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양난의 영향으로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져 갔던 조선후기. 그러한 조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왕실에서 하나의 불길한 예언이 들려온다. “지금의 군주(郡主) 자가께서는 조선을 망하게 할 악신의 환생이옵니다!” 감히 조선의 금지옥엽인 군주, 선화를 건드리는 무당의 말. 그러나 그런 무당의 말이 맞다는 듯 그 이후로 선화에게 영안(靈眼)이 트이게 되는데.. 불길한 무당의 예언과 선화의 영안.. 선화에게는 도대체 무슨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오가는 소란스러운 궁궐에 우렁찬 여자아이의 소리가 지나가는 궁인들을 멈춰 세웠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궁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깔끔히 정리된 흙 길은 작은 발자국들로 어지럽혀지기 시작했다.
“하하! 드디어 해방이다-!”
“군주 자가! 그렇게 뛰면 다치시옵니다!”
그런 군주(郡主)를 나이 많은 상궁이며, 또래 궁녀 할 거 없이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멈춰 세우기에 뜻을 모아 움직이는 상태였다.
여자아이는 금색 자수가 흙에 탁 해진 보라색 저고리와 주름들이 이리저리 얽힌 푸른 치마를 손에 든 채 하얀 속바지를 내보이며 기와 담장 사이를 내달렸다.
도저히 왕족 이라고는 보기 힘든 행태였다.
궁인들은 이러한 소란스러운 풍경에도 잠시 시선을 돌릴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반응이자 일상이었다.
저 군주자가가 저러신 적이 한 두 번인가,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며 사고를 쳤으면 일곱 살 남짓한 꼬마군주임에도 궁인들이 제대로 말리지 못할 정도였다.
저리 돌아다니시다가 다치면 그 죄는 궁인들의 몫 아니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군주가 너무 돌아다니면서 제지할 수 없을 만큼 빠른 걸음으로 궁을 둘러보는 것도 있겠지만, 그 군주자가를 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라면 후에 조선의 촉망받은 임금으로 올라갈 왕세자, 이찰(李察)의 사랑스러운 적녀 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임금과 왕세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조선 왕실의 사랑스러운 꽃이라는 점이었다.
보통은 군주라는 직위를 받는 것이 젖을 다 뗀 나이일 때 받는 거라 생각 했을 때 저 군주는 불과 걸음마를 땔 때 받아버렸으니 왕실 어른들의 사랑을 얼마나 받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가 있었다.
저리 애지중지하는 자가인데 제지하다 군주 자가에서 마음에 안 든다며 자신을 제지하려는 궁인을 모함이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그 일로 그 궁인의 인생은 막을 내리는 거였다.
게다가 저 군주가 얼마나 체력과 운동신경이 넘쳐나는지 나무에 올라도 여기저기 담장 사이를 넘어 다녀도 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랬으니 굳이 제지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이기도 했다.
군주의 아버지인 왕세자와 할아버지인 임금도 아무 말없이 군주가 참 활달하고 밝다며 마냥 좋아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이 정도면 저대로 놔두는 게 군주자가의 안전에 더욱 도움이 되는 일 것 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도 불편한 사람은 하나둘씩 있는 편 이다. 이제 익숙해진 궁 안에서도 여전히 탐탁지 않게 군주를 보는 시선들이 존재했다.
그중 하나인 머리에 첩지를 얻은 여인은 궁인들을 뒤에 데리고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를 활보하는 군주자가의 앞을 가로 막아섰다.
천진난만하게 연못에서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따라 나란히 걷던 아이는 바로 앞 누군가의 다리에 몸을 부딪쳐 길이 막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군주는 감히 누가 자신의 앞을 막냐며 자신만만하게 위를 올려보았지만, 그 기세는 얼마 안 가 수그러들었다.
위를 보자 왕세자의 아내라는 것을 알리는 첩지가 올려진 채 고운 비단과 금색자수로 조화롭게 새겨진 궁 의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것을 입은 여인은 서늘하게 웃어 보이며 그녀의 못 말리는 손가락을 내려보았다.
군주의 어미, 세자빈이었다.
“...어머니..?”
궁을 활보하며 그리 자신만만하고 당찼던 아이의 말투는 그녀의 어미가 눈앞에 보이자마자 곧바로 위축되며 조심스레 예를 갖추었다.
세자빈은 그런 그녀의 아이를 보며 군주의 시선에 맞춰 무릎을 꿇어보았다.
뒤이어 군주자가를 따라온 궁녀들과 상궁은 어미인 세자빈의 등장에 급하게 뛰어왔다. 그리곤 여기저기 구겨진 옷을 정돈하며 공손하게 예를 갖춰보았다.
그녀는 혼날까 봐 위축 되어있는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선화, 이리 뛰어놀면 안 된다 하지 않았나요?”
“그렇지만.. 가만히 있으면 답답한 걸요 ..”
세자빈은 이선화의 말에 호탕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무나 그녀의 딸 다운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선화(先華), 먼저 선(先)에 빛날 화(華)를 써서 세자빈이 왕세자와 함께 며칠을 고심해서 지은 이름.
보통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쓰이는 선할 선(善)이나 꽃 화(花)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 겠으나 첫째인 세손 이설(李契)낳고 두 어 년 만에 찾아온 첫딸이 너무나도 귀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랬기에 첫 번째 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먼저 선에 빛나는 사람으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뒤에 붙인 빛날 화로 선화라는 이름이 완성이 된 것이었다.
항상 앞서서 사람들을 비쳐주는 위인이 되라, 세자빈과 왕세자가 이 이름을 지었을 때 이러한 기대를 걸고 지은 이름이었다.
헌데 이리 극단적으로 빛나주는 것 좀 아니지 않는가, 세자빈은 그리 생각했다.
물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매사에 기죽지 않고 활발하고 당차게 빛나는 걸 보면 그녀의 뜻대로 된 것 같으나 이건 왕족으로선 아니 된 일이었다.
이년 전, 이설의 세손 공부를 살피다가 별안간 상궁에게서 듣게 된 선화의 기행 소식에 얼마나 가슴이 뛰어올랐던지 여전히 그때의 감정이 생생히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그 소식을 듣자마자 선화가 매달려 있다는 주합루 연못 주변에 심어져 있는 회화나무들로 서둘러 뛰어갔었다.
온갖 생각들을 다 하며 누이 걱정된다는 이설을 데리고 주합루로 달려갔었는데 걱정과는 다르게 선화는 너무나도 편안하게 나뭇가지 위에 앉아 두발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도저히 다섯살이 된 어린아이가 가지는 담 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본 이설은 재밌어 보인다며 자신도 올라가겠다 하다가 세자빈에 의해 내려간 선화와 함께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다.
그 이후로는 틈틈이 시간을 비워 선화에게 위험한 짓 하지 말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며 조언과 잔소리도 해보았었다.
선화를 돌보는 상궁에게도 선화가 허튼 짓 하지 않게 잘 지도하라까지 했으나 그런 노력에도 종잡을 수 없는 어린아이의 성격을 고치기 란 어려운 거 같았다.
지금까지도 이리 지치지 않고 한결 같은 걸 보면 말이다.
세자저하도 저와 함께 지도했으면 좋으련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미인 그녀도 무척이나 공감이 되고도 남았으나 그건 그거고, 훈육은 따로였다
훈육은 자식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부모가 사랑의 매를 들며 아이의 성심을 살펴 주는 것인데 왕세자는 그가 지어준 이름대로 살아가는 선화가 마냥 좋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제지도 안 하고 할애비인 전하도 마찬가지니, 세자빈은 홀로 걱정을 안아야 했다.
아이는 그런 어미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변명할 거리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 눈을 마주 보지 못한 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세자빈은 그런 선화에게 물었다.
“선화, 안에 있는 게 싫으신 건가요? 이 어미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왕실의 여인이라면 자고로 왕실의 예의와 역사는 정중히 배우고 살아가야 한다고요, 헌데 우리 아씨께서는 이번에도 공부는 핑계를 대곤 이리 밖으로 나왔다고 정선생이 그리 말하던데 이게 어찌 된 일 일까요?”
“.....”
선화는 세자빈의 말에 아무 말 않은 채 고개를 오른편의 연못으로 돌려버렸다.
할 말이 없어 이렇게 나마 마지막 반항을 하는 것이었다. 세자빈은 여전한 고집에 돌려진 선화의 고개를 제 쪽으로 도로 돌려놨다.
그리곤 똑바로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선화, 이 어미를 똑바로 보세요”
“어머니! 하지만, 저 수업이 너무 지겹습니다. 다 같은 이야기만 구구절절하고 여인은 청렴 해야 한다, 내세에 꼭 혼인해서 낭군의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이제는 너무 질렸단 말 이에요! 유교라는 게 이런 거면 배울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인은 뭐 자신의 길도 갈 수 없다는 거도 아니고”
아이고 두야.
세자빈은 이마를 짚으며 이런 당찬 선화의 발언이 그 콧대 높은 사대부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유교를 배우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니, 선화가 군주 었어서 다행이지 세손이 였으면 경을 치고도 남을 일이었다.
게다가 선화는 유교를 배운 지 두 달 남짓 밖에 안됐다. 헌데 이리 싫다며 내팽개친 것 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성격? 선생? 아니면 근처 궁녀들? 상궁이 말하길 육아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것이라 했더니 그 말이 무슨 말 인지가 세자빈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선화는 그런 어미의 마음도 모르고 오히려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어머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전 정정당당하게 이리 노는 것 이지 수업을 빼먹은 것이 아닙니다, 스승께서 내신 문제를 다 맞추고 나온 거 라니깐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선화, 중요한 건 과정이에요”
2025.07.2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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