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떨어진 별을 내가 줍겠다.
누구나 죽기 전에 꼭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원하는 자격증 따는 것부터 마라톤 완주나 세계 일주 같은 것들까지.
그것은 판타지의 전쟁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먼저 얘기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곳에 있던 모두 분위기에 취한 듯 자신의 소망을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약속했다.
만약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모두의 소망을 이뤄주기로.
나는 그 장소에 있던 유일한 생존자다.
***
피비린내가 가득한 전장 속, 그날은 유독 별이 밝게 빛나던 밤이었다.
불이 꺼진 전장.
잠깐의 휴식을 만끽하며 멍하니 별을 보고 있을 때 드워프 전사가 말을 걸어왔다.
푸른 망치 그랜. 동료 중에서도 나름대로 친한 동료였다.
“야, 리안! 너는 전쟁이 끝나면 뭘 하고 싶냐?”
전쟁이 끝나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있었던 걸까.
최후의 결전을 앞둔 사람들 같지 않은 밝은 분위기였다.
“글쎄요. 그다지 생각은 안 해봐서.”
“그래도 딱, 한 가지. 꼭 하고 싶은 한 가지만 말해봐라.”
마지막 전투잖냐.
평소보다 끈질기게 물어보는 그랜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소망이랄까. 전쟁이 끝나고 하고 싶은 것을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리안이라는 소년의 몸에 빙의한 지 9년.
그 시간 동안 내가 바라 온 것은 오직 하나, 생존뿐이었다. 전장에 기어나와 살아남는 것. 그뿐이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으니 마족 놈들은 나를 ‘불사의 리안’이라 불렀다.
어떤 사경에서도 살아남기에 불사.
아무리 봐도 바퀴벌레 같다고 붙여준 이명 같지만, 덕분에 전장에서 득을 본 것도 있으니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에 잠기며 나지막하게 말한 것은,
“간단하게 대륙 유랑이라도 해보고 싶네요.”
단순한 모험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웹소설에 나오는 다른 주인공처럼 집으로의 귀환을 목표로 하기에는 너무 이 세계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곳이 좋고 유쾌한 것도 아니지만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탓일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봤자 전처럼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 소소한 소망을 들은 동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누군가는 낭만 있고 운치 있는 소망이라는 말도 했고, 누군가는 의외로 평범한 소망에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항상 우울한 표정으로 전쟁이 끝나길 하루하루 기도하는 애늙은이라 생각했다며, 의외로 어린애다운 모습도 있지 않냐며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나의 뒤를 이어 누군가는 고향의 전통주를, 누군가는 사별한 애인을 위한 꽃 한 송이를, 누군가는 바다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별이 빛나는 밤. 동료들은 서로의 소망을 말하며 즐겁게 웃고 떠들 때 마탑의 장로가 한 가지 제안했다.
“이거 어떤가? 이 석판에 각자의 소망을 새겨 넣는 게야. 그리고 만약 죽어서 이 소망을 이룰 수 없게 된다면 살아남은 사람이 대신 이루어주는 거야.”
“하핫, 좋은데요? 이거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
그중 누구도 싫다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이지 누가 영웅들 아니랄까 봐 다들 호쾌하고 낭만 있는 사람들이었다.
***
아침이 밝자 최후의 결전은 시작되었다.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선별된 5인의 별동대 용사 파티.
그들이 결판을 지을 때까지 다섯 군단장들을 잡아둘 13인의 또다른 별동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모인 13인의 영웅이 모인 또 다른 별동대가 내가 속한 곳이었다.
어찌 보면 용사파티보다도 어려운 과제.
그러나 오직 최후의 결전인 이날만을 위해 달려온 별동대는 조금의 두려움이 없었다.
다섯 군단장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미친 짓을 했지만, 이 별동대는 그것을 가능하도록 모은 13인의 영웅이었다.
별동대는 본인의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하였다.
패배가 확정되어 보였던 충돌.
그 충돌은 영웅들의 연계와 희생으로 군단장을 하나하나 격파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영웅들의 머릿수는 줄었으나 더더욱 불타오르는 영웅들의 기세에 점점 승기가 기울었고,
“이럴 리가 없다…! 불사의 존재인 이 몸이 네놈들에게 패배할 리가!”
“그냥 얌전히 죽어, 이 해골자식아!”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던 불사군단장 라칸.
나의 검이 그의 라이프베슬을 쒜뚫어 위업 달성에 한 발 다가갔다.
말도 안 되는 위업.
개인의 힘으로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군단장을 모두 토벌했으나 환호의 목소릴 들리지 않았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그 대가는 거대했다.
13명 중 12명이 전사.
오직 나만 살아남았다.
어젯밤까지 각자의 소망을 말하며 웃고 떠들던 이들이 모두 떠났다. 이 빌어먹을 생존능력 덕분에 나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눈물이 눈 앞을 가리며 감정이 몰아쳤으나 마왕성쪽으로 향해야만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왕의 목. 동료들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이미 한계라는 듯 점점 눈이 감겨왔고 얼마 못 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전투로 얻은 데미지가 너무 큰 나머지 정신력으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초라할 정도로 나약해진 몸에 절망하며 마왕성을 노려보았고, 용사파티가 마왕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안심하며 정신을 잃었다.
***
9년이라는 길고도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전쟁.
그 전쟁은 마왕의 죽음으로 종막을 고했다.
시민들은 기뻐하며 그동안의 감정을 모두 쏟아내었고, 황성은 종전을 축하하고자 성대한 연회가 열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화려하게 꾸민 연회장.
“대단하네. 제국은 제국이라는건가?”
평생 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화려함에 눈이 부셨다.
대전쟁 직후면서도 이 정도의 연회가 가능한 제국의 재력은 그 위엄을 보여주었다.
2025.10.10 13:20
2025.09.27 02:23
올라온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