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괴물 공작의 애착 인형
profile image
김크레파스
1화무료 1화

자유 연재 | 글링

조회수 66좋아요 0댓글 0

"스무 해를 주겠다." 유디스는 열일곱에 괴물 공작 가문의 아이의 보모가 되었다. 물론 말이 보모지 제물로 팔려온 것이고, 스무 해가 지나면 자신이 키워낸 괴물에게 잡아 먹힐 예정이다. 하지만 그 끔찍한 말로를 알고도 유디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 어차피 누군가는 제물이 되어야 했고,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받아 가문에 남은 제 소중한 동생이 더 이상 배곯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제가 낳은 새끼들에게 잡아 먹히는 거미처럼, 유디스는 조용히 잡아먹힐 날을 기다리면서 자신이 맡은 바를 할 예정이었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 서슬 퍼런 송곳니 사이로, 그 모습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 한 마디가 자신을 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 마." *** "티리안은 돌연변이다. 본래라면, 죽여야 마땅하다." 괴물에게 인간이란 고깃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건 티리안에게 있어서 엘리스도 마찬가지다. 말이 좋아 보모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괴물은 자신을 돌봐준 인간을 상처 입히고 다치게 하며 희열을 느끼고, 내면의 악을 각성해 진정한 괴물로 거듭난다. 성인이 되기 전인 스무 해에 자신을 키워준 보모를 잡아먹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너는 왜." 슈트레우스는 속을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것이냐." *** "티리안? 왜 그래? 잠깐……!” 유디스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제게 다가오는 티리안의 모습에 살짝, 뒷걸음질 쳤다. 티리안은 그런 그녀의 팔을 덥석 붙잡더니, 피가 흐르는 상처를 제 눈앞에 가져다 댔다. "내가…… 너를 상처 입힌 것인가?"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그냥 네 발톱에 어쩌다 보니……." "내가 너를 상처 입혔구나." 티리안의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까슬까슬한 혀가 보인다. 그는 유디스의 팔에 흐르는 피를 부드럽게 핥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악마이자, 괴물이다. 우리는 피를 좋아하며, 고기를 먹고 산다." "…… 알고 있어." "내가 평소에 먹는 고기가 인간이라는 것도." "응…… 그것도."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지만 유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그가 먹는 고기가 사형수의 것이라는 것, 즉, 유디스와 같은, 인간의 고기라는 것을, 유디스도 알고 있었다. 결국, 유디스는 티리안에게 있어 한 끼 식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군……." 티리안의 표정이 묘하다. 거친 털에 뒤덮여 있음에도 그의, 풀이 죽은 강아지 같은 눈빛이 유디스의 시야에 선명하게 보인다. "네 피가 달콤하지 않다. 식욕도 생기지 않는다." 그는 유디스의 팔을 제 가슴에 대더니, 나지막이 덧붙였다. "여기가, 아프다."


“너에게 강제하지 않겠다.”

어두운 방 안, 짙은 그림자. 그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드는 짐승의 목소리가 거친 쇳소리를 내면서 유디스의 귓전에 윙윙, 울렸다.

호랑이의 포효처럼 낮은 목소리가 그녀를 무섭게 옭아맸다.

“돌아가고 싶다면 돌아가라.”

“괜찮아요.”

“괜찮다, 라.”

작은 코웃음 소리가 들렸나, 싶더니 이내 그림자 밖으로 상상조차도 해 본 적 없는 커다란 형체가 유디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소리만으로도 귀가 저릿하고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몰아치는 바람에 유디스의 머리칼이 귀 뒤쪽으로 사납게 흩날렸다.

커다랗고 날카롭게 벼려진 발톱이 유디스의 턱 아래를 받쳐 자신에게 고개를 들게 했다.

마치 늑대처럼, 털로 뒤덮인 얼굴에서 살기가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유디스를 향해 일렁였다.

“우리에 대해 모르는가?”

“알아요.”

“그럼 인간 황제가 우리를 우습게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요.”

유디스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막힘 또한 없었다.

“제가 가겠다고 했어요.”

“우리가 필요한 것은 너처럼 나약한 여자아이가 아니다.”

“시간은 좀 걸려도 허드렛일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어차피 교육, 보살핌 이런 것들이 필요한 게 아닌 걸 안다. 최소한의 교류와 보살핌 정도가 가능한 식량이 필요한 걸, 알고 있다.

유디스는 작은 두 손을 모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부디,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공작님께서 시켜만 주신다면…….”

“이유는.”

“동생이…… 있어요.”

가문은 망했고, 부모는 그녀를 버렸다. 비록 자신을 팔았지만, 그 돈으로 동생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슈트레우스.”

“네?”

“슈트레우스 님이라고 불러라.”

“아…….”

유디스의 무표정하고 슬픈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돋았다.

“네. 슈트레우스님. 저는…….”

“말할 필요 없다.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그 안에 죽을 인간의 이름 따위는, 알아둘 필요 없다.

슈트레우스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유디스는 또다시 귓전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네게 스무 해를 주겠다.”

땡그랑. 유디스 앞에 열쇠 하나가 떨어졌다.

 

“언덕 위, 저택으로 가라. 그 안에서 얌전히 기다려라.”

 

***

 

‘조용하네.’

저택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랬다. 유디스는 슈트레우스에게 받은 열쇠를 오른쪽 선반에 올려두고 홀을 둘러보았다.

세간에 알려진 그대로다. 돈이 많다던 건 헛소문이 아니었는지 즐비하게 늘어진 황금 동상과 장식품들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택은 또 어찌나 넓은지, 자박거리는 유디스의 발소리가 벽에 부딪혀 윙윙거리며 울릴 정도였다.

이 정도면 한미한 귀족 가문 하나 정도는 충분히 구제해줄 수 있겠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나의 삶이 여기서 비참한 최후를 맞더라도, 배를 곯고 있을 레이나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뭘 멍하니 서 있지.”

순간 유디스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았다. 홀 끝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의외로 인간 남자였다.

분명 슈트레우스의 목소리였는데. 유디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슈트레우스님?”

“왜.”

“아, 그게, 모습이…….”

“쓸데없이 궁금증이 많군.”

슈트레우스가 혀를 쯧, 찼다.

“저택 안 인간의 몸을 빌렸다.”

“아…….”

이게 마법이란 건가. 유디스는 언제 책에서 읽었던 걸 떠올리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남자의 몸에는 생기가 없다.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군데군데가 낡아 해져 있었고 심지어 그 사이로 보이는 피부 역시 이곳저곳이 썩은 시체의 것이었다.

또 결정적으로는, 눈. 슈트레우스의 목소리가 들릴 때 잠깐 붉게 번쩍거리는 걸 제외하곤 회색의 반투명하고 얇은 막으로 덮여 있었다.

슈트레우스가 굳이 그 몸을 빌린 건 이곳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식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몇 명이 죽더라도 상관없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괜찮아. 다 알고 온 거니까.’

오히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게 좋다. 쓸데없는 상념에 젖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유디스는 슈트레우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홀을 지나면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오른쪽 첫 번째 방에 티리안이 있을 거다.”

티리안. 유디스는 자신이 돌볼 괴물의 이름을 곱씹어보았다. 왜인지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슈트레우스는 그런 유디스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가서 네가 그의 보모라는 사실을 인지시켜라.”

“네.”

“미리 말해두겠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네가 도중에 잡아먹히거나 죽는다고 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자신만만하군. 계약조건은 잘 기억하고 있나? 스무 해 동안 티리안을 잘 보필했을 경우이다.”

슈트레우스의 목소리와 남자의 형체가 마치 안개처럼 유디스의 눈앞에서 흩어졌다.

“실패할 경우 네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그것만큼은 안 돼. 유디스는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

그렇게 개죽음이나 당하려고 이런 곳에 목숨을 팔아서 온 게 아니다. 어떻게 되든, 해낸다. 반드시.

‘그건 그런데…….’

벌써 지치네. 유디스는 반쯤 쪼그려 앉은 채 작은 다리를 통통 두드리며 고개를 들었다.

대체 얼마나 넓은 건지 제법 오래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홀 끝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반이나 남았다.

하지만 쉬는 것도 잠시, 유디스는 이내 다시 일어서서 자박자박 걸었다. 그렇게 또 반을 걸어 계단까지 도착한 이후 방으로 올라가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도착한 가장 첫 번째 방문 앞에서, 유디스는 크게 심호흡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오라기처럼 흩날리는 은발과 작고 얇은 팔은 가냘파 보였지만, 눈동자만큼은 결의가 가득했다.

“들어갈게요, 티리안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유디스는 슈트레우스를 불렀던 것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방문을 열었다.

“우와…….”

방을 열자마자 유디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애석하게도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슈트레우스가 허투루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슈트레우스의 주위를 맴돌던 것과 같은 붉은빛 안개가 정제되지 않은 채로 방안에 가득 들어차 미친 듯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그 사이 악취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에 한 걸음 들어서자마자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날카로운 살의와 고압적인 적대감이 느껴졌다.

정말 무서운 점은, 그 모든 게 고작 방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요람 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다가가야 해.’

유디스는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하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 안으로 가면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유디스는 천천히 슈트레우스의 말을 생각해보았다.

보모를 구할 때 조건이 뭐였더라. 유디스가 기억하기로, 내용은 대부분 인간을 식량 정도로만 생각하고 언제든 죽어도 상관없는 일꾼을 구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딱 하나,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최소한의 보살핌과 교류가 가능한 인간’이라는 문구였다.

만약 그 보살핌이 괴물이 아닌 인간 관점에서의 보살핌이라면.

‘뭐라도 해보자.’

유디스는 먼저 안개를 피해 벽 가까이에 붙어서 창문까지 걸어갔다. 그 안개가 딱히 유디스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왜, 사람은 본능이란 게 있지 않은가. 거기에 휩쓸리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렇게 조심조심 걸어서 창문까지 도착한 유디스는 낑낑대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기본 상식 아닌가. 먼지가 가득할 때는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거.

“이게…….”

그리고 거짓말처럼, 창문 밖을 향해 빠져나가는 안개를 보며 유디스가 중얼거렸다.

“이게…… 되네.”

검붉은 안개가 빠져나가자 내부가 훨씬 더 잘 보였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고풍스러운 방의 모습은 유디스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일 뿐, 아직까지 이곳은 누가 지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심지어 괴물이라고는 해도, 아이가 지내기엔 더더욱.

유디스는 밖으로 나가서 양동이에 물을 길어와 바닥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을 다 닦아내고 나니 그제야 핏자국도 사라지고 피비린내도 좀 줄어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살덩어리와 뼛조각까지 다 치우고, 테이블 위에 있는 향수까지 얼기설기 뿌리고 나니 비로소 사람 사는 느낌이 났다.

사람이 아니고, 괴물인가.

‘그럼 이제…….’

유디스는 천천히 요람으로 걸어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곳에는 정말 신기하게 생긴 아기가 누워 유디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살배기 아이 정도의 몸집을 한 티리안은 슈트레우스와 똑같이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온몸이 연한 갈색 털로 덮여 있었다.

다만 유디스가 기억하는 슈트레우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이, 그는 거의 짐승에 가깝게 털이 수북한 모양새였던 것에 비해 티리안은 그냥 조금 복슬복슬한 사람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빨도 아직 날카롭지 않은 게 뭐라고 해야 할까, 괴물이라기보다는 강아지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어쩌면 조금 귀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갑자기 요람에서 펄쩍, 뛰어올라 유디스에게로 달려들기 전까지는.

“읏……!”

어떻게 운 좋게 물리는 걸 피하긴 했지만, 유디스의 팔목에는 세로로 세 줄이 그어졌다. 하지만 주르륵, 흐르는 핏자국에 아파할 새도 없이 곧바로 티리안의 다음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도망쳐야 했다.

한쪽 팔을 감싸 쥔 채로 다급하게 도망 다니던 유디스의 눈에 양동이 안에 모아뒀던, 다 못 버린 뼛조각과 고깃덩어리가 들어왔다.

그렇구나. 그제야 유디스는 자신이 보모인 사실을 인지시키라는 슈트레우스의 말의 의미를 알았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유디스는 여태까지 이곳에 던져졌던 먹이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입안이 타는 듯하다. 턱 아래로는 식은땀이 한 줄 흘러내렸다.

말을 걸어볼까.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여태 이곳에 던져졌던 사람들이 그걸 안 해봤을까. 제아무리 내가 네 보모라고 소리를 쳐봐도 티리안에게는 그냥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끄러운 고깃덩어리일 뿐이겠지.

슈트레우스의 이름을 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티리안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전제조건하에서다.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살육과 배고픔 해결에만 혈안이 된 티리안의 모습은, 슈트레우스보다 더 짐승 같았다.

“앗……!”

또다시 티리안의 공격에 유디스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좀 전의 것보다도 더 깊었다. 몸에 힘이 빠진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렇게 죽는 건가. 유디스는 절망스럽게 티리안을 바라보았다. 이미 피 맛을 제대로 봤는지, 미쳐 날뛰기 시작한 작은 괴물에게는 도저히 자신이 보모임을 인지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죽으면 된다. 티리안의 도약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유디스는 제 숨통을 끊으러 달려드는 티리안을 바라보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분명 다짐했잖은가. 죽을 수는 없다고.

“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유디스는 옆에 있던 유리병을 냅다 집어 들고서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저를 향해 정직하게 일직선으로 뛰어드는 티리안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내리쳤다.

“가만히!! 계세요!!”

와장창-! 방안에 가득 울리는 파열음과 함께 유리병이 산산조각이나 사방으로 파편이 흩어졌다.

“키익-!”

유리병에 맞은 티리안은 형용하기도 힘든 비명을 내지르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손쉬운 사냥감 정도로 생각했었던 유디스에게서 그런 공격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곧 그가 살의를 거두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건 아니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 행동은 오히려 티리안을 자극했다.

그는 한층 더 포악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고서 작은 몸을 더욱 낮추어 유디스에게로 덤벼들 자세를 취했다.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걸까. 유디스는 스스로 떠올린 의문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보인다. 티리안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한 것이.

‘쉽사리 덤벼들지 않아.’

티리안은 유디스에게 덤빌 듯, 말 듯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적어도 여태까지의 쉬운 사냥감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데는 성공했다고 봐도 되겠지.

그게 당장에는 유디스가 보모라는 위치에 있단 사실까지 이어지진 않은 듯했지만 말이다.

“크아악!”

기회를 엿보던 티리안이 유디스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날카롭게 벼려진 발톱을 피한 유디스는 재빨리 눈에 보이는 선반으로 달려가서 그 위에 놓인 단검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요리조차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유디스가 제아무리 작은 단검이라 해도 잘 다룰 리 없었다.

챙강!

“아악!”

고작 한 번 티리안의 공격을 막는 데에 그친 단검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손을 뻗어 어떻게 쥐어 보려고 해봤지만, 그것보다 티리안이 유디스에게 달려드는 속도가 빨랐다.

유디스는 어쩔 수 없이 뻗었던 팔을 거둬들이고 재빠르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헉…… 헉…….”

티리안은 달려들고 유디스는 가까스로 도망친다. 그 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될수록 티리안은 점점 기세등등해졌고 그에 비해 유디스는 눈에 띄게 지쳐갔다.

몇 번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유디스는 치마를 북북, 뜯어 팔의 상처에 감으며 이를 꽉 물었다. 하얀 레이스 위로 검붉은 핏자국과 쓰라린 통증이 배어 나왔다.

고통스럽다. 솔직히, 두렵다. 시야도 점점 흐려지는 것 같고 숨도 버티기 힘들 만큼 가빠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 만만하게 보일 뿐.

유디스는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마지막 계획을 실행해보기로 하고, 티리안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와라!’

“키에엑-!”

유디스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다음에 달려드는 티리안을 오른쪽 팔을 들어 막아냈다.

당연히, 티리안은 유디스가 내민 오른팔을 옳다거니 하고 덥석 물었다. 날카로운 이가 팔 곳곳을 파고들어 신랄한 격통이 느껴졌지만 유디스는 아파할 새도 없이 준비해뒀던 질긴 허리끈으로 티리안의 앞발을 단단하게 동여맸다.

‘몇 번 부딪쳐보고 깨달았지.’

유디스에게 가장 위협적인 티리안의 무기는 그의 날카로운 발톱이었다. 아직 덜 자란 티리안은 슈트레우스처럼 덩치가 크거나 힘이 강하지도, 또 이가 날카롭지도 않았다.

그러니 팔을 물리더라도 아플지언정 죽진 않을 거고, 어떻게 앞발만 묶어 놓을 수 있다면 될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 고통이 유디스의 생각 이상으로 끔찍했던 건 변수였다.

“으…… 윽…….”

발이 묶인 티리안이 날뛰는 동안, 유디스는 그에게 물려 찢어지고 벌어진 상처의 고통을 참아내느라 똑같이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 티리안이 발의 매듭을 풀어내기 전에 다시 일어서는 데에 성공한 유디스는 똑같이 치마를 찢어 팔의 상처를 감은 후 날뛰는 티리안의 앞에 섰다.

티리안은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며 유디스를 물려고 해보았지만, 앞발이 제대로 묶이는 바람에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버르적대고 있었다.

그마저 슬슬 제 처지를 깨달은 건지 티리안은 점점 얌전해지고 있었다.

유디스는 이제 적대적인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인 티리안의 곁으로 가 털썩, 주저앉았다.

“불사신은…… 아니시네요.”

하. 짤막한 한숨을 내쉰 유디스의 말 그대로, 티리안에게서도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긴, 티리안 역시 적잖게 날뛰었으며 무엇보다도 상당히 굶주린 상태였을 테니 당연했다.

‘오히려 다행인 건가.’

티리안이 배가 부를 때였다면, 덜 사나웠겠지만 그 대신 이것보다 훨씬 더 오래 날뛰었겠지.

유디스는 가볍게 목을 축인 후 그의 곁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티리안에게서는 작은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조심스럽게 다가간 유디스가 그의 눈앞에 허리끈을 하나 더 펼쳤을 때도,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다가 이내 다른 쪽으로 시선을 피했을 뿐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디스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 테면 무엇이든 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유디스는 그래서 조심스럽게 티리안의 앞발을 묶은 끈을 좀 더 단단하게 고정하고 그의 입을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묶어두었다.

그 과정에서 혹시 티리안이 또 날뛸까, 물릴 만한 부위에 나무로 된 판자를 주워 부목 삼아 덧대놓았지만 티리안은 얌전했다.

보모로 인정했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디스의 말을 들어야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상황 정도는 파악한 모양이었다.

‘괴물이든, 사람이든, 아기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구나.’

씻고 싶다. 유디스는 끈적하게 늘어 붙은 핏자국과 그 자국 위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티리안의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아직 티리안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남아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유디스는 혹시나 티리안이 알아듣지는 않을까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해보았다.

하지만 티리안에게서는 반응이 없었다. 그저 훨씬 유순해진 채 유디스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확실해.’

그렇다면 우선 행동으로 가르치는 수밖에. 유디스는 티리안을 조심스럽게 들어 요람 위에 올려두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식량 창고가 어디에 있더라.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급하게 밖으로 나온 유디스가 두리번거리자, 눈앞에 갑자기 검붉은 안개가 일렁거리며 나타났다.

안개는 마치 이정표라도 되는 듯, 당황한 유디스의 눈앞에서 세 번째 방으로 길게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슈트레우스님.”

고개를 꾸벅, 숙인 유디스는 안개를 따라 세 번째 방으로 들어섰다.

“욱…….”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티리안의 방과는 차원이 다른 역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심지어 아직 덜 다듬어진 것으로 보이는 훼손된 시체가 이곳저곳에 걸려 있기도 했다.

유디스는 최대한 그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한쪽 구석에 있는 양철통을 들고 나왔다. 그 안에는 티리안의 방에 마구 흩뿌려져 있던 뼈와 고깃덩어리가 녹진한 피와 함께 가득 담겨 있었다.

솔직히 마음이 좋진 않다.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 감안하고 온 거니까. 잘해야지.

유디스는 코를 틀어막은 채 몇 번이나 스스로 다독이며 티리안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신선한(?) 피 냄새에 요람 안에서 누워있던 티리안이 고개를 반쯤 번쩍, 치켜들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맞춰 숨소리가 가빠지는 게 느껴졌다. 또 다시 티리안이 달려들기 전에, 유디스는 서둘러 접시에 고기를 얼기설기 담아서 티리안의 앞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티리안의 바람과 달리, 유디스는 그걸 곧바로 먹게 해 줄 생각이 없었다.

슈트레우스는 유디스에게 티리안이 그녀를 보모로 인식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보모란 건, 적어도 유디스의 상식으로, 그냥 먹을 걸 갖다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보살핌과 교류. 그러니까, 유디스를 존중해주는 티리안의 태도였다.

“지금부터 입에 한 걸 풀어드릴게요. 풀어드릴 건데.”

유디스는 그렇게 말하며 티리안의 입에 동여맨 허리끈을 가리켰다.

그 순간, 티리안의 핏빛 눈동자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이는 게 보였다. 눈앞의 맛있는 식사, 그리고 제 입을 가리키는 유디스의 손짓의 상황적 의미는 이해하는 듯했다.

유디스는 이번에는 자신의 입에다 허리끈을 대더니, 그걸 풀어헤치는 시늉을 하며 고기를 가리켰다.

“드시게 해드릴 거예요. 먹어. 먹, 어!”

이렇게 하면 알아들으려나. 유디스는 마치 강아지를 조련하는 것처럼 일부러 큰 목소리로, 고기를 가리키며 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먹어.”

“…….”

“하지만 제가 멈추라고 하면 멈추셔야 해요. 멈춰. 멈, 춰!”

유디스는 그 말도 크게 소리 내어 말한 후, 그의 눈앞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이해는 하셨으려나.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앞발을 묶은 끈이 단단히 고정됐는지 확인한 유디스는 티리안의 입을 동여맨 허리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접시를 살짝, 내밀며 티리안에게 말하려는 찰나.

“먹…….”

“으르릉!”

굶주린 티리안이 거칠게 울어대며 내며 접시로 달려들었다. 탐욕스러운 이가 고깃덩어리에 깊게 박히려는 순간이었다.

챙강!

“키엑-!”

유디스는 그가 고기를 한 입 베어 물기 바로 직전에 집게를 그의 입 사이로 다급하게 밀어 넣었다.

졸지에 젖먹던 힘까지 다해 고기가 아니라 고철을 씹어버린 티리안은 화가 잔뜩 난 듯 핏빛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유디스에게 냅다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 날카로운 앞발은 묶여있었고, 굶주린 탓에 기력이 없었기에 티리안의 털복숭이 몸이 부딪치는 공격은 마치 푹신한 쿠션에 닿는 것 같았다.

유디스는 이를 바득바득, 가는 티리안을 가볍게 밀어내며 커다란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멈춰!”

“크르릉!”

“멈춰!”

“크아악!”

“어허!”

안 되겠네. 유디스는 티리안을 들어서 다시 요람 위에 얹었다. 그리고는 그의 입을 묶어두었던 허리끈을 흔들어보였다.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입을 묶어둘 거예요.”

“크앙!”

물론 티리안은 들은 척도 않고 곧장 고기 접시를 향해 뛰어내렸다.

하지만 이전보다 확연하게 느려진 속도에 유디스는 얼른 몸을 날려서 티리안이 바닥에 닿기 전에 자신의 몸으로 그를 막아 세웠다.

“아야!”

“케엑!”

티리안과 유디스는 서로 부딪쳐서 넘어졌다. 하지만 격렬하게 싸워대던 때와 달리 이번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것은 유디스였다.

그녀는 고기 접시를 향해 묶인 앞발과 고개를 버르적대며 입질을 하는 티리안에게로부터, 접시를 얼른 자신의 등 뒤로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티리안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멈춰!”

“크으……!”

간신히 양발을 지탱하고서 일어난 티리안이 유디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살의 가득한 붉은 눈동자에 유디스가 또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끄…….”

티리안이 마침내 유디스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얌전히 양발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끄응…… 끼잉…….”

꼬르륵! 애처로운 강아지 울음소리에 이어 티리안의 배에서 커다란 소리가 방안으로 울려 퍼졌다.

“물지 않을 거예요?”

유디스가 티리안을 향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는 마치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처럼 유디스에게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그녀의 발에 이마를 작게 콩콩, 두 번 찧었다.

티리안은 이제는 유디스를 사납게 올려다보지 않았다. 검붉은 눈동자에서 불만이 완전히 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유디스와 적대적으로 맞댈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 태도를 본 순간 유디스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한평생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이나 성취감, 그런 것.

처음 마주했을 때 가능키나 할까, 생각했던 걸 해낸 것이다.

“그러면…….”

유디스는 뒤로 치워두었던 고기가 담긴 접시를 살며시 티리안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티리안이 잠깐 앞으로 걸어오는가 싶더니 유디스의 눈치를 보며 걸음을 멈춘 것이다. 그것도 그저 먹고 싶다는 듯 고기를 쳐다볼 뿐, 유디스에게 으르렁거리지도 않으면서.

그제야 지쳐 축 내려가 있던 유디스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드세요.”

유디스는 흔쾌히 티리안 앞에 접시를 놓아주었다. 그런데 티리안은 여전히 유디스의 눈을 쳐다보며 쭈뼛쭈뼛, 입질을 망설였다.

멈추라는 말은 이해를 했을 텐데, 먹으라는 말은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이럴 땐 어떡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유디스는 티리안의 앞으로 접시를 좀 더 밀며 크게 이야기했다.

“먹어.”

“그르릉…….”

하지만 유디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티리안은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듯 작게 으르렁거렸다. 멈추라는 말로 알아들은 듯했다.

멈추라고 할 때랑 억양을 비슷하게 해서 그런 건가. 유디스는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보려고 애쓰며, 티리안의 입에 아예 고기접시를 갖다댔다.

“먹어. 드세요. 먹어도 돼요.”

“…….”

“먹어.”

“끼잉…….”

“아이 참, 드시라니까.”

결국 참다 못한 유디스가 고기 한 조각을 집게로 들어 티리안의 입술에 갖다 비비며 말했다.

“먹어!”

“크릉…….”

그제야 티리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벌리더니 고기를 덥석, 물었다. 그러면서 또 씹지는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유디스를 올려다본다.

한층 온순해진 검붉은 눈빛에 유디스는 왠지 모를 희열감에 미소를 배시시, 지었다.

“괜찮아요.”

그는 티리안을 향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씹는 시늉을 해보였다.

“먹어. 먹어도 돼요.”

몇 번이고 유디스의 표현을 본 후에야 티리안은 비로소 마음껏 고기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 걸까. 유디스는 순식간에 제 양손만 한 고기 한 덩어리를 해치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며 얼른 다음 고기를 주었다.

“먹어.”

기특하게도 티리안은 유디스가 먹으라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먹지 않았다. 그의 인식에 있어 유디스라는 존재가 비로소 제대로 각인되는 순간 같았다.

이 정도면 슈트레우스에게 티리안이 자신을 보모로 인식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해도 되겠지.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볼까.’

유디스는 정신없이 고깃덩이를 뜯는 티리안에게로 다가가 그를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티리안.”

“……!”

작은 머리가 제 입질을 따라 휘청거리다 유디스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유디스는 문득, 그를 쓰다듬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억누르고는, 그를 천천히 가리켰다.

“티리안.”

당신의 이름이에요. 티리안.

유디스의 말에 티리안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 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이해한 걸까? 유디스는 다시 자신을 바라보는 티리안을 향해 재차 말해보았다.

“티리안.”

신기하다. 놀랄 정도로 학습 속도가 빠르다. 티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가슴팍을 향해 까딱, 턱짓해보였다.

그게 내 이름이구나. 그렇게 이해했다는 걸 유디스에게 알리는 듯했다.

그렇다면…….

“멈춰요.”

유디스가 말하자, 이번에도 티리안은 질겅질겅 씹고 있던 고깃덩어리를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어쩜. 유디스는 감탄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티리안에게 손을 뻗었다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서야 했다.

갑자기 해코지라도 할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티리안이 그녀의 손을 향해서 덥석 입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낑낑거리며 유디스의 눈치를 보는 걸 보니 방금 행동은 본능에 가까운 것인 듯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냅다 손을 뻗어버린 유디스의 잘못이기도 하고.

유디스는 괜찮다는 의미로 티리안에게 웃는 표정으로, 고기 접시를 다시 내밀어주었다.

“마저 드세요. 먹어.”

“그르릉…….”

“괜찮아요. 먹어요.”

그제야 티리안이 다시 열심히 식사를 시작했다. 유디스는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디선가 슈트레우스가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어때요?”

이런 침침한 저택에, 괴물과 함께 둘만 덩그러니 놓인 여자아이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당찬 미소가 입가에 띄어졌다.

“이만하면, 인정 받은 거죠?”

 

***

 

“오우티누스님.”

“슈트레우스. 보고는 보았다.”

파스스. 날카로운 잇새로 흘러나온 검푸른 안개는 공기마저도 얼려버리려는 듯 차갑게 살갗을 파고들었다. 한낱 연약한 인간보다야 수십 배, 수백 배는 단단하고 강한 슈트레우스의 피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추위에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멈추고 나서야 슈트레우스가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

“예. 이미 들으신 바와 같이, 티리안이 제 보모를 확정했습니다.”

“꽤 오래 걸렸군.”

오우티누스의 말은 마치 슈트레우스를 질책하는 듯했다.

그럴 만했다. 원래는 태어나자마자 몇 명이 희생되든 방 안에 인간을 집어넣어 살아남는 이를 보모로 삼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티리안의 경우 몇 개월이나 걸렸다. 짧으면 한나절이 채 안 걸릴 때도 있는데.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슈트레우스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선발한 보모라는 게, 고작. 코웃음을 친 오우티누스의 푸른 눈동자가 슈트레우스를 잡아먹을 듯 번들거렸다.

“쓸만한 인간인 게 확실한가?”

“예. 적어도 제 소임은 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조그맣고 하찮은 인간이?”

오우티누스의 말은 무척 고압적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배어나오는 위압감은 같은 괴물인 슈트레우스마저, 내리누르는 것 같은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슈트레우스는 표정을 짧게 갈무리한 후 오우티누스를 향해 막힘없이 대답했다.

“장차 티리안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것은…….”

잠깐 고민하던 슈트레우스. 그는 이내 말을 아끼기로 하고 오우티누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직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티리안이 장래에 자신의 힘을 제어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힘을 제어한다, 라. 오우티누스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시퍼런 송곳니를 드러냈다.

“우리 중 고작 그것 하나 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나?”

“티리안은 그럴 수 있습니다.”

슈트레우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와 조금 다르잖습니까.”

“…… 네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내가 모른다 생각지 마라.”

너의 공적을 생각해 그저 잠시 눈감아 주는 것일 뿐이니.

마지막 말을 마치고 난 오우티누스의 모습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슈트레우스는 그가 푸른 안개로 변해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오우티누스의 기척이 완전히 지워지고 나서야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군.”

달빛이 슈트레우스의 커다란 몸 위로 부서져 내렸다. 짙은 피로에 물든 붉은빛 눈동자는 어째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도 했다.

 

***

 

“하암-.”

짹짹, 스산한 저택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유디스의 귓전을 울렸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뻑뻑한 눈두덩을 꾹꾹, 비빈 유디스는 하품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고즈넉하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마지막 기억은 티리안이 남김없이 접시의 고기를 해치우고 곧장 곯아떨어진 모습이었다. 그 이후 방 정리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너무 피곤했던 탓에 티리안의 옆에서 같이 잠들어버렸었지.

그래도 어떻게, 자고 일어나니 좀 피로가 풀리긴 했다. 한술 더 떠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울 속 유디스의 몸은 상처가 깔끔하게 낫기까지 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유디스는 놀라며 저도 모르게 티리안을 불렀다.

“티리안님. 이게 뭘까요?”

조용하다. 왠지 불안할 정도로.

“티리안님?”

그러고 보니, 자신은 왜 티리안이 자고 있어야 할 요람에서 일어났던 것인가.

그럼 그곳에 자고 있었어야 할 티리안은 어디로 간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유디스의 가슴에 커다란 돌이 쾅,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다급하게 헤집고 다녔다.

“티리안님!”

티리안이, 사라졌다.

어떻게든 찾아야 해. 마음이 급해진 유디스는 반사적으로 방 손잡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한 걸음 채 내딛기도 전.

“악!”

문을 벌컥, 열고 나오자마자 뭔가에 부딪힌 유디스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푹신푹신하지만 딱딱한 느낌도 공존하는 커다란 무언가는 굉장히 익숙한 감촉이었다.

그게 뭔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유디스는 냅다 양손을 모으고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슈트레우스님!”

“뭐가.”

아니나 다를까 슈트레우스의 목소리였다. 그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걱정스럽게 자신의 눈치를 보는 유디스의 모습을 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되려 괜한 소란을 피워대는 게 거슬렸는지 분명 반투명한 막으로 덮여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눈동자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시끄럽게 웬 소란이냐.”

“그, 그게…… 티리안님이…….”

“티리안이 뭐.”

티리안의 이름에 슈트레우스의 표정이 일순 진지해졌다. 그것마저도 이어지는 유디스의 말에 곧 안쓰러움을 동반한 코웃음으로 바뀌고 말았지만.

“티리안님이 사라지셔서…….”

“사라져?”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슈트레우스는 유디스가 자다 깨어나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정신이 나간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잘 모르는 모양이다. 감히 인간 주제에 제게 농담을 할 리도 없고.

“이 나의 힘이 모든 곳에 닿는 저택에서 티리안이 사라지는 일 같은 게, 설령 그렇다 해도 내가 모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네……?”

“티리안은 지하실에 있다. 영유아기에 꼭 필요한 일이지.”

그들 종족에게 주기적으로 지하에 내려가 마력을 수급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그게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혼자 고립된 채, 누구의 방해도 없어야 했다.

“지금처럼 네가 고래고래 큰 소리를 지르는 것조차도 티리안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아…….”

“분명히 적혀있었을 텐데. 요람의 머리맡에 있었던 책은 읽어보지 않았나?”

“그게…….”

오자마자 티리안과 정신없이 싸우느라 그런 게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했다간 슈트레우스에게 안 좋은 소리만 듣겠지.

유디스는 커다란 푸른빛 눈동자를 굴리며 슈트레우스의 눈치를 보다, 이내 그의 발앞에 납작 엎드렸다.

“죄송해요. 한 번만 용서해주신다면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 쓸데없이 아첨 떨 시간 있으면 돌아가서 읽기나 해라.”

“요,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싫은가?”

슈트레우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움직이는 시체의 어깨 뒤편으로 검붉은 안개가 위협적으로 넘실댔다. 마치 넝쿨처럼 뻗어 나온 안개들이 수십 갈래의 가시가 되어 유디스의 몸을 동시에 겨누었다.

“뭐, 벌이라도 받아야 네 죄를 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

“지금 당장 방으로 돌아가서 책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삶의 의욕이 없다고 했지, 잔인하게 죽고 싶다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슈트레우스는 끔찍한 꼴을 더 보기 전에 방에 돌아가려는 유디스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궁금한 것이 있다.”

“네?”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거지?”

슈트레우스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야 티리안 탓에 유디스는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크게 고생했다. 티리안의 날카로운 발톱이 온몸에 새긴 자상은 여린 유디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남겼다.

비록 그 상처는, 유디스에게 시킬 일이 많았기에 슈트레우스가 잘 치료해두었지만, 그 기억까지 지워지지는 않았으니 분명 티리안에 대한 유디스의 인식 안에 감점요소로 남아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디스는 티리안의 요람에서 아무렇지 않게 잠들었다. 또 눈을 뜨자마자 곧장 티리안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채고 그를 찾으러 뛰쳐나왔다.

물론 슈트레우스에게 혼날까 두려워, 티리안이 잘못되면 약조했었던 보상을 받지 못할까 걱정돼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분명 티리안에 대한 적잖은 호감이 있었다.

“티리안이 없으면 네 입장은 오히려 좋지 않은가?”

“그런가요?”

“너를 괴롭히는 존재가 사라진 것이잖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유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긴 하다. 슈트레우스가 한 말대로 티리안이 없으니 내심 편안함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

하지만 티리안이 사라지면 슈트레우스에게 혼나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도…….

“제가 맡은 일은 티리안님의 보모가 되는 거잖아요.”

유디스는 길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좀 걱정될 수도 있는 거죠, 뭐.”

“…….”

“물론 티리안님은 슈트레우스님이랑 같은 괴…… 아니, 종족이시라서 감히 제가 걱정할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으시니 오지랖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시겠지만…….”

“그만.”

슈트레우스가 손을 들어 유디스의 말을 저지했다. 물끄러미 유디스를 바라보던 그는 마치 비꼬듯이 한쪽 입매를 끌어올리며 덧붙였다.

“그렇게 걱정한 것 치고는 티리안이 사라진 동안 정신없이 자던데.”

“하루 정도는…….”

“하루?”

웃기는군. 슈트레우스는 유디스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너는 그 당일을 포함해 무려 3일 내내 잠만 잤다.”

“……네?”

유디스가 커다랗고 푸른 눈동자를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슈트레우스를 한참 바라보던 그녀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기함했다.

하나, 둘, 셋. 3일이라니. 무슨 곰이 자는 겨울잠도 아니고 사람이 3일이나 잠을 잘 수 있는 건가.

유디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슈트레우스에게 말했다.

“티리안님께서 혹시 저를 잊진 않으셨을까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너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새기라고 한 명령을 내린 이유가 뭐였다고 생각하나?”

“음-.”

생각을 해보자. 유디스는 짧은 시간 고민한 후 답했다.

“저라는 존재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

슈트레우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핀잔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긍정의 의미로 봐도 괜찮을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 그 증거이기도 했고 말이다.

“티리안은 네가 봤듯 어리고 미숙하다. 이성보단 본능이 제 몸을 지배하는 상황이지.”

본능에 새겨진 존재는, 고작 며칠 떨어져 있다고 해서 손쉽게 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슈트레우스의 검붉은 눈동자가 탐탁잖게 유디스를 향했다.

“그러니까 넌 쓸데없는 생각 말고 티리안이 돌아올 때까지 네게 주어진 일을 해라.”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내일.”

“아……. 그럼 그때까지 저에게 주어진 일은-.”

“허드렛일이지.”

슈트레우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디스의 눈앞에 검붉은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시야를 전부 가릴 정도로 뿌연 안개가 잦아들자 그곳에는 손걸레며 대걸레, 양동이와 같이 청소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유디스는 양팔을 활짝, 벌려야 겨우 들 수 있을 정도로 큰 양동이에 도구들을 죄다 담았다. 그걸 든 채로 낑낑대며 슈트레우스의 앞에 선 유디스의 모습이 뭐랄까, 우습다.

“여긴 다 했고, 어디부터 할까요?”

“상황파악도 제대로 안 되는데 의욕부터 넘치는 건 인간의 특성이라고 해야 할지, 네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슈트레우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유디스가 든 양동이를 손으로 가볍게 툭, 쳤다. 그렇잖아도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팔을 후들거리고 있던 유디스는 슈트레우스가 통을 치자마자 들고 있던 것들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정직하게 일직선으로 떨어뜨린 덕분에 다행히 청소 도구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진 않았다. 유디스는 주섬주섬 도구들을 다시 모아서 슈트레우스의 앞에 섰다.

꾀죄죄한 모습에 푹, 자고 일어났다 해도 여전히 지친 모습이다. 그 정도면 동정이 갈 만도 하건만, 슈트레우스는 인간은 식량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칙을 되새기기라도 하듯 유디스에게 차갑게 일갈했다.

“이 방이 진짜 다 정리된 거라 보나?”

“어, 얼추…….”

“인간. 넌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너희 말로 괴물이라고 정의해둔 존재들에 대해 편협한 사고방식에 매몰되어있다는 뜻이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종족들. 슈트레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선반 위를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다음으로 바닥까지 반대쪽 손으로 매만진 그는 양쪽 손에 각각 묻은 먼지 자국과, 아직 덜 닦인 핏자국을 유디스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괴물이 꼭 어두컴컴하고 먼지 가득한 방에서 피비린내를 맡으며 살아야 하나?”

“아니요…….”

“최소한의 보살핌과 교류가 필요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어설프게라도 이해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슈트레우스는 몸을 휙, 돌려 문고리를 쥐었다. 나가기 전, 그는 고개를 살짝 비껴들고서 유디스를 향해 차가운 어조로 씹어뱉듯이 말했다.

“너는 나를 실망시켰다.”

쾅!

평소 같았으면 붉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을 텐데, 슈트레우스는 굳이 유디스 들으라는 듯 소리 내어 거세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멍하니 남겨진 유디스는 오도카니 앉아서 슈트레우스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아야겠다. 어차피 죽은 목숨, 무슨 말을 하든 아무렇지도 않다. 또 어떤 취급을 받아도 괜찮다.

유디스는 일어서서 자박자박 걸어가 손걸레를 쥐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걸레질을 반복할 때마다 이가 뿌득뿌득 갈렸다.

왜일까.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대체 왜.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유디스의 푸른빛 눈동자가 원망스러운 빛을 띤 채로 더러워진 바닥을 훑었다.

슈트레우스의 말이 맞았다. 그 무엇보다도 유디스를 화나게 한 것은 자신이 슈트레우스의 말에 단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철퍽-.

유디스는 걸레를 물에 적신 후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한 번 닦아낸 곳도 꼼꼼하게 두 번 세 번 닦아냈다. 스스로 매질하듯, 그 여린 손목이 아플 정도로 빡빡하게.

'우선 청소를 마치자. 그 후에, 다시 찾아가보는 거야.'

걸레를 꽉 쥔 조그만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야 나도 할 말이 생기니까.‘

 

***

 

“후…….”

아고고 허리야. 유디스는 계속 숙이고 있어 찌뿌듯해진 허리를 곧게 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나 됐더라. 시계를 보니 아까는 숫자 12를 가리키고 있던 시침이 어느새 3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방을 청소하는 데에만 무려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유디스는 구석에 놓아둔 세 발 의자를 가져와 창문 앞에 두었다. 그걸 밟고 올라서 창문 앞에 서니 늦가을의 서늘하면서도 기분 좋은 바람이 송골송골 맺힌 그녀의 땀방울을 상쾌하게 말려주었다.

유디스는 가슴을 활짝 편 채 심호흡을 한 후 뒤를 돌아 방을 전체적으로 쭉 둘러보았다.

이제야 높으신 귀족이 사는 집 같은 깔끔함과 기품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지.”

티리안도 슈트레우스도. 유디스는 만족한 표정으로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마지막으로 걸레를 짰다.

선반은 먼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닦아냈으며 바닥 역시 핏자국 하나 남겨두지 않았다. 또 그뿐만이 아니다. 사방팔방 널브러져 있던 온갖 잡동사니들도 깔끔히 정리했고 어설프게 놓여 있던 것들도 보기에 단정하게 배치했다.

책장 정리, 가구 정리 등등…… 유디스가 세 시간 동안 한 일은 양으로만 따지면 성인 남자 두, 셋이서 해야 가능할 정도였다.

‘돌아왔을 때 보고 좋아하셨으면 좋겠네.’

유디스는 티리안의 모습을 떠올리며 요람 옆에 작은 간이침대를 펴고 앉았다. 다소곳이 모인 무릎 위에는 유디스의 엄지손가락 두께 정도 되는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이거…….”

유디스는 책의 표지를 조심스럽게 매만져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읽을 수 있는…… 건가?”

청소 도중 요람 옆에서 발견하고 따로 빼두었던 책이다. 슈트레우스가 읽으라고 했던 책이 이거겠거니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표지부터, 살짝 넘겨본 안의 내용까지 죄다 유디스가 모르는 글자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읽어야 좋을지, 막연함에 그저 딱딱한 표지만 의미 없이 쓸어 내려보고 있던 그 순간.

“어, 어어?”

곧고 길게 뻗은 유디스의 검지 위로 검붉은 빛이 반짝거리는가 싶더니, 곧 표지의 글자들이 그녀가 읽을 수 있도록 바뀌기 시작했다.

감탄하며 지켜보던 유디스는 글자가 전부 다 바뀌고 난 후에야 어안이 벙벙한 채로, 바보처럼 소리 내어 웅얼거려보았다.

“지침…… 서.”

지침서. 아, 지침서!

‘티리안님에 대한 내용인가 봐.’

왜인지 설렌다. 유디스는 마치 재미난 소설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설렘을 느끼며 첫 페이지를 넘겼다.

[ 이 지침서는 인간 사회에서 ‘괴물’이라 불리는 종족 ‘리치’에 대한 보편적 고찰을 서술한다 ]

“말이 어렵네.”

유디스는 끙끙대면서도 잠깐 다녔던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이해하려 해보았다.

정리하자면, 슈트레우스나 티리안은 ‘리치’라는 종족이고 이 책은 그들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써놓은 책이다, 이런 건가.

‘엄청 두껍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어떻게 잘 읽어볼 수 있겠다.’

유디스는 그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고, 곧 그게 슈트레우스이 말처럼, 자신의 오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알아들을 수 있는 글자로 되어 있다고 해서 전부 다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온갖 어려운 용어, 방대한 정보, 단순히 관찰한 것만 쓴 게 아니라 이런저런 이론들을 가져와 분석해둔 글들까지. 유디스로서는 단 한 문단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알아낸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으면 귀퉁이를 살짝 접어두었던 유디스는 책을 끝까지 한번 읽어보고 난 후 이번에는 접어두었던 페이지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가장 먼저는, 역시 이거겠지.

‘땅과 마력의 연관성.’

슈트레우스가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티리안이 지하실에서 며칠이나 머무르고 있는 이유.

책에는 영유아기의 리치는 땅에서 적게는 몇 시간에서 많게는 일주일까지도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잔다고 한다.

그동안은 상대적으로 외부의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것 역시도 슈트레우스의 말과 똑같이 일치했다.

알아낸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리치라는 종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서 신체의 성장이 빠르며 수명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길다고 한다. 또 유디스가 경험했듯, 늑대의 형상과 비슷한 몸은 엄청나게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재물에 대한 집착이 있으며 모으는 행위를 좋아하고 대체적으로 예민하며, 깔끔하다.’

그렇구나. 유디스는 그제야 왜 괴물이라고 불리는 티리안이 이런 고급스러운 저택에 사는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슈트레우스가 피비린내 나고 덜 정리된 방을 보고 왜 유디스에게 그렇게 말했는지도.

‘사람으로 치면 방에다가 먹던 음식을 다 흘려 놓고, 치우지도 않고서 어린 아기를 음식물 쓰레기더미 안에 살게 한 그런 느낌인가.’

인간은 오만한 종족이라는 슈트레우스의 판단은 정확하다. 유디스는 나중에 그에게 꼭 사과해야겠다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당장에 유디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까지였다. 나머지는, 그래도 아직 죽기 전까지 20년이란 시간이 남았으니 조금은 천천히 배워봐도 괜찮겠지.

무엇보다 유디스는 티리안이 없는 동안 다른 방들을 청소해야 하기도 하고 말이다.

‘당장 생각나는 건 홀, 식당. 둘인데.’

식당을 먼저 가볼까. 유디스는 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를 매만지면서 식당 쪽을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면 배가 고플 만도 하다. 3일을 잠들어 있었다고 했고 그 이후에는 무려 3시간 넘게 청소를 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청소하는 겸해서 뭔가 먹을 게 있다면 배도 채우는 걸로.

‘근데 내가 먹을 만한 게 있긴 하려나.’

유디스의 기억에 그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식량창고에 가까웠다. 떠오르는 거라고는 코를 찌르는 매캐한 피비린내와 시체, 그로 인한 불쾌함 뿐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곳도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당장 이 방도 처음에는 안개와 피비린내로 가득하지 않았던가.

“그래, 일단 가보자.”

유디스는 걱정을 떨쳐내려고 애써 큰 소리로 스스로 위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 방이었던가. 고민하지 않고 그곳의 문을 열어젖힌 유디스는 깜짝 놀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라?”

이상하다. 자신의 기억에 이 방은 이렇게 깔끔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식당이라고 부르기 아주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말끔하고 고급스러운 곳이 아니었단 말이다.

걱정했던 피비린내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유디스의 기억으로는 녹슨 쇠고랑에 시체도 몇 구 걸려있었는데 그것도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방에는 고소한 빵 향기와 맑고, 요리할 때 나는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본 적 없던 고풍스러운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 세트도 가운데에 있었고 안쪽에서는 콧노래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잠깐, 콧노래 소리가 들린다고?

‘사람…… 인가?’

아마 아닐 거야. 슈트레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유디스는 이 저택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러니 인간은 아닐 거고, 그렇다면-.

‘누굴까.’

유디스는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서 걸음을 옮겨갔다. 조심하라고, 본능이 그렇게 경고했지만 그 이상으로 맛난 음식의 향기의 이끌림이 강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퉁이를 돈 순간, 커다란 푸른 눈동자가 한층 더더욱 커다랗게 확장됐다.

이토록이나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의 부엌이 이 저택에 있을 줄은.

“아, 오셨습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유니폼을 정갈히 차려입은 누군가 유디스를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유디스는 얼떨결에 똑같이 공손히 인사하며 그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일단 성인 남자와 비교해도 비정상적으로 큰 키와 무엇보다도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눈은, 오기 전에 생각했듯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방증하는 듯했다.

하지만 또 그런 것치고는 은근 인간 같은 면도 있었다. 우선 크다고는 해도 성인 남자보다 머리 두 개 정도로, 슈트레우스의 본체처럼 엄청나게 거대한 것은 아니었고 신체 비율도 인간과 흡사했다.

무엇보다다 그는 슈트레우스와 티리안으로 대표되는 리치 종족 특유의 날카로운 이나 털 또는 발톱 같은 게 없었다.

말하자면, 눈이 하나고 커다란 걸 제외하면 인간과 다를 게 없었다.

적어도, 외관 상으로는.

“안녕하세요.”

그 덕에 유디스는 조금 더 편하게 그에게 말을 걸어볼 수 있었다. 자신을 베르티에고라고 소개한 그는, 기품 있는 손짓으로 앞치마를 풀어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너무 길다면 벨이라고 불러도 좋아요. 슈트레우스님께 당신이 이곳으로 오실 거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

“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는 쓰고 있던 마술사 모자 같은 걸 벗고 유디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신이 저보다 하등하고 또 생각도 짧은 인간 종족이라고 해서, 편견을 가지거나, 무시하거나 그렇지는 않으니까요.”

“그, 그렇군요.”

이미 그게 편견을 가진 거고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유디스는 그렇게 말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이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면, 벨.”

“네.”

보라, 지극히 신사적이다. 베르티에고는 유디스의 말을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들어주었다.

왠지 좋은 사람, 아니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당신이 이 저택에서 요리를 담당하시는 건가요?”

“아뇨?”

벨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떠한 표정의 변화 없이 그대로 가벼운 미소를 유지하며 유디스를 향해 말했다.

“요리는 당신이 해야죠?”

“네?”

“잊었나요? 당신의 일은, 이 저택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짝짝. 베르티에고가 박수를 두 번 치자 그가 두르고 있었던 앞치마가 어느새 유디스에게 와 있었다.

베르티에고는 친절하게 웃으며 살벌하게 내뱉었다.

“어떻게, 지금 당장 제게 요리를 배우고 싶지 않으신가요? 아사하고 싶지 않다면 그래야 할 텐데?”

뒤에 덧붙이는 말이 더 살벌하다.

“또 고기를 손질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며칠 후 돌아올 티리안님께 식사로 본인을 대접하실 건가요?”

미쳤나 봐. 유디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이를 꽉, 물었다. 이놈의 저택은 진짜.

하-. 짤막하게 한숨을 쉬어도 뭐, 달라질 게 있나. 그녀는 앞섶에 앞치마를 두르며 비장한 표정을 하고 베르티에고를 올려보았다.

“뭐부터 하면 될까요.”

 

***

 

‘이게 몇 번째더라.’

세는 것도 잊었다. 유디스는 손에 잡히는 고기의 뼈를 발라내며 이제는 쓰라림도 느껴지지 않는 상처들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사람의 것이라 생각하니 거부감과 욕지기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것도 200, 300개가 넘어가니 이제는 그런 건 모르겠고 당장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칼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유디스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게 자신의 몸에서 나온 피인지 아니면 고기에서 나온 피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손힘도 약한데 고기를 잡고 썰어댔더니 손아귀도 엄청나게 아팠다.

오죽하면 왼손은 고기를 붙잡았을 때, 오른손은 칼을 쥐었을 때의 모양 그대로 굳어서 펴지지도 주먹이 쥐어지지도 않을 정도일까.

그래도 어떻게 다음 고깃덩어리를 썰어보려고 했으나 달달 떨리는 팔이 결국 헛손질을 해 칼과 고기 모두 놓치고 말았다.

유디스는 제 발 위로 쿵, 하고 떨어지는 뼈 덩어리를 피해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으며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큰 소리에 베르티에고가 다가와서 유디스의 주변을 살폈다.

“괜찮으신가요?”

“네? 아…….”

유디스는 멍하니 베르티에고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나를 걱정해주는 걸까, 그게 아니면 일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걸까.

하지만 이제는 진짜로 풀 한 포기 들 힘도 없다. 유디스는 앉은 채로 베르티에고에게 힘없이 말했다.

“조금만…… 쉬면 안 될까요?”

일부러 지쳐 보이려고 한 게 아니다. 진짜 지쳐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거였다. 그야, 이제 창밖에는 달이 휘영청 떴는데 아직까지도 식사를 하지 못했으니.

베르티에고는 그런 유디스를 유심히 내려다보더니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시죠.”

“가, 감사…… 어?”

그대로 유디스가 뒤로 자빠지듯이 누워버리려는 그 순간, 베르티에고가 유디스 앞에 접시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여태까지 유디스가 썰어온 피비린내 가득한 고깃덩이 대신 ‘인간의 음식’이 놓여 있었다.

“머, 먹어도 돼요?”

유디스는 이미 손은 접시 위 빵으로 뻗으며 베르티에고에게 물었다. 상큼해보이는 샐러드 그 안에 섞여 있는 연한 고기, 빵, 거기에 곁들여진 우유 한 잔까지. 유디스는 베르티에고의 허락만 떨어지면 그걸 죄다 입에 밀어 넣을 생각이었다.

베르티에고는 고개를 끄덕일 뿐만 아니라 친절히 그녀를 테이블 위까지 에스코트해주었다. 바닥에서 먹는 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나 뭐라나.

꿀꺽. 침을 삼킨 유디스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진짜 맛있다.’

솔직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기만 썰게 시키길래 사실 인간의 음식은 할 줄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잠깐 했었다. 하지만 베르티에고의 음식은 그 의심을 싹 다 거둬들일 만큼 맛있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먹어댔는지 손을 뻗은 그 끝에 음식이 없다는 걸 알고 난 후에야 비로소 다 먹었단 사실을 깨달을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 먹었어요.”

유디스는 입가에 하얗게 묻은 우유를 닦아내며 베르티에고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 옅게 웃으며 식기까지 치워주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왜…… 저한테…….”

“아, 제가 맡은 건 당신을 가르치는 거라서요.”

어느새 정리를 마친 베르티에고가 유디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갑을 끼고 있기도 했고, 무척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죠.”

“베르티에고님…….”

감동이다. 뭐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당신은 죽게 되더라도 티리안님께 먹혀서 죽던가 해야죠. 이런 곳에서 죽는 건 곤란해요. 소중한 식량이니까.”

“아.”

그런 말은, 쓸데없이 다정하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네.

유디스는 괜히 베르티에고를 째려보다가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휘영청 뜬 달이 보인다 했더니, 어느덧 시간은 여덟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베르티에고의 요리에 그런 마법이라도 깃들어 있는 건지, 먹고 나니 기력이 조금 회복되는 느낌이 있었다. 오늘 더 할 게 있으면 빨리해버리자고, 유디스는 스스로 다독이면서 앞치마를 동여맸다.

“이제 뭘 할까요?”

하지만 베르티에고는 유디스의 손에 칼을 쥐여주는 대신, 손수 그녀의 앞치마를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법으로 상처를 지혈해주고 방문 쪽으로 살짝, 떠밀었다.

“오늘은 이만하고 가세요.”

“네?”

“내일 다시 배우러 오면 되죠. 필요 이상으로 당신의 시간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지시가 있어서.”

슈트레우스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유디스는 고개를 끄덕인 후 베르티에고에게 꾸벅, 인사했다.

“정말 잘 먹었어요.”

“별말씀을.”

베르티에고는 신사답게 한쪽 팔을 뒤로 빼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침실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베르티에고가 손가락을 튕기자 유디스의 눈앞이 밝아지나 싶더니 어느새 침대 위에 와 있었다.

습관적으로 티리안의 요람부터 찾던 유디스는 이내 이곳이 티리안의 침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우와. 유디스의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내…… 방인가?”

이런 방은 처음이다. 유디스는 부드러운 침대에 온몸을 맡기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꿈만 같다. 키보다 다 큰 책장, 그 안을 가득 메운 책들. 예쁜 카펫과 테이블. 경관을 볼 수 있는 창문에, 화장대, 푹신푹신한 이불이 마련된 침대까지.

비록 티리안의 방보다야 작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좀 부족하다 느껴지긴 하지만, 뭐.

‘피곤하다.’

그런 느낌이다. 왜 진짜 피곤하면 피곤하다는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그런 느낌. 지금 유디스 상태가 딱 그랬다. 누우면 바로 잠들 수 있는 상태 말이다.

씻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잠깐만 침대에 누워보자 했는데 그만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

 

그렇게 정신을 잃었나, 했는데 갑자기 암전되어 있던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 유디스는 본능적으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볍다.’

무척 피곤했던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실제로도 여기, 저기, 유디스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가고 있기도 했고.

마법을 써서 하늘을 날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유디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이 보이기도 하고, 책에서밖에 본 적 없던 바다도 보였다. 고개를 드니 시원한 밤하늘에 박힌 별과 은하수가 유디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 짙푸른 어둠 속에서, 유디스는 가슴을 활짝 펴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폐 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들어온다.

이 고요한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기분. 그럼에도 외로움보다는 설렘이 느껴지는 게, 신기하다.

‘저긴 어디지?’

하늘을 둥둥, 떠다니던 유디스 눈에 오래된 성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궁금해진 유디스는 성 안 공터 같은 곳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홀리듯 이끌려 온 그곳에는, 놀랍게도 검은 그림자로 뒤덮인 인영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슈트레우스님……?”

아무리 봐도, 그 모습은 슈트레우스의 것이다. 유디스는 미동조차도 하지 않는 그에게로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유디스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모습도 슈트레우스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달빛이 공터 위로 온전히 떠올랐을 때.

“슈트레우스님이시죠?”

유디스는 이곳이 연무장이라는 사실과, 제 눈앞에 있는 이가 슈트레우스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하지만 슈트레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놀랍게도, 유디스를 향해 이를 으르렁거렸다.

불현듯 티리안 때의 기억이 유디스의 뇌리를 스쳤다. 그때처럼, 본능이 유디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한다고.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고.

“어?”

이상한 기분이다. 반으로 찢긴 하반신이 제 눈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펄떡거리는 모습을 보는 건.

몸이 나무토막처럼 기운다. 유디스는 쓰러진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 다리가 있어야 할 곳을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손안에 느껴지는 건 끈적한 핏물과 그에 젖은, 연무장 바닥의 질척한 모래뿐이었다.

채 인지하지도 못했던 고통이 그제야 유디스의 온몸에 작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유디스가 비명을 지르려는 그 순간이었다.

“어?”

어느새 유디스는 연무장에서 슈트레우스를 만난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회귀한 것처럼.

분명 슈트레우스의 발톱이 유디스의 몸을 찢어놓은 것을 기억하는데 하반신도 멀쩡하게 붙어있었다.

꿈이라서 그런가. 그 생각을 먼저 하고 또 공격당하기 전에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음으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슈트레우스와 눈이 마주쳤고 또 유디스는 속절없이 그의 발톱에 몸이 찢겨나갔다.

이번에는 허리가 아닌 목이었기에 인지할 새도 없이 시야가 암전되어버렸다.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유디스는 또 슈트레우스의 앞에서 눈을 떴다. 똑같이, 처음 마주쳤을 때로 말이다.

‘악몽…… 인가?’

유디스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슈트레우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대체 언제 깨어날지는 모르지만 깨어날 때까지 죽기만 할 순 없다.

그야, 안 아프기라도 하면 모를까 꿈인데도 감각 하나하나 생생히 다 느껴지고 있었으므로.

‘다음 건 피해야 해.’

유디스는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슈트레우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는 순간에 재빠르게 옆으로 몸을 굴렸다.

간발의 차이였다. 볼이 살짝 찢어지고 왼쪽 머리칼이 반쯤 뭉텅이로 잘려나가긴 했지만, 죽지 않았다.

‘사, 살았어……!’

어떻게 살았지. 유디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달,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고 일어서 자신을 지나쳐간 슈트레우스를 향해 섰다.

“죽지 않았군.”

슈트레우스가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그 말은 살려주겠다는 게 아니라 다음에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말로 들렸다.

괜찮다. 유디스는 주먹을 꽉 쥐고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이 정도면 힘들긴 해도 피할 만은 하다. 또, 어차피 꿈이다. 언젠가는 깰 테고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되잖은가.

희망이, 보인다.

“웃어?”

아, 나도 모르게 그만.

유디스는 다급하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슈트레우스의 등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흉악하고 커다란 거미 다리 같은 게 튀어나왔다. 뒤이어 그의 주위를 느릿하게 맴돌던 검붉은 안개가 가시처럼 바뀌어 유디스를 향해 촘촘히 세워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송곳니 사이에서 세 개로 갈라진 혓바닥이 유디스를 향해 날름거렸다.

“좀 더 재미있게 해주지.”

“아, 그럴 필요 없…….”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디스는 세 번째 죽음을 맞았다.볼이 살짝 찢어지고 왼쪽 머리칼이 반쯤 뭉텅이로 잘려나가긴 했지만, 죽지 않았다.

‘사, 살았어……!’

어떻게 살았지. 유디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달,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짚고 일어서 자신을 지나쳐간 슈트레우스를 향해 섰다.

“죽지 않았군.”

슈트레우스가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그 말은 살려주겠다는 게 아니라 다음에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말로 들렸다.

괜찮다. 유디스는 주먹을 꽉 쥐고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이 정도면 힘들긴 해도 피할 만은 하다. 또, 어차피 꿈이다. 언젠가는 깰 테고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면 되잖은가.

희망이, 보인다.

“웃어?”

아, 나도 모르게 그만.

유디스는 다급하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슈트레우스의 등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흉악하고 커다란 거미 다리 같은 게 튀어나왔다. 뒤이어 그의 주위를 느릿하게 맴돌던 검붉은 안개가 가시처럼 바뀌어 유디스를 향해 촘촘히 세워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송곳니 사이에서 세 개로 갈라진 혓바닥이 유디스를 향해 날름거렸다.

“좀 더 재미있게 해주지.”

“아, 그럴 필요 없…….”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디스는 세 번째 죽음을 맞았다.

 

‘몇 번째 죽었더라.’

유디스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으며 자신의 몸이 찢겨나간 숫자를 셈해보았다. 한 스무 번쯤 되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네.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위안 삼으며 슈트레우스를 노려보았다. 푸른빛 눈동자에는 여전히 생기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그야, 정말 다행히도 이곳은 꿈이었으니까.

‘물론 아프긴 하지만.’

유디스는 피투성이가 된 제 몸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정말 아프다. 티리안에게 당할 때는 정말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슈트레우스의 공격에 비하니 그는 확실히 아기 수준이었다. 우선 인지 범위 밖에서 공격한다는, 즉, 유디스가 채 알아채기도 전에 공격한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둘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작 작은 발톱으로 할퀴거나 베는 게 고작이었던 티리안과 다르게, 슈트레우스는 다양한 방식의 고통을 선사해왔다.

어떨 땐 그의 등허리에 돋아난 거미 다리가 유디스의 몸을 관통했고 또 어떨 때는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불이 온몸에 작열했다. 그 외에 얼어붙기도 하고 찢어지거나 밟혀 죽는 건 다반사였다.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죽음을 경험해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 덕에 조금씩이지만 피할 수도 있게 됐어.’

물론 눈으로 보고 피한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슈트레우스의 공격은 유디스의 인지능력 밖이었다.

하지만 살의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 모골이 송연해지는지,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지 아닌지, 그 정도 판단을 몸에서 한다는 것이다.

‘나 의외로…… 민첩한 건가.’

유디스는 저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슈트레우스의 거미 다리와 그가 내뿜는 번개를 연달아 피하며 감탄했다.

슈트레우스를 상대로 이만큼 선전하는데 티리안 정도는 수월하게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순간, 슈트레우스가 유디스의 눈앞에 나타났다.

“자만하지 마라. 언제든.”

커다랗고 단단한 앞발이 유디스의 얼굴을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다. 마치 오렌지를 쥐어짜듯이, 손아귀에 점점 힘이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아. 이번엔 머리가 터져서 죽겠구나. 체념한 유디스가 눈을 감은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

어라. 당황한 유디스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잘 때 자세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에는 피투성이가 된 연무장 바닥도, 성도 보이지 않았다.

꿈이 맞았구나. 유디스는 제 팔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짹짹. 창가에는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유디스는 마치 얼른 현실로 돌아오라고 소리치는 듯한 그 노랫소리에 의자를 가지고 가 창문을 열고 그 앞에 앉았다.

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귀 뒤쪽을 휘감고 지나간다. 잠을 설친 탓인지 부스스해진 머리를 정리한 유디스는 제 팔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스물다섯 번 정도 죽었을 몸은 자기 전과 똑같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심지어는 자기 전보다도 더 건강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참 이상한 일이야. 유디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순간, 창틀 아래에서 무언가가 불쑥 올라왔다.

“뭐하나.”

“으, 으악!”

깜짝 놀란 유디스가 뒤로 크게 넘어졌다. 앉은 의자가 높진 않아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유디스는 지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는 꼬리뼈를 살살 만지며 눈물이 찔끔 흐른 눈가를 닦아냈다. 왜 사람을 갑자기 놀래키는 거야.

“무슨 일이세요, 슈트레우스님.”

“왜. 네 얼굴에 어째 불만이 가득한 듯하군.”

슈트레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널 찾아오나?”

“아, 아뇨.”

“우습군. 그럼, 내가 무슨 일도 없는데, 뭐하러 너를 찾아오나.”

아니, 뭐 어쩌라고요, 그럼.

황당한 유디스가 그를 바라보기만 하자 슈트레우스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청소도구를 가리켰다.

“홀을 청소해라. 티리안이 돌아오기 전까지.”

“아…….”

“왜. 싫나?”

“아뇨. 그게 아니라.”

유디스는 슈트레우스의 반응에 오히려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방 청소는, 더 안 해도 되는 건가요, 그러면?”

“…….”

대답이 없다. 그건 곧 긍정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뭔가 인정받은 기분이라 괜히 발걸음이 가볍다. 유디스는 콧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며 청소도구들을 바리바리 품 안에 싸 들었다.

“다녀올게요.”

“꺼져.”

슈트레우스가 차갑게 말하더니 모습을 냅다 감춰버렸다. 그냥 말 한마디 좋게 해주고 훈훈한 분위기로 끝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뭐, 핀잔 안 주는 게 어디인가. 인간을 식량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슈트레우스임을 감안하면, 이건 칭찬이나 다름없지.

유디스는 스스로 그렇게 위로하며 홀을 향해 내려갔다.

“어라, 베르티에고님?”

“오셨군요.”

그 대답은 마치 기다리고 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들렸다. 혹시 하는 마음에 유디스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홀 청소도 알려주시는 건가요?”

“네? 아니요.”

아깝다. 만약 청소를 알려주는 거라면 조금이라도 분업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베르티에고는 그런 유디스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검지를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며 답했다.

“요행을 바라면 안 됩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청소도 배워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말이에요.”

“그래요? 청소를 그렇게나 좋아한다니, 그럼 제 말을 들으면 더더욱 기뻐하시겠군요.”

베르티에고의 말투가 아주 얄미웠다. 뒤이어지는 말은 더 얄미웠다.

“어제 당신이 먹은 그릇을 치우지 않았잖아요?”

“네? 치우시지 않았어요?”

“치워두긴 했죠. 당신이 설거지하게 될 곳에다가.”

베르티에고가 어깨를 으쓱했다.

“홀 청소가 끝나고 나면 식기들의 설거지도 부탁해요.”

“아니…….”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아요?

유디스는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아랫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 저택 내의 모든 허드렛일은 유디스의 담당이다. 오히려 밥을 해주고 또 식기를 설거지할 곳에다 친절히 옮겨준 베르티에고에게 감사해야지.

유디스는 애써 환하게 웃어보이며 베르티에고에게 고개를 숙였다.

“홀 청소를 마치고 가서 할게요.”

“그래요. 그럼 저는 이만, 아.”

몸을 돌려 가려던 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유디스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의 귀에 낮게 읊조렸다.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좋은 일이요?”

좋은 일, 무슨 일. 이 저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좋은 일이 있나.

“뭔데요?”

하지만 고개를 돌린 곳에 베르티에고는 이미 없었다. 하여간 이 저택 사람, 아니, 괴물들은 자기가 할 말만 하고서 냅다 사라져버리는 게 특기야, 아주.

‘뭐 그래도 기분은 좋네.’

진짜 좋은 일이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들으니 기분이 괜히 좋다. 유디스는 그렇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은 상태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홀 청소를 시작했다.

홀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슈르테우스도, 베르티에고도 또 다른 누구도 유디스에게 청소 방법 같은 걸 가르쳐주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특별하게 주의해야 건 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청소해야 할 곳이 기가 막힐 정도로 넓은 것일 뿐.

“막막하네…….”

유디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도 이러고 앉아 있는다고 달라질 게 있나. 그녀는 금세 무릎을 짚고 일어나 걸레질을 시작했다.

과정은 간단했다. 쓸고 닦고 정리한다. 유디스가 어제 잠을 청한 방의 한 5, 60배 정도 되는 커다랗고 넓은 장소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홀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거나 먹다가 남은 사람의 뼛조각 같은 것들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청소는 유디스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일찍 끝났다.

물론 일찍이라고 해봐야 꼭두새벽인 아침 7시에 시작한 게 자그마치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

‘정리는 대충 하고 물걸레질, 쓸기만 했는데도 이러네.’

으아. 유디스는 빠듯한 허리를 뚝뚝 꺾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래도 제법 많이 했다. 지나가면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또 제대로 안 닦인 부분은 없는지, 확인한 다음에 어수선한 장식품과 가구들 정리 정도만 하면 아마 슈트레우스에게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시간 정도 걸리려나. 재촉하거나 간섭하는 말이 없으니까 조금만 쉬었다 할까.

‘음…… 아니다.’

유디스는 땀을 한 번 닦고는 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챙긴 빵을 한 조각 입에 밀어 넣었다.

한 번 쉬면 계속 쉬고 싶어질 거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다리가 아픈데, 어디 앉거나 기대면 영영 일어서고 싶지 않아질 게 분명하다.

차라리 빨리 해치우고 쉬는 게 몸도 마음도 더 편하겠지.

물론 슈트레우스가 그 뒤에 또 무언가를 시킬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고객센터이용 약관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유료 콘텐츠 제공 약관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

Copyright © viewcommz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