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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녀가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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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1화무료 1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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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샹들리에에서 떨어지는 빛조차 목소리를 내는 듯했고, 그 아래로 수많은 드레스 자락이 휘돌았다. 웃음소리와 음악이 겹치며 끊임없이 울리는 가운데 이레나는 한 켠, 사람들의 시야에서 비켜선 자리에 서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의 구경꾼. 조명은 늘 다른 누군가에게 향했고, 그녀는 그 빛의 바깥에 있었다. 초대장은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으로 도착했다. 황후의 시녀였던 어머니에게 남겨진 마지막 흔적. 그 초대장을 통해 이레나는 몇 번이고 연회장에 들렀고, 그렇게 또 한 번, 아무도 모르게 여길 찾았다.

“이번엔 데뷔당트래.”

누군가의 말이 지나갔고,

“황녀라고 하더군.”

또 다른 이가 덧붙였다. 그 이름이 처음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이레나는 의미 없이 넘겼다. 이곳에서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아이. 금발에 금안. 주인공인 그 아이. 그러다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멎었다. 아이였다. 아직 앳된 얼굴, 어딘가 반짝이는 눈동자. 금발이 어깨 아래로 흐르고, 빛을 머금은 눈은 마치 수정 같았다. 그리고, 그 곁을 나란히 걷는 남자. 이레나는 조금 놀랐다. 황제였다. 전례가 없었다. 황제가 직접 황녀의 데뷔당트에 동행한 적은, 적어도 이레나가 아는 한 없었다. 심지어 그누구도아닌  그 황제가. 그 자리에 선 황제는 무표정했지만, 그 침묵 안에서 딸과 나란히 서 있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고, 경배는 겹겹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레나는 그 장면을 마주하고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딘가 숨이 턱 막혔다.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황녀는 웃고 있었다. 그 곁에 선 황제의 눈가에도, 바람 같은 미소가 얹혀 있었다. 이레나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손에 쥔 샴페인 잔은 따뜻해졌고, 입술에 닿지도 않은 탄산은 더 이상 기포를 내뿜지 않았다.

"..."

이곳은 화려했다. 빛이 넘쳤고, 향수 냄새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한순간이자 정점일 그런 장소였다. 그러나 이레나에겐, 그 어떤 장면도 피부를 뚫고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정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기억 저편 어딘가, 누군가가 말했다. ‘이해받지 못할 감정은 꺼내지 않는 게 낫다’고. 그녀는 전생에서도 고아였다. 이 생에서는 어머니가 죽은지 오래고, 아버지는 그녀의 작위를 가문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 말하자면, 전생보다 더한 결핍이 이 생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지쳐 있었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조차, 이젠 들지 않았다. 지나친 희망은 언제나 더 깊은 좌절을 안기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그걸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어딘가 숨이 턱 막혔다. 이건 질투였던것 같다. 처음으로 느낀. 말없이 부러워하던 감정이, 이제는 뼈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이 되었다. 그 아이는 세상의 중심일 것이다. 자신은 언제나 가장자리다.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받을 운명을 타고났고, 누군가는, 그런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이레나는 더 이상, 그 무대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그 연회장을 등졌다. 마차 안은 조용했다. 이레나는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며, 조심스레 허리를 펴 앉았다. 척추에 깃은 긴장이 손끝까지 전해졌다. 지쳐 있었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슬펐지만, 눈물은 없었다. 창문 바깥으로 연회장의 불빛이 서서히 멀어졌다. 환하게 웃던 황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황제. 정말로, 주인공 같은 사람들이었다.

'잘 어울리네.'

감정 없는 속삭임이 속에서 스쳤다. 이레나는 자신이 이 세계에 빙의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이전과 비슷했다. 고아였던 전생처럼, 이곳에서도 그녀는 혼자였다. 어머니는 없다. 죽었다는 사실 외엔 아는 것이 없다. 아버지는 살아 있지만, 그녀를 딸이라 부르지 않는다. 남작가의 작위는 없는것이나 다름없고, 아버지의 정부는 대놓고 자신을 무시한다. 그래서 이레나는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신이 왜 여전히 '영애'인 채로 저택의 구석에 머물고 있는지. 아버지가 왜 눈도 마주치지 않는지.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알아도 바뀌지 않으니까.'

마차가 조용히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영애님.”

문이 열리자, 이레나는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바닥은 차갑고, 밤공기는 스산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집 안은 어두웠다. 불을 켜줄 하인도 없고, 반겨주는 사람도 없다. 이곳은 그녀의 집이지만, 그녀가 주인이 된 적은 없었다. 촛불을 켠 방 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단정히 올려 묶은 갈색 머리, 유행은 한참 지난 드레스. 그리고 무표정한 눈.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중얼거린다.

“이번에도, 아니네.”

희망은 없었다. 원래 없던 것이었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이레나는 눈을 감는다. 다음날이 와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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