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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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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현
14화무료 14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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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등대가 되어준 참어른의 죽음을 발판 삼아서. 스스로의 아픔을 가장 가까운 곳에 묻어두고서. 스스로 심연에 떨어진, 설익은 어른의 이야기.

공모전 참여작#판타지#현대판타지#현대#성장물#생존물#사연캐#트라우마

심연, 깊은 연못. 물이 깊고 넓게 고일 수 있는 세상 모든 곳이라면 그것이 나타났다.


우리가 흔히 몬스터라고 부르는 것들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그것들을 견뎌내야 했다.

인류에게 심연의 첫인상은, 그저 재앙.


"아빠, 아빠, 왜 전화를 안 받아."

어디선가 가족을 찾는 벨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그 벨소리의 주인은 통화음이 들릴 때마다 딸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에 항상 설레었지만. 이제는 그런 소소한 행복조차 어제가 마지막이었다.

뚜르르- 뚜르르-

벨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살아. 살라고 너는."

그 말을 끝으로, 주저앉은 남성이 소년의 손을 꼭 붙잡는다. 고개가 푹 꺾여 소년을 끌어안던 힘이 다 사그라지면서. 그래도 소년은 떠나지 않는다. 바로 앞에 있으나 아주 멀리 떠난 남자를 배웅해야 하니까.


"신, 신이시여! 어린 양을 살피소서! 이 어린 양은 구원받아 마땅할...!"

신자는 쥐고 있는 팬던트가 살을 파고들 때까지 기도한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였으니. 그녀는 생각한다. 유일한 탈출구는 위에서 내리쬐는 희미한 빛무리가 아니라, 그곳에 있다고.


"살려줘! 아무도 없어? 내 발이, 발이..."

다리 한 짝이 몬스터에게 밟혀 으스러진 사람이 소리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큰 소리를 내는 것뿐. 살고 싶다, 아프고 싶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다른 이의 것에 파묻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리 와, 걱정 마."

어린아이가 제 누나의 품에 꼭 껴 안긴다. 평소처럼 포근한 그 느낌에 벌벌 떨던 아이의 손은 차분히 가라앉아, 그와 함께 누나의 의식도 가라앉는다. 그녀의 품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음을, 아이는 아직 모른다.



..



..



..



하루.


한 달.


1년.


4년이 넘어서도 몬스터들의 출현은 계속되었다. 물 밖으로 기어나오는 그들은 이제 일반적인 화기로는 제압할 수 없었다.


그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남자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사십이었으며, 평생을 기를 아들과 평생을 사랑할 아내가 그의 가족이었다.


그리고.


"아빠!"


반가운 아들의 목소리. 아내와 아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빠."


그러나 괴물도 그곳에 있었음으로.



......



잃고 말았다.




아빠.


환청이었다.

이미 죽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으니. 남자는 불과 사흘 전 잃은 가족의 빈자리를 차마 버틸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신, 뭐 하시는 거예요!"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남자는 심연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뭐라도 해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잠시만요."


죽으려는 것이다. 스스로.


"제발, 제발요 제발. 전 살아야 해요."


"아니, 살려는 사람이 이런 곳엔 왜...!"


"아내랑 아들이 없으면 전.."


남자는 이를 악물며 흐느꼈다. 건장한 체격의 군인들 몇이 달라붙었음에도 한 식구의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끌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나 더 와서 좀 막아봐!"


기적은, 이런 엉뚱한 곳에나 있었다.

그의 팔을 붙잡던 군인이 남자의 엉성한 발버둥에 채여, 잠깐 몸이 기울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놓치지 않은 남자가, 단번에 힘을 내어 군인들의 완력을 뿌리치고야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만한 힘을 가졌다.


자신들도 빠질까 걱정하여 적극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그들은, 기어코 그가 심연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자살하였다, 죽었다. 모두가 그런 사고가 일어난 줄로만 알았다.


이 주 뒤, 그는 심연에서 살아 돌아왔다. '맥'이라는, 아주 특별한 능력과 함께.


그것이 시초였다.

자의로 심연에 떨어져, 몬스터를 해치울 능력을 얻어낸 사람들.


그런 힘을 얻어 몬스터를 처치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세이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들의 능력을 B급, A급 같은 것으로 나누지는 않았다. 세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우스꽝스런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은 없었으니.


***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겨울.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심연이 나타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잠시, 심연을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고, 조금 더 지나서는 생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쓰러지는 사람들처럼, 공포는 과일처럼 달아올랐다. 붉게, 붉게.


심연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사람이 있는 그 어떤 곳이든 잔혹한 모습을 아낌없이 드러내었다. 불운하게도, 몬스터들이 지나친 곳에는 생긴지 얼마 안 된 놀이공원이 있었다.


몬스터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서 사람들을 학살했다. 창이 넓은 유리는 그들을 막기에 너무 얇았고, 어설프게 무기를 쥐는 사람들은 유리벽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을 믿지 못한 사람들도 자신의 발치까지 굴러 온 사람의 자취를 보고서야 경악하였다.


무작정 도망치는 사람. 발이 굳어 경직된 사람. 핸드폰을 꺼내 찍는 사람.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반나절하고도,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된 학살. 그 속에는 두려움에 떨며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는 학생, '은하성'도 있었다.



그 시간 놀이공원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겨울임에도 날씨는 춥지 않은 편이었고, 중학교 졸업을 맞아 그의 여자친구, 희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은하성도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주문한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나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큼 달콤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동그랗게 만들어지지?"


"그니까. 내가 하면 망할 것 같은데."


그 둘이 줄곧 집중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의 비명을 놀이기구를 탄 사람들의 것과 구분해내지 못했다.

솜사탕을 만들어주던 직원이 비명횡사하여, 그의 붉은 것이 솜사탕 기계에 빨려 들어가고 나서야. 하성과 희나가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카드득-


부러지면 안 되는 것이, 부러질 때 나는 소리. 사람의 뼈도 그 중에 하나였다. 그 직원을 삼키던 몬스터와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하성은 놀라 몸이 굳었고, 희나는 그런 하성을 다급히 끌어대었다.


"야, 뛰어"


하성은 심장이 궁궁-거리는 충격과 함께 굳어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희나와 손을 잡고 달리고 있었다. 은하성은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잠시 멈추려 했지만, 희나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절대로 놓지 않을 기세의 희나의 작은 손을 봐서라도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나쁜 일은 첨예하게 설계된 불행이 맞물려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정신없이 뛰어만 다녔으니 그들은 무언가를 살필 틈이 없었고, 체력도 한계였다. 눈은 완전히 녹지 않은 터라 바닥이 듬성듬성 미끄러웠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희나는 투명한 얼음바닥에 미끌어져,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완전히 고꾸라졌다. 둘의 손이 끊겼다. 어떻게든 일어나려 노력했지만,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자꾸만 허우적댔다. 희나가 간신히 일어나 달리려고 해도 얼마 못 가 발목 때문에 주저 앉아야 했다.


은하성은 발을 멈추었다. 희나의 뒤에서는 '그것'이 보였다. 다시 그녀를 보았다.

희나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하성은 죽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또 도망치지 않는다면 처신이 끔찍해질 터였다. 분명히.


주춤, 주춤.

은하성이 내는 소리다. 자신을 위해 달려주었던 연인을 두고 떠날 작정으로, 곧장 달아날 궁리를 하는 겁쟁이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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