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 귀하의 말소를 시작합니다. 오싹한 기계음과 반쪽짜리 회귀는, 정신건강에 좋지 않았다.
- 귀하의 할당량이 초과되었습니다.
여름, 작은 시골 마을 안의 식자재 마트. 잡음 섞인 기계음의 출래에 마트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소리의 근원은 노인의 팔을 붙잡고 있던 갈색 머리 남자의 목 부근이었다. 피부밑에서 백원 동전 크기의 붉은 점이 깜빡거렸다.
"으, 아아아악!"
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남자의 손에서 자신의 팔을 빼낸다.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겁에 질린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러고는 패닉에 빠진 듯 신음을 내더니, 뒷걸음질을 치다가 곧 과자 진열대와 몸이 부딪힌다. 아슬아슬하게 진열되어 있던 과자 봉지 여러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기계음의 출래로 마트 안은 순식간에 혼비백산해진다.
노인은 죽을힘을 다해 마트 밖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이송 대상’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송 대상을 놓친 것에 대해 협회가 징계를 내릴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될 것 같은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계산대의 직원은 도망친 지 오래였다. 유선의 바코드 리더기가 축 처진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30대 후반의 여성은 제 아이의 손을 잡고 마트 밖을 향해 죽어라 달린다. 고등학생 두 명은 이때다 싶어 과자와 담배를 훔쳐 간다. 턱턱턱턱턱, 수십 개의 신발들과 마트의 대리석 바닥이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마트 밖에서는 매미가 울고있다.
남자는 아이스크림 냉동고의 유리에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조금 전 났던 기계음의 근원이 제 몸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제 목 부근에서 깜빡거리는 붉은 점이 눈에 들어오자, 그의 바람은 좌절로 돌아갔다.
- 60초 뒤 귀하의 말소를 시작합니다.
남자의 눈동자가 빠르게 구르며 나를 찾는다. 나는 그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할당량 조절 좀 하시지 그랬어요.”
아마 남자는 곧 마취로 인해 온 몸이 마비될 것이다. 남자의 피부 아래에서 기계음을 냈던 그 특수장치는, 말소를 통보한 후 강력한 마취제를 뿜어낸다.
“흐윽!”
남자가 그대로 쓰러지더니,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살, 려줘. 살려줘!”
짐승의 절규를 닮은 것이 절박함을 흉내 낸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기계음이 들린 이상,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거, 그쪽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상체를 숙여 그와 눈을 마주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다.
“애초에 협회로 돌아가도 좋을 거 하나 없습니다. 이송 대상도 놓쳐버린 주제에.”
내 행동이 잔혹하다고 생각하는가? 살아가고자 하는 그 숭고한 본능 따위를, 내가 너무나도 손쉽게 밟아버린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아니야. 난 살 거야, 제발, 제발!!”
하지만 내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이송 대상을 놓친 ‘매개체’는 잔혹한 징계를 받는다. 그 징계와 지금 내 행동의 잔혹함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지.
게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기계음을 막을 수 있었다면 그 많은 매개체들이 살아서 협회를 가득 메웠겠지. 어쩌면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느끼는 내 무의식의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틀린 말은 없었다.
- 10초 뒤 귀하의 말소를 시작합니다.
10초. 나와 그에게 남은 시간은 10초였다.
숙였던 상체를 다시 세웠다. 무더운 여름날 맞지 않는 옷차림, 검은색의 정장 코트가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완전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의 짐승 소리를 닮은 절규를 뒤로 하며 마트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 귀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아차.
나는 기계 소리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남자의 몸이 불규칙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머리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협회에 들어왔을 때는 몸 속의 특수장치가 터지는 것으로 끝났던 것 같은데, 이런 퍼포먼스가 추가된 것에 대해 의문을 느끼며 남자의 최후를 바라본다.
남자의 몸이 절반쯤 녹아내리자 남자의 목, 그러나 더 이상 목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피부의 밑에서 붉은 점이 빠르게 깜빡인다. 곧 폭발한다는 신호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정확히 다섯 발자국을 뒤로 옮겼다. 몸이 녹아내리는 퍼포먼스를 추가했으니, 폭발력이 줄었을 거라는 도박과도 같은 추측을 했기 때문이다.
퍼버벙!!
남자의 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불쾌하게 붉은 색을 띤 점액 덩어리가 내 구두 앞으로 떨어졌다. 추측은 맞았다. 다섯 발자국. 네 발자국이었다면 분명 구두에 점액 덩어리가 묻었을 것이다.
남자의 시체는 다른 매개체들이 처리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마트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이대로 뒤를 돌아서, 입구로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만,
- 귀하의 할당량이 초과되었습니다.
젠장.
또다시 그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잡음 섞인, 오싹함을 불러일으키는 그 기계음.
이번에는 내 목 부근에서.
조금 전 느꼈던 불길한 직감이 맞았다.
나는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남자의 형체를 이루고 있었던, 붉은 점액 덩어리를 바라보며 나 또한 곧 이렇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아마 저 남자도 느꼈을 그 본능이 척추를 타고 기어 올라온다.
“뭘 했다고 벌써 할당량이 채워져···.”
한숨을 삼키고는 마트의 새하얀 대리석 바닥에 드러누웠다. 참혹한 광경 위에서 빛을 묵묵히 빛을 내는 형광등이 보였다. 발버둥은 치지 않는다. 헛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는 체념했다.
코트의 주머니에서 유선 이어폰을 찾았다. 언제나처럼, 몇백 번이고 해왔던 행동. 이어폰과 휴대폰을 연결했다. 마지막으로 듣고 있었던 재즈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됐다.
바깥의 매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60초 뒤 귀하의 말소를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그 반쪽짜리 회귀를 할까?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하지?
마취제가 뿜어나왔나보다. 몸이 안 움직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 10초 뒤 귀하의 말소를 시작합니다.
2025.07.30 20:00
2025.07.30 11:54
2025.07.30 11:29
2025.07.29 09:57
2025.07.29 09:31

오 재밌어용
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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