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삼촌이 혼자 가는 게 싫으면 민호도 나중에 파일럿이 되면 되는 거야. 그럼 같이 갈 수 있어." 자신을 거두어준 전설적인 파일럿 민석의 뒤를 쫓기위해 호라이즌 아카데미에 입학한 전쟁 고아 민호. 아카데미의 최고가 되기 위해 달려간다.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뒤덮인 아이는 거칠게 호흡하며 먼지 가득한 공기를 들이켰다.
견고해 보이던 벽과 땅이 살점처럼 터져나갔고 폭격으로 일어난 진홍색 흙먼지는 손 뻗으면 닿을 거리조차 가로막아 버렸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고 무너진 건물 잔해들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펑. 펑.
포탄이 떨어지고 땅이 흔들릴 때마다 아이는 흘러나오는 흐느낌을 참으며 제발 다음 포탄이 자신의 등 위로 떨어지지 않길 소리 죽여 빌었다. 마치 자신이 조용히 하면 포탄이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극도의 긴장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조차 몽롱해진 아이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너무 조용했다. 폭격이 멈췄다.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건물 잔해들 사이로 햇빛이 기어들어왔다.
‘이제 밖은 안전해! 나와!’
영롱한 빛이 아이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아이는 잔해를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갑작스런 밝은 빛에 아이는 손을 들어 눈 위에 붙였다.
눈이 빛에 적응될 될 때 쯤 아이를 맞아준 건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이었다.
아이는 망연자실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이곳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가 알고 아이를 알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순간에 이젠 아이밖에 없다.
풀썩. 충격을 받은 탓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이의 가냘픈 다리는 무너져 내렸다.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아이의 몸은 아직도 폭격의 충격에 익숙한 듯 움찔거릴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결국 포기한 듯 뒤로 벌러덩 누웠다.
우우웅.
아이의 눈이 감기기 직전, 매서운 기계음이 허공을 갈랐다.
폭격일까. 기진맥진한 아이는 눈 뜰 힘조차 없었지만 몸을 돌리고 죽을 힘을 다해 포복 자세로 기기 시작했다. 팔꿈치에서는 피가 흐르고 넝마가 된 옷은 돌부리에 걸려 찢어졌다.
아이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포탄 날라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왜 터지지 않지?’
철컹.
아이가 생각을 끝내기 무섭게 금속음이 아이의 뒤에서 들렸다.
‘죽겠구나.’
아이는 생각했다.
아이는 포복을 멈추고 초연하게 폭발을 기다렸다.
하나...둘...셋...
‘왜 터지지 않지?’
아이는 한쪽 눈을 슬그머니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커다란 비행선 하나가 착륙해 있었다.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쏟아져 내렸다.
“일대를 수색하도록. 추가 생존자를 찾아!”
제일 먼저 비행선에서 내린 군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뒤따라 나온 군인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건물 잔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제일 앞에 있던 군인은 그대로 아이에게 직진했다.
“얘야, 괜찮니?”
아이는 대답할 힘이 없었다.
군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딱히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아이를 안아올렸다.
아이는 가늘게 뜬 눈 틈새로 군인의 목에 걸려있는 군번줄을 흘끔 쳐다보았다.
이민석(Min-seok Lee).
“이제 괜찮을 거다.”
강렬한 햇빛에 눈을 크게 뜰 수 없던 아이는 얼굴을 찡그린 채 자신을 구해준 군인의 얼굴을 보려고 용을 썼다.
그 모습을 본 군인이 피식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아이의 얼굴을 커다란 손으로 가렸다.
군인의 손은 거칠고 두꺼웠지만 아이는 따뜻함을 느꼈다. 아이의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이제 괜찮을 거다.”
“이제 괜찮을 거야.”
“이제앤 괘앤차안을 거어야아-”
민호는 눈을 떴다. 이불이 땀에 젖어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세차게 뛰고 있었지만, 주위의 가라앉은 정적이 그를 현재로 이끌었다.
‘또 그날 꿈인가.’
민호는 가슴을 부여잡고 끙-하는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같은 꿈을 처음 꾼 것도 아니건만 가슴이 뻐근해지는 감각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자 침대 옆 커튼이 부드럽게 열리기 시작했다.
창 밖에서 어스름한 새벽빛이 흘러들어왔다.
민호는 땀에 젖어 축축해진 손으로 짧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민호의 머리는 짧은 스포츠 머리였기에 사실상 하나마나한 동작이었지만 이는 민호만의 습관이었다.
두근거림이 잦아들자 민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단출한 거실이었다. 포근해보이는 소파가 정중앙에 놓여있고 그 앞 벽에는 디스플레이가, 그 뒤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나무로 만들어진 책꽂이가 놓여있었다. 책꽂이의 선반에 놓인 액자에는 가족사진이 들어있었다.
가족사진이라 해봤자 사진 속에는 민호와 민석 둘밖에 없었지만 나란히 서있는 둘의 사이에서는 따스한 사랑이 느껴졌다.
민호는 민석에게 구조된 날 이후로 그의 손에 자랐다.
민호라는 이름 또한 민석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아빠라고 부르면 될까요...”
민석이 민호를 집에 데리고 온 첫날 민호가 한 말이었다.
민석은 눈을 크게 뜨더니 말했다.
“아빠라니!”
민석은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나이 어린 아빠 봤냐?”
나름 아이스브레이킹용 농담이었지만 당시 평생을 황무지에서 살아온 6살의 민호는 이를 이해하지 못해 조금의 미소도 짓지 않았다.
민석이 조금 무안해하며 말했다.
“삼촌이라 불러라! 민석 삼촌.”
그때의 해맑은 눈이 아직도 민호의 눈에 선했다.
2025.07.2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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