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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상의 테라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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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름
13화무료 13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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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구를 버렸다. 그리고 나는 150년 만에 선출된 지구 탐사원으로써, 태어나 처음 고향의 땅을 밟아보았는데⋯⋯ "아~ 저 위 우주선에서 곱게 자라신 귀한 연구원님께서는 영 적응하지 못하시려나?" "그게, 무슨⋯⋯!" "뭐긴 뭐예요, 괴물이지. 당신같은 건 단번에 찢어버릴." 지구의 7할이 크리처에게 먹혀버렸다! 무사히 지구인들과의 협상을 이끌어내고 우주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공모전 참여작#판타지#SF

 땅 없이 살아온 사람들을 아는가.

 적어도 현재의 인류는 한평생을 땅 없이 살다가 죽었다. 깊지 않은 바닥 탓에 묻힐 곳조차 존재치 못한 자들의 삶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소리의 전달조차 불가능한 무한의 진공 속에서 우리가 부르짖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는 상실을 원하지 않는다. 허망한 끝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최대 목표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생존이었고, 그렇기에 결국 역사의 지속을 위한 선택을 하였다.

 큰 죄를 짓고 떠난 과거를, 이제는 마주해야만 한다.

 그 위대한 계획의 시발점이 된 나는 귀를 긁는 기계 진동과 온갖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소리를 들으며 우주선의 조종대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우주에 비해선 차갑지 못한 우주선이 내가 그린 궤도를 따라 공허를 밀고 나아간다. 인간을 흉내 낸 음성이 귀에 꽂힌 스피커를 타고 흘러온다. 목적지까지 383,000 km 남았습니다. 그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순간 숨을 멈춘다. 시야에 폭력적으로 들어차는, 거대한 파란⋯⋯.

 아, 숨을 멈춰선 안된다. 그랬다간 폐가 쪼그라들 것을 안다⋯⋯. 나는 억지로 숨을 크게 들이쉬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산소를 폐 속에 밀어 넣으며, 다시 한번 앞을 똑바로 바라본다.

 교과서로만 보던 것보다 황폐한 행성이 보였다.

 지구.

 발 디딘 적 없는 나의 고향으로, 나는 향했다.



*



 지구가 멸망했다.

 한 오백 년 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미래를 전한다면 매우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상식으로 굳어진 전제이다. 지구는 멸망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뭉쳐 생겨난 스노우볼이 기어코 바다라는 절대적 영역의 절반을 날리게 되면서, 인류는 기껏 해봐야 거대한 쓰레기 섬 따위에나 덩그러니 남겨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고갈되어 가는 자원에 시달리던 인류는 마침내 결단했다.

 지구를 떠나자.

 몇백 년은 족히 전부터 제시되던 친숙한 주장이었으나 세계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래도, 해봤자 라운지 따위로나 써먹으려고 했던 우주를 이민의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는데 대체 누가 평온할 수 있겠는가. 평생의 고향과 영구적일 수도 있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데 말이다.

 선진국의 대통령들이 그것을 선언하자마자 세계적으로 지구를 소생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났고, 그것이 조금은 성과를 거두나 싶었으나 자가 재생 능력을 잃은 행성은 결국 제 안에서 살아가는 병균과 같은 것들에게 보복을 가했다. 끝없이 휘몰아쳐 이젠 진부하다 못해 헤드라인 감으로도 선정되지 못하는 재난, 재난, 재난. 수만의 사람이 죽고 수억의 사람이 자원을 구걸하였으나 지구는 더 이상 그 무엇도 내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현실에 순응하고 무려 면적이 550 km²에 달하는 우주선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100억 인구를 수용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 공인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극소수의 행운아만을 태운 우주선은 재난으로부터 도망쳐 새까만 미지로 몸을 던졌고, 기어코 생존하여 현재까지 많은 과학적 발전을 이룩해 내었다⋯⋯ 는 게, 교과서에 적힌 내용이고.

 사실 내가 그 시절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젠 2세기도 넘게 지난 일이고⋯⋯ 보다시피 나는 육안으로 볼 수도 없는 행성보다 새하얗고 넓은 우주선이 더 익숙한 세대에 태어난 평범한 사람이어서 말이다. 나 같은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픈 과거는 그저 역사일 뿐, 미지근한 온도 이상으로 와닿지 않더라고. 직업 특성상 지구에 대해 나름 깊이 연구해 보았지만, 그래봤자 딱히 대단한 애틋함 같은 게 DNA에서 우러나지도 않고⋯⋯. 그 외의 지식으론 공교육과 살다 보니 듣게 된 출처 불분명한 소문들 정도가 전부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이런 사람에게 그 프로젝트를 맡겨도 되는 건가? 좀 더 역사의식과 의지가 뛰어난 적임자를 찾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는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묵직한 상자 두 개를 안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하고는 싶은데, 자꾸만 상자가 시야를 가리려고 들어 영 쉽지가 않다. 심지어 무게도 꽤 나가 고개를 까딱이는 데에도 온 신경을 쏟아야 할 판이었다⋯⋯. 예의있는 삶이란 어려운 거구나. 나 그렇게까지 예의있게 살지도 않는 거 같은데. 그냥 사람처럼 살기가 어렵네.

 "야, 조예성."

 끙끙대며 짐을 추슬러 안던 나는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복도를 걷던 발을 멈췄다. 겨우 고개를 내밀자 나와 같이 새하얀 연구복에 백색 배지를 단 여자가 보인다. 늘어지듯 서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는 피로에 찌든 얼굴.

 "이제 가는 거냐?"

 쇼트커트로 잘랐지만 다듬은 지 꽤 된 듯 삐죽빼죽한 갈색 머리카락을 한 사람. 진한 파란 눈이 거부감 없이 눈에 담긴다. 전체적으로 불량인 복장과 대비되게도 규정에 맞게 목에 건 이름표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나름 멀끔한 인증사진 아래 본래 언어의 흔적만을 남기고 영문 표기로만 된 이름이 보인다. 나는 그것을 한국의 발음으로 떠올린다. 에로나르도 부폰. 익숙한 호칭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다.

 "선배님."

 "누가 네 선배야, 이 자식아. 반년 만에 나보다 높게 승진한 놈이."

 나는 거칠게 헤드록을 걸듯 내게 어깨동무를 하는 상사였던 사람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하듯 말한다.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죠⋯⋯." 내 말에 에로나르도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곧 낄낄 웃으며 물러난다. "우리 조 연구원, 이제 듣기 좋은 말도 할 줄 알아?" 이렇게 말하는 그도 내 말이 진심이란 것을 이미 인지했을 터라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겨우 에로나르도에게서 벗어난 나는 한가득 들고 있던 짐을 겨우 추슬러 안았다. 하마터면 쏟을 뻔했다. 에르나르도 선배는 여전히 삐딱한 자세로 나를 슥 훑더니 피식 웃으며 허리에 손을 짚었다.

 "그래서, 지금 가냐?"

 "그럴 리가요⋯⋯. 출장 가는 날은 3일 정도 남았고요, 오늘은 최종적으로 이런저런 절차 밟고 점검하며 마무리 중이었습니다. 지금 옷만 봐도 우주로 날아갈 복장은 못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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