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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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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91화무료 5화

매주 월 화 수 목 금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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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로 남편과 이혼한 후 위자료는커녕 남편 때문에 생긴 빚까지 떠안고 혼자 살아가는 여자, 윤미진. 마흔다섯의 여자를 써 주는 곳이 없다는 것만 뼈저리게 깨닫고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그저 소박하게 소설을 쓰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미진은 이렇듯 흔하고 평범한 인생만을 바라던 사람이었음에도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에 전남편 가족까지 여전히 미진에게는 짐이 되고, 미진은 자신의 삶이 앞으로도 이렇게 막막하기만 할까 봐 겁이 난다. 하지만 아직 미진은 모른다. 또 한 번의 ‘흔한’ 사랑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현대#사내연애#짝사랑#잔잔물#힐링물#외유내강#회사원#상처녀#짝사랑녀#평범녀#다정남#무심남#순정남#짝사랑남


”쿠우우우파아앙?“


언니는 뭔가 트집거릴 잡았다고 기미를 느껴서 신이 날 때 그러듯 말 꼬리를 길게 늘였다. 


이제 또 시작이구나. 


”네가 쿠팡 알바를 한다고? 참나..”


“응. 시작한 지 열흘쯤 됐어.”


전화 너머로 언니의 목 끝에서 그르렁 거리는 뭔가 재보는 듯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할 일이 없었어?”


“당연히 없지. 언니는 그동안 내가 어떤 일 했는지 다 알면서 그런 걸 물어? “


날 선 되물음이 언니에게 날아간다. 


이건 우리 사이에는 좀체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쿠팡 물류 센터 휴게실에 앉아있다. 


점심시간이었고 나는 자판기에서 뽑은 레쓰비를 쥐고 주변 사람들이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내가 이 알바를 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걸 언니에게 얘기했을 때 꼭 예상했던 대로 언니가 반응하자 울컥하는 마음까지 든다. 


”나중에 얘기해. 나 지금 들어가야 해. “


여유 시간이 10분쯤 남았지만 아쉬움 가득한 언니의 단말마 소리를 귀에서 얼른 떼어내고 전화를 끊었다. 


언니에게는 열흘이라고 했지만 열흘이 아니었다. 


7월, 한창 더위가 정점을 향해가는 지금 내가 쿠팡 알바를 시작한 건 한 달이 좀 넘었다. 


쿠팡에서 일한다는 걸 언니에게 이제서야 얘기하는 건 결국 내게 힘이 될 만한 얘기를 해줄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언니로서 동생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동생이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줘야 한다는 비뚤어진 사명감이 있는 언니. 


모범이 되고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게 말은 참 좋지만 언니의 기준은 보통 사람의 것과는 한참 달랐다. 


언니는 말마다 하느님 아버지에 아멘을 넣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자기가 무슨 신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줄 안다. 


기독교 신자들이 모두 자기 같지는 않다는 걸 누군가는 분명 말해줬을 테고 나도 수없이 불평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언니는 기독교 신자가 되기 전에도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에 유난히 눈을 반짝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말버릇이 ‘거봐 내가 뭐랬어?’인데, 지금은 오직 자기가 맞지 않았냐는 말을 하고 싶어서 내가 계속 불행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언니한테는 힘들다는 말은커녕 어떤 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힘들다고 하면 내가 뭐랬어? 내 말 안 들으니까. 가 돌아오고 나 지금 좋고 괜찮다고 하면 너는 그러다가 큰코다친다고 세상이 그렇게 네 맘대로 될 거 같냐고 야단을 쳤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알 수가 없는데 어쨌든 언니는 내가 막다른 길에서 주저앉을 때 가장 기뻐하는 것 같았다. 


잘 지내고 있냐고, 왜 답이 없냐고?

언니가 너 걱정하는 거 모르냐는 등등의 톡이 계속 몰려들기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한 거였는데 또 이렇게 끝이 났다. 


언니가 항상 이랬던 걸까?


언니가 진짜 나를 걱정하긴 하는 걸까? 


“사원님들, 스트레칭하시고 업무 시작할게요!”


언니가 짐짓 쿠팡 알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꾸미려 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네 주제에 네가 그러면 그렇지.겨우 쿠팡 알바가 니 자리일 수밖에 없지.’라고 생각하며 기뻐하고 있다는 걸. 


점심시간 이후 재개된 근무 시간, 관리자들이 서 있는 데스크 앞에서 나를 비롯한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니터 속 사람들을 보고 마지못해 느릿느릿 몸을 움직인다. 


내부 온도는 30도에 가깝고 점심시간에 말린 땀을 이제 또 줄줄 흘릴 거라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열의가 하나도 없다. 


나처럼 더위도 별로 타지 않고 땀도 잘 흘리지 않는 사람조차 조금만 움직여도 속옷까지 흠뻑 젖을 정도의 날씨가 시작되었으니 8월이 되면 어떻게 견딜까 걱정이 앞선다. 


*


이 더위에 유난히 더운 쿠팡 물류센터에서 내가 하고 있는 건 출고 집품이라는 일이다. 


집품은 고객들이 물건을 주문하면 수많은 물건들이 진열된 선반에서 그 물건을 찾아내 토트에 담는 일인데, 토트는 쿠팡에서 사용하는 박스를 말한다. 


뚜껑이 없는 다용도 박스인데 크고 무겁다.


낡아서 덜그럭 거리는 카트에 토트 2-3개 정도를 담아서 물건을 토트에 담는 일이 내가 요즘 하루 종일 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쿠팡 알바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쿠팡에 대한 괴소문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돈이 너무 필요했다. 


돈은 필요한데 사람 상대하는 일에 질려버리고 만 나 같은 사람에게 쿠팡은 괜찮은 일자리가 되어주었다. 


특히 집품은 하루 종일 누군가와도 말을 하지 않는 게 가능할 정도로 혼자 하는 일이라 특히 마음이 편했다. 


집품해야 할 물건이 제자리에 없거나 집품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할 때 관리자와 얘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럴 때조차 말은 길어지지 않는다. 


하세요. 할 때 네 하면 되고, 가세요. 할 때 네 하면 그만인 게 여기 일이었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일이어서 나는 아픈 다리와 발에도 불구하고 쿠팡 알바를 계속하고 있다. 


가끔 여기가 나의 끝이 될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들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를 보살피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삶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 내 인생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없을 때의 얘기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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