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일 화 목 금 토 연재 | 글링
한때 LA에서 가장 유명했던 ‘캘리의 치킨집!’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대한 팬데믹이 휩쓸고 지나갔고 내 가게도 함께 쓸려나갔다. 지금은 겨우 캘리포니아에 작은 가게 하나만 남았고 집 월세도 자꾸만 밀려가는데, 20대의 마지막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서른, 많지도 않지만 결코 적지 않은 나이. 20대의 마지막 생일만큼은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아 딱한번,정말 딱 한번 일탈했을 뿐인데… 그 일탈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줄이야! “찾는데 꽤 힘들었어. 캘리” 검은 수트를 쫙 빼입은 키가 큰 남자가 내 얼굴에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바로 그 남자다. 그날 클럽에서 만난 완벽한 이상형. 그리고 내 원나잇 상대. 그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니. “아이가 필요해.” 주어도 뭐도 없이 대뜸 아이가 필요하다는 남자, 하지만 내 뱃속에는 오늘 점심으로 배터지게 먹은 치킨뿐인데요? 그리고 나에게 쥐어진 긴 막대기 하나. “혹시 모르니까 해봐” “…좋아요. 대신 아니면 다신 찾아오지 말아요.” 아무리 그래도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알아? 자신만만하게 으름장까지 놓아가며 말했건만, 이게 왜…두줄이지? *** 한 줄짜리 인생에 예상치 못한 두 줄이 끼어든 순간, 내 인생이 아찔하게 뒤집히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치킨 집을 뽑자면 아마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캘리의 치킨집!"
오픈과 동시에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퍼져 연매출 억을 달성한 한때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식 치킨집. 대표 메뉴는 캘리 치킨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치킨집 사장이 바로 나! 캘리 브라운 이라는 사실!
"어서오세요 캘리의 치킨집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싱그로운 미소와 우렁찬 목청으로 시작되는 하루. 이렇게 활기찬 아침이 또 있을까! 치이익. 불판에 구워지는 베이컨이 먹음직스러웠는지 학교에 가던 학생들이 멈춰섰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포동한 뒷모습이 있었으니.
"헤이! 제이크 지금 학교가는거야?"
"응 늦었어. 근데 맛있어보여"
제이크는 우리집 바로 옆집에 사는 졸리 아주머니의 아들이었다. 통통한 볼이 증명해주는 거처럼 식탐이 많은 아이다.
"하나 먹어볼래? 우리 가게 신메뉴로 내놓을까 하거든. 먹고 평가 좀 해봐"
"좋아!"
신이난 얼굴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걸 보니 오늘 안에 학교 가기는 글렀네. 글렀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잘 익은 베이컨을 잠시 접시에 두고 계란 후라이를 한 다음 노릇하게 구워놓은 토스트 안에 차례로 넣었다. 아삭한 식감을 책임져줄 양상추와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할 캘리 치킨 순살을 넣어주면!
"짠! 어때? 신 메뉴 캘리의 치킨 토스트!"
"와우!"
두툼한 치킨살이 무심하게 툭 삐져나온 토스트를 한입 가득 물더니 파란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캘리 이거 뭐야?! 완전 맛있어!"
"그래, 내 야심작이야. 아침에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랄까? 물론 너같은 학생들도 포함이야"
그사이에 마지막 토스트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넣은 제이크가 급히 가방을 챙겼다. 아마 지각한 사실을 다시 깨달은 모양이었다.
"캘리! 내가 학교 끝나고 애들 많이 데려올게!"
"아니 괜찮은데..."
제이크는 괜찮지만 난 기본적으로 아이를 별로 안 좋아한다. 게다가 저 나이때의 남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온다는 생각만 해도 곧장 가게 문을 닫고 싶을 정도였다.
으.. 생각만해도 시끄럽고 머리 아파.
본의아니게 제이크를 학교로 보낸 뒤 신메뉴 개발에 열중하는데 옆 가게 샐리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헤이 캘리! 오늘 기분 어때?"
"좋아! 내 신메뉴는 조금 손을 봐야 할 것 같지만"
아까 제이크가 질질 흘리면서 먹는 걸 보고 소스를 손봐야 겠다 생각한 참이었다.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에 샐리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도 한국음식? 캘리는 정말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니깐, 물론 나도 좋아하지만!"
생애 첫 한국 여행에서 만난 치킨과의 만남은 과히 충격적이었지. 그렇게 바삭하고 맛있는 치킨은 처음이었으니까! 그 맛있는걸 토스트에 넣었으니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눈을 빛내고 있는 샐리를 보며 씩 웃었다.
"음...한국과 미국의 만남이랄까? 이번 신작을 스포하자면 캘리의 치킨 토스트야"
"하하하!! 뭐든 맛있을거야. 캘리의 신작이니까!"
샐리는 항상 나에게 용기를 준다. 여기에 치킨집을 오픈하고 나서도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캘리의 치킨집에서 유일하게 무료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샐리와 기분좋게 헤어진 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매출을 정산하는데 달력이 유독 눈에 띈다. 특히 오늘 날짜에 요란하게 쳐져 있는 빨간 동그라미.
내 생일!!
누가봐도 생일이라고 요란하게 쳐 놓은 동그라미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새어나왔다.
"자영업자에게 생일이 뭔 의미겠나...에휴..."
작년 이 맘때는 친구라도 불러 생일 파티를 했지만 그것도 다 여유가 있을때 하는 얘기지. 전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팬데믹 때문에 억대 매출은 옛말이 되었다. 다른 주에 있던 체인점도 모두 문을 닫고 하나 남은 여기도 매일같이 적자를 기록하며 이러다가 월세도 못내는 거 아닌가 싶은데 생일파티 같은 사치는 부릴 수 없다.
결국 처음 서른을 맞이하는 순간 외롭게 보낼 예정이었다. 안락한 내 집에서 홀케이크 하나를 두고 울적한 생일을 보낼 생각에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 하지만 울적한 생각도 잠시.
"지금 영업하나요?"
"네! 어서오세요~단체손님이신가요?"
오늘따라 몰아치는 손님에 금새 신이나서 치킨을 튀겼다.
그래 서른살 생일 뭐 별거 있어? 그저 1년 중 한번 있는 날일뿐이잖아? 그런 날에 의미 부여 하지 말고 치킨이나 팔자!
열심히 튀기고 튀겼다. 튀기고 또 튀기고 튀기고...고개 한번 못 들고 치킨과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하늘이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내 20대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안녕, 내 청춘
치열했지만 나름 즐거웠던 순간도 있었지. 원없이 놀아본 건 아니었지만, 치킨 집 하면서부터 쉬는 날 없이 일만 했지만, 주말도 없이 치킨을 튀겼지만...
생각해보니 나...치킨집을 한 뒤로 제대로 편히 쉬질 못했잖아?! 문득 서른이 넘어서도 기름냄새가 가득 한 주방에서 무표정으로 치킨만 튀기고 있는 내 미래가 보였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이 치킨을 튀기고 튀기고 또 튀기고...
"이렇게 청춘을 보낼 수 없어!!"
나는 정산을 하다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치킨집 문을 닫고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걸으면서도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생각뿐.
오늘밤, 무조건 남부럽지 않은 일탈을 할거야. 제니와 벨라에게 자랑할 만큼 엄청난 짓을 저지를 거라고!
제대로 된 계획하나 없이 그저 일탈을 저지르겠다는 일념하나로 눈이 빠져라 주위를 둘러보는데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었다.
2025.08.0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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