비판은 아니다. 내가 도의적으로 잘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연맹 규정상 문제는 없었다. 나는 단지 규정의 사각지대를 이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나에 앞서 황의찬 선배님도 동일한 방식으로 포항 스틸러스와 마찰을 일으키며 잘츠부르크와 계약했었다.
그런 면에서 유독 나에게만 비난이 집중되는 게 억울했다.
결국 이미지 때문이다.
예능도 나가고, 국가대표로도 나라에 헌신하며 이미지 관리를 해야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시안 게임 대표로 병역 특례를 받은 이후엔 국가대표 차출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사실 이게 모든 비난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때부터 국내 팬들이 나를 ’신이 준 재능‘이 아닌 ’악마의 재능‘으로 부른 거고, 묻혀 있던 첫 프로 계약 분쟁도 그때 발굴된 거다. 하여간 그때부터 국내 팬들은 나를 언제나 자기 잇속만 챙기는 탐욕의 화신으로 낙인찍기 시작했다.
나는 남들이 뭐라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모든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무엇이 나에게 더 큰 이득이냐.’ 그것뿐이었으니까.
자연스레 저니맨(Journeyman)이 되기도 했다. 융 아약스를 시작으로 페예노르트, FC포르투, 에버튼, 리버풀, SL벤피카로 2년마다 팀을 옮겨 다녔다. 3개 리그에서 3번 연속으로 라이벌 팀에 이적하는 진기록을 남긴 거다.
‘K-피구’ ‘성공한 유다’ ‘MZ 아이콘’ 등등. 별별 악명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안티팬을 양산하는 이적 사가들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억울했다. 융 아약스에서 페예노르트는 2부 팀에서 1부 팀으로의 이적이고, 에버튼에서 리버풀은 빅 클럽으로의 이적이고, 포르투에서 벤피카는 중간에 다른 리그를 거쳤다가 간 거 아닌가.
게다가 나는 이국의 클럽 역사에 관심이 없다. 나에겐 그저 직장이다. 직장인이 직장을 옮기는 게 그리 욕먹을 일이냐는 말이다.
심지어 어느 구단이든 날 이방인 취급하고 인종 차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내 이득이 걸린 이적 문제에서 ‘클럽에 대한 충성심’을 운운하는 건 솔직히 어처구니없었다.
그래. 돈벌이 수단이라 생각했다. 근데 뭐. 그게 잘못이냐고.
나에게 축구는 절박한 생존의 도구였고, 어느 정도 돈벌이가 된 이후로는 나름 괜찮은 직업이었다.
‘나름’이란 말을 붙이는 건 환상적인 일당이란 측면에서지 다른 부분에선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내든 해외든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경기 외적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욕을 먹는 직업이 좋은 직업은 아니지 않나.
비난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람인 이상 피로감이 누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근엔 사우디 리그 알 나스르 FC에서 이적 제의가 있었고 나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현재 연봉의 2배를 보장한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 이적 사가가 루머 아닌 루머처럼 알려지자 또 난리가 났다.
어떻게 전성기 나이에 사우디로 가냐. 돈에 환장했냐. 열정이 없다. 등등.
국내 팬, 해외 팬 가릴 것 없고, 한국과 유럽의 축구 전문가라는 인간들까지 나를 돈에 미친 선수, 열정을 잃은 선수로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다.
이러니 축구가 싫어질 수밖에.
아니, 축구가 무슨 죄냐. 공놀이일 뿐인데… 공놀이야 재밌지. 문제는 축구를 둘러싼 세상이다.
무자비한 세상에 나는 지쳤다.
아버지의 죽음이 그 사실을 직시하게 했다.
세상은 아버지에게 더욱더 무자비했으니까.
* *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듯한 피가 흘렀을 아버지의 얼굴은 동토처럼 스산했다.
“내가 늙으면 이런 얼굴일 테지. 나의 죽음도 이와 같을 거고.”
차가운 아버지의 손을 어루만졌다. 굳은살이 잔뜩 박인 두툼한 손은 아버지의 치열했던 삶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다. 당신도 남들처럼 가족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셨다. 그 소박한 꿈 하나만을 위해 한평생 노력하셨던 삶이다.
하지만 잔혹한 세상이 그 꿈을 무참히 짓밟았다.
“…죄송해요….”
그리고 그 세상은 아들인 나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울음이 목구멍에 차올라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는 데도 온 힘을 쥐어짜야 했다.
죄송하다는 이 한마디가 저승까지 닿지 않는다는 게 더 한스러웠다.
조여오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계속 울컥거리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 *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유명 축구 선수 신이준이 아닌, 故 신정호의 아들 신이준으로 문상객을 맞았다.
모두 아버지의 지인분들이셨다.
“네 아버지 정말 좋은 분이었다. 가족 사랑이…. 직장 다닐 때 회식 한 번을 같이 안 하더라. 가족한테 가야 한다면서 말이야.”
“네 아버지가 사람 참 좋았어. 근데 그렇게 급사를 할 줄이야. 넌 네 아버지 그리될 줄 몰랐더냐?”
묵묵히 어른들의 말씀을 들었다. 모두 나를 향한 채찍 같았다.
“…….”
* * *
아버지는 도시 빈민이었다.
공고 졸업 후 곧바로 건설 현장에서 현채직 근로를 시작하셨고, 주경야독으로 기술사 자격증 취득과 정규직 승격까지 이루셨다.
그렇게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 조그마한 집을 마련하시고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
그리고 곧바로 나를 낳으셨는데 아버지는 내 이름을 신이 주신 선물이란 뜻에서 ‘신이준’으로 직접 지으셨단다.
아버지로선 평생의 꿈이었던 가족을 이루게 된 순간이었으니 그 벅찬 감동이 오죽하셨을까.
그런데 무자비한 세상은 아버지의 꿈을 가만두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건설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잃게 되신 아버지는 망가진 부품이 폐기되듯 직장에서도 해고당하셨다.
이후,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산재 보험금으로 버티는 날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복직 투쟁에 몰두하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에 뛰어드셔야 했다.
어머니는 보험 판매업을 하셨는데 영업에 재능은 없으셨다. 다행히 우리 가족 사정을 딱하게 여긴 지인들 덕분에 한동안 숨통을 틔울 수는 있었다.
그때부터 축구는 나에게 꿈이 아닌 생존의 방편이 되었다.
당장은 장학금 없이는 축구를 할 수 없는 지경이라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미래의 돈벌이를 위한 절박한 투자이기도 했다.
그렇게 3식구는 각자의 세상과 맞서 싸웠다. 아버지는 과거, 어머니는 현재, 나는 미래를 위해 싸웠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싸움에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거대한 조직을 함락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작은 가정을 수성하는 걸 버거워하셨다.
그나마 나의 싸움에선 희망이 보였는데, 3식구는 그 희망에 기대어 바둥바둥 버텨 나갈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무자비한 세상은 이번에도 우리 가족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 어머니는 암 선고를 받으셨다.
삶의 아이러니일까. 보험 판매업을 하시던 분이 정작 당신의 몸에는 한 장의 보험도 들어 놓지 않으셨다.
2025.04.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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