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이제 얼마 남지 않았잖아. 그자의 순결한 피를 취할 시간.” 흡사 태양처럼 작열하는 이슈트반의 적안에 서리같이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움직이면, 다쳐.” 테레지아의 턱을 지탱하던 지팡이가 그녀의 맨살을 그으며 선득하게 내려왔다. 배꼽 근처까지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와 닿자, 긴장한 마른 근육이 움푹 패였다. “나에게 솔직하지 않아도… 다치겠지.” “나의 복종을 원하는 거야? 얼마든지 해. 오라버니.” 새하얗게 차오른 떨림을 뒤로 감춘 테레지아는 해말간 비소를 얼굴에 띄우며 양다리를 느슨하게 벌렸다. 나른한 야욕이 깃든 남자의 낯이 정염이라는 색채로 휩싸였다. *** “내 백 주년 생일 선물로 이 순결한 남자를 원해. 우리 성으로 데려와 줘.” “허락하지. 단 그자가 너에게 스스로 제 동정을 내어놓게 만들어.” 정신과 박사 레오폴트는 한 귀족 신사의 초대로 고성에 당도한다. 볼프리히 백작 남매의 내기 거리에 불과했던 레오폴트는 자신의 환자인 테레지아라는 아름다운 늪에 속수무책 젖어드는데…. 뱀파이어에게 육신을 사로잡힌 남자. 그에게 영혼이 얽힌 뱀파이어. 그리고 그들을 주시하는 암흑 속 붉은 눈동자. 음욕과 애증과 배덕이 뒤섞인 핏빛 성채 속에 갇힌 진실은 무엇일까. 시간도 빛도 닿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피로 묶인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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