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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결혼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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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난주
9화무료 9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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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구인공고를 보고 덜컥 찾아간 곳이 우성 알파 기업으로 명성이 자자한 두원이었다? 그리고 계약을 내건 이가 두원의 사장 석도헌이라니? ‘1년 계약직, 비밀엄수, 열성 오메가 우대’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지만 돈이 필요했던 진이서는 1년 동안 조용히, 비밀 엄수를 한다면 계약이 끝난 후에는 건물 한 채와 10억을 준다는 말에 홀려 덜컥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데. “근데 무슨 계약직인가요?” “결혼입니다.” 과연 건물 한 채와 10억을 원하는 열성 오메가 진이서는 오메가를 혐오하는 우성알파 석도헌과 1년 동안 무사히 계약직 결혼을 마칠 수 있을까. 아니, 꼭 무사히 끝마쳐야 한다!

#BL#동거#오메가버스#정략결혼#잔잔물#달달물#계약관계#다정공#무심공#후회공#미인수#얼빠수#짝사랑수#미남공#도망수

어둑한 회의실 가장 안쪽. 커다란 벽면에는 빔프로젝트에서 쏜 PPT가 대형 스크린을 빽빽하게 채웠다. 프레젠터는 제 몸에 그려진 PPT를 지나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번 미국 진출 캠페인의 초기 투자액은 약 12억원 규모이며, ROI는 현재 추산 기준 148%입니다. 단기적 이익뿐 아니라 장기 브랜드 파워 측면에서도….”

“박정섭 팀장님.”

“네, 네!”

“ROI 수치 하나로 우리 브랜드 전략을 설득할 생각입니까?”

발표자이자 기획 총괄 박정섭 팀장은 부사장의 질문에 지옥불에라도 떨어진 듯 발뒷꿈치를 움찔거렸다. 심장은 이미 저만치 떨어져 있고, 제게 붙은 시선은 차갑기 그지 없는데도 대답은 한시라도 늦어선 안 되기에 총괄 책임자를 볼 새도 없이 입부터 열었다.

“…예,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수치 중심으로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전략의 핵심은 단순 수익률이 아니라, 브랜드와 타겟 고객 간의 연결 지점을 확보하는데 있습니다. 특히-.”

부사장의 옅은 한숨이 박정섭 팀장의 말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회의실 안에 있던 팀원들 모두가 사형 선고를 받은 듯 헛숨을 들이켰고, 총괄 책임자이자 실장이 그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뗐다.

“부사장님.”

조심스러운 실장의 부름에 부사장이 미동도 없이 눈동자만 그쪽으로 굴렸다. 그 모습이 당장 목숨줄을 옥죄는 것 같아 실장이 괜스레 제 넥타이를 고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팀장이 실무를 주도하다 보니 다소 전달이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전략 방향 자체는 본부 내 충분한 검토를 거쳤고, 브랜드 일관성 역시….”

말하는 내내 부사장의 눈치를 보던 실장은 오랜 시간 그를 봐온 만큼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다급히 부사장을 부르던 입이 돌연 힘껏 오그라들었다.

“부-.”

“검토요?”

간신히 붙어 있던 심장이 쿵, 바닥을 찍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실장은 이제 제 쪽으로 완전히 몸을 튼 부사장에게서 어떻게든 눈을 돌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기에 부사장의 한쪽 입꼬리에 걸린 냉소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검토 끝에 나온 전략이 이겁니까? 숫자만 정리하고, 브랜드는 뒤에 붙이면 된다는 식으로?”

“그,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기획 단계에서 ROI 기준도 중요하다 판단했-.”

“중요하죠. 그래서 실장님은 더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과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실장의 입술이 딱 다물렸다. 부사장이 지적하는 부분이 무엇이고, 어떤 부분을 질책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는 대꾸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부사장의 검지가 톡톡 회의실 데스크를 두드렸다.

톡. 톡.

시계 초침과도 같은 일괄적인 속도로 회의실을 울리는 단음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듯했다. 부사장은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숨죽인 이들을 눈으로 쓱 훑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회의실 내부의 의자에 동시다발적으로 드륵, 소심하게 밀리고 실장과 팀장, 팀원들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뗐다.

“기획 총괄이 중심을 놓쳤다면, 총괄 책임자는 방향을 바로 잡았어야죠. 그렇지 않습니까, 실장님?”

부사장이 대답을 듣기 위해 실장을 보았으나 돌아오는 거라곤 바닥으로 떨군 시선이었고, 팀장은 정수리만 내내 보이고 있었다. 부사장은 엄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떼고는 데스크에 놓인 보고 자료를 톡 밀었다. 바닥으로 떨어지진 않았으나 눈길을 모으기엔 충분했다.

“박정섭 팀장님.”

“…네!”

“다시 만드세요.”

경악 어린 시선이 일순 이쪽으로 매섭게 달라붙었지만 그보다 더한 부사장의 시선에 도망치듯 잽싸게 고개를 떨궜다. 유일하게 이름을 불린 박정섭만이 부사장과의 독대라도 하는 양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기획서부터 다시 보고 올리세요. 이번엔 수치 말고, 브랜드가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보고는 다음 주 수요일 오전 회의로 하죠.”

정확한 요일을 들은 귀들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슬금 꺼내 화면을 응시했다. 저마다 탄성과 비명을 작게 내질렀지만 그건 부사장이 헤아릴 부분이 아니었다.

“…기한을 넘기면 그땐 실장님이 직접 발표하세요.”

짙은 낭패감에 젖은 실장을 보던 부사장은 곧바로 몸을 틀었다. 그 사이 보고 자료를 챙긴 비서가 조용히 회의실 문을 열었다.

비서는 회의실을 등진 부사장을 뒤로 하고 벙진 팀원들에게 묵례했다. 다급히 마주 인사하는 그들이었으나 얼이 팔려 시원치 않았다. 비서는 입꼬리에 미소를 얹은 채 소리없이 문을 닫았는데 때마침 안에서 신음과 비명, 곡소리가 난무했다.

꽤 거리가 있건만, 어느새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간 부사장은 신경질적으로 엘리베이터 상향 버튼을 눌렀다. 옆에 선 비서가 부사장 쪽은 보지도 않고 비싯 작게 웃었다.

“오늘 예민하시네요. 러트세요?”

“……차라리 러트였으면 좋겠는데.”

“큰일 날 소리를 하세요. 우성이시면서.”

턱을 끌어당긴 비서가 대뜸 손바닥을 내보이며 부사장 앞에서 흔들었다.

“카드 주실 거면 지금 주세요.”

잠시간 비서를 보던 부사장은 정장 재킷 안쪽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개인 신용카드를 뺐다. 그의 개인 카드를 낚아챈 비서가 정중히 묵례했다.

“오늘도 잘 전하겠습니다.”

으레 그렇듯, 부사장은 기획을 뒤엎고 나면 사기를 위해서라도 그 팀원 전체에게 회식을 권하고는 했다. 단, 부사장이든 비서든 참여하지 않는 그들만의 회식을 말이다.

비서가 부사장의 카드를 집어넣고 얼마 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부사장이 먼저 들어가고 이어 비서가 바로 윗층인 22층을 누르고 살짝 옆으로 물러나 섰다.

곧바로 한층 오른 엘리베이터가 1분도 채 되지 않아 활짝 열렸다. 비서석에 앉아 있던 사장실 비서와 비서실장이 일어나 허리를 바로 세웠다.

“회의는 잘 끝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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