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내 남편과 꺼져!
profile image
제승리
97화무료 3화

자유 연재

조회수 73좋아요 0댓글 0

“법적으로 유부남인 남자와…… 결혼하는 아름다운 신부도 있나요?” 버진로드 끝에 선 청란이 사형수의 목을 내리치던 망나니처럼 섬뜩한 눈빛으로 불륜을 저질러 결혼하는 신랑 신부를 노려보았다. “저승사자를 만난 표정이네.” 청란은 저를 보고 파르르 떠는 신부를 가소롭게 쳐다보며, 목을 죄듯 피식 웃었다. “이혼숙려기간이 3일 남았죠. 며칠 숨죽이고 기다렸으면 이혼 확정일 텐데. 그새를 못 참고 용감하게 결혼식을 올리다니. 두 사람의 사랑에 아니, 불륜에 경의를 보냅니다.”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청란은 들고 있던 까만 포장지에 하얀 리본으로 싸인 국화 다발을 버진 로드에 내려놓았다. 장례식에서나 쓰는 국화다발이었다. 현 남편과 불륜녀와의 결혼식을 박살 낸 청란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야이 개새끼야!” 뒤에서 신부 아버지가 현 남편에게 달려들어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건 청란이 알 바가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꺼져. 그리고 지금부터는 하나하나 갚아 줄게.’

#현대#복수#재회물#다정남#상처녀#재벌남#뇌섹남#능력남#직진남#능력녀#사이다녀

1. 내 남편 결혼식에 조의를






삐죽 솟은 건물들 사이에서도 유럽의 성처럼 화려한 HL호텔 앞.


택시에서 내린 한 여자가 차갑고 시린 눈빛으로 건물을 힐끗 쳐다보았다. 지체 없이 호텔로 들어서자 로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쏟아졌다.


맑고 투명하게 보이는 뽀얀 피부에 오뚝한 콧날, 흑구슬을 닮은 까만 눈동자의 선하고 청초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바닥을 울리며 걷는 모습에선 심상치 않은 기운이 풍겼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던 여자는 잠시 로비 중앙에 멈춰 숨을 고르면서, 여유로운 눈빛으로 계단 위를 째려보았다. 이글거리는 까만 동공에 치명적인 독이 담겼다.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 선 여자는 벽에 붙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터져 나오는 욕을 삼키려 서둘러 입술을 깨물었지만,


“하아.”


결국, 신음 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기에, 여자는 손가락으로 절도 있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장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또각또각.


바닥을 울리는 딱딱하고 거친 소리에서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가 묻어났다.






***






토요일 1시 30분, HL호텔 3층 라엘라.


이곳은 우아한 유러피안 스타일의 연회 장소로 재벌이나 톱스타가 스몰 웨딩을 많이 하는 곳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연회장의 닫힌 문 틈새로 현악 삼중주로 연주되는 경쾌하고 발랄한 OST 곡이 흘러나왔다. 하객으로 왔다면 그녀도 영어로 흥얼거릴 수 있는 익숙한 곡이었다.


짙은 갈색의 오크나무 웨딩홀 문 위엔 화이트 작약, 핑크 작약, 화려한 영국 장미, 보라색 수국을 엮어 만든 커다란 하트 꽃장식이 성대한 결혼식이 열리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당장에 저 문을 열고 쳐들어가도 시원찮을 판이었지만 여기서 일을 그르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입 안의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아린 통증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깊게 들이마신 숨을 길게 내뱉고 배에 힘을 주었다.


“후우-.”


곧 허리와 어깨가 곧게 펴졌다.


몰려오는 긴장감에 잠시 연회장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에 무언가가 콱 들어섰다.


“신…랑…… 김진국, 신부 이. 희. 연이라!”


문 오른쪽에 세워진 보드에 흘림체로 [우리 결혼합니다. 신랑 김진국, 신부 이희연]이 쓰여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이 터졌다.


그제야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웨딩 사진으로 꾸민 포토 테이블이 맺혔다.


‘미친 것들.’


꽃이 한창인 제주에서 촬영한 야외 웨딩 촬영 사진까지 보다 보니 혈압이 올라 이마를 감쌌다.


“결혼 준비하는 내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어떤 신랑 신부보다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본 그녀의 눈에서 차가운 불길이 거칠게 일었다.


“참 행복했을 거야.”


맹수 같은 눈으로 사진 속 신랑 신부의 목을 죄듯 훑어보며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 행복을…… 이대로 허락할 생각이 없어.”


온기라곤 묻어나지 않는 건조하고 차가운 음성이었다.


이곳에선 이혼 합의서를 제출하고 이혼 숙려 기간을 3일 남겨 놓은 청란의 현 남편, 김진국의 도둑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진국은 행복이 잔뜩 묻어난 눈빛으로 새 신부 희연을 바라보았다.


희연은 그녀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 아버지가 심었다는 말간 사과꽃을 일일이 잘라 만든 웨딩 베일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 아침에 잘라 온 하나밖에 없는 뽀얀 사과꽃 부케를 들고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희연아, 오빠가 행복하게 해 줄게…….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사진이 나오는 화면을 보며 희연이 코를 찡긋하곤 해사하게 웃었다. 그에 맞춰 진국이 다정스레 그녀의 손에 깍지를 끼었다.


솜사탕을 베어 문 것 같이 달달한 영상에 예식장에 모인 하객들의 시선도 정면을 향했다.


-끼-이익!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소리가 결혼 영상에서 나오는 밝고 경쾌한 음악을 날카롭게 잘라 내었다. 고개를 옆으로 숙이고 어깨를 올려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였다.


이어서 결혼 영상을 트느라 어두워진 홀 안으로 바깥의 빛이 강하게 따라 들어왔다.


어둠과 빛의 경계 사이에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뒤에서 비치는 강한 빛에 누구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이 분산되자, 희연이 미간을 팍 구겼다.


남의 결혼식에 도중에 들어오면서 이렇게 예의 없이 구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가 싶어, 신부의 본분을 잊고 짜증을 담아 째려볼 때였다.


“꺅!”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본 그녀는 귀신을 맞닥뜨린 것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툭-.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힘없이 부케가 추락했다. 신부인 그녀의 얼굴도 바닥에 대고 힘껏 내리친 부케처럼 뭉개지고 일그러졌다.


“저……, 저.”


희연이 파들거리는 손으로 서 있는 사람 쪽을 가리켰다. 그녀의 몸이 북극 칼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렸다.


결혼식 중간에 난입한 사람을 확인한 하객들도 놀라 주춤거리며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섰다.


뒤에서 비친 밝은 빛에 가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까만 옷을 입고 레이저를 쏘듯 어둠 속에서 이채를 번쩍이는 그녀.


버진 로드 입구에 서서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 쳐다보는 여자는 이혼 숙려 기간 3일을 남겨 놓고 결혼식을 올리는 김진국의 처. 제청란이었기 때문이었다.


“저승사자를 만난 표정이네.”


청란은 저를 보고 파르르 떠는 희연을 가소롭게 쳐다보며, 한쪽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그러자 오른쪽 볼에 옴폭 볼우물이 파였다.


싱긋 웃는 모습이었지만 앞에 선 두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날이 바짝 섰다.


혼주석에 앉아 있던 신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녀의 시어머니 모 여사도 동시에 일어났다.


청란은 비웃던 입꼬리를 차갑게 내리고 매섭게 그들을 노려보았다.


청초한 난의 향기를 풍기며, 다른 사람에게 청량감을 주는 삶을 살라고 지었다는 이름.


제청란.


하지만 오늘은 건드리기만 하면 콱 물어 버릴 것 같은 매서운 표정으로 독을 품고 있었다.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고객센터이용 약관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유료 콘텐츠 제공 약관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

Copyright © viewcommz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