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내 능력은 한 방에 모든 걸 쏟아붓는 중첩 능력. 그것도 이틀 동안 돌만 때려야 겨우 고블린 하나 잡는다. 그리고 어느 날. [체크 포인트에서 부활합니다!] 내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졌다.
-오늘의 속보입니다. 벌써 4일째 헌터 랭킹 1등 회왕의 신변이 모호한 상황인데요.
인력 사무소 대기실.
의자에 앉아 넋 놓고 TV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회색빛 머리의 남자.
내 우상이었다.
-추가로 47층을 공략 중이었던 랭커 8인 또한 실종되며 탑 공략에 차질을 지고 있습니다.
CCTV 화면 속, 로브를 뒤집어쓰고 사라지는 회왕.
구린 화질임에도 회색 머리칼과 존재감을 한껏 드러났다.
저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현재 랭킹 3위, 인형사가 필사적으로 실종자들을 찾고 있지만, 탐색은 진전이 없는 실정입니다.
생각 사이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쯧쯧. 실종은 무슨. 돈맛 좀 봤겠다, 지들만 호화롭게 살겠다고 숨은 거 아니겠어?”
김 아저씨.
인력 사무소 붙박이.
내가 믹스커피를 많이 마신다고 잔소리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커피봉다리 두 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생각해 봐. 요즘 TV에 잘 안 나오지? 왜겠어. 우리처럼 1층도 못 벗어나는 버러지한테는 평가도 당하기 싫다. 그거 아니야!”
옆에 있던 아저씨들이 대꾸했다.
“이 양반아. 그렇다고 랭커가 한꺼번에 사라져? 뭔 이유가 있겠지.”
“5층부터는 카메라가 안 먹잖아. 딱 그걸 노린 거지!”
점차 언성이 높아졌다.
여전히 나는 TV를 봤다.
진실이 뭐가 중요할까.
난 그냥 인정받고 싶다.
탑 1층을 벗어나 랭커들과 함께하고 싶다.
옆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경험을 하고, 공략이 끝나면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한다.
그럼 우리는 편백으로 장식된 고즈넉한 술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떠든다.
생각만 했는데 어깨에서 따듯한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다.
행복했다.
“거기, 이틀!”
돌연 목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이틀. 내 별명이었다.
내 능력은 데미지 중첩 능력.
그러나 2일 동안 돌만 때려야 겨우 고블린 하나 잡아서 별명이 ‘이틀’이었다.
물론 이름이 김이들인 게 제일 컸다.
“예?”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너만큼 랭커한테 관심 있는 놈도 없잖냐.”
안 듣고 있었다.
TV를 보았다.
-일각에서는 회왕이 사망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회왕이 사망?
불가능했다.
그의 대외적인 능력은 압도적인 무력.
그러나 진짜 능력은 5초가량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다.
증거는 탑 공략 영상을 돌려보면 충분했다.
‘자각하는 건지 항상 느리게 반응하지만, 그 간격이 몇 프레임씩 들쭉날쭉하다. 위급한 상황 직전에는 사건 발생 전에 몸이 움직인다. 그럼에도 화산 분화처럼 대응에 5초 이상 걸리는 일은 피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를 죽이려면 효과에 시간이 걸리는 독을 먹이거나,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범위를 공격밖에 없다.
하나 회왕은 만독불침에 최강의 무력을 가졌다.
고로 그가 죽는 건 불가능하다.
결론을 내고 대답했다.
“아니요.”
“그럼 어디로 갔을 거 같냐.”
“아직 탑을 공략하고 있지 않을까요.”
“쯧. 순진하다. 순진해. 그게 아니라 우리를 무시하니까 튄 거라니까!”
“거 참. 대낮에 술이라도 드셨나. 김 씨 같은 사람들 때문에 탑 밖 버러지 소리 듣는 거 아니요.”
“뭐? 야, 장만수. 너 이리 와봐.”
이제는 아예 멱살을 잡고 싸워댔다.
오늘 일 받기는 글렀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탑 밖 버러지…틀린 말은 아니지.’
탑을 오르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고블린 5마리를 잡는 간단한 것.
하나 그조차 통과 못 할 만큼 약한 이들은 탑 주변에 자리잡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능력만 좋았어도.’
내 능력으로 중첩된 데미지는 발동 시 한 대상에게 모두 발산된다.
초과하든 말든 관계없다.
자격시험은 고블린 다섯 마리.
결국 한 마리는 죽여도 나머지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나는 능력 빼면 고블린도 못 죽이는 일반인이니까.
“……또 왔냐?”
걷다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끝이 안 보이는 탑.
그 아래 달린 문 옆에 작은 건물.
등탑자를 확인하는 초소였다.
안에 있던 경비원이 나를 보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10년째 매일 찾아오니 그럴 법했다.
“옆문 열어놨다. 알아서 둘러보고 가라.”
“예.”
고개를 끄덕이고 초소 옆문으로 들어갔다.
수십 미터의 벽과 탑 사이, 좁은 잔디 길이 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수십 갈래의 벽.
그 사이를 익숙하게 뚫고 지나갔다.
끼익-
몇십 분쯤 똑같은 길을 걷고서야 걸음을 멈췄다.
저 너머, 탑의 외벽.
흐릿한 흔적 아래 푯말이 달려 있었다.
[2031.4.13]
10년 전.
회왕의 역사가 시작된 곳.
벽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카각-!
[1데미지가 누적됩니다.]
시간이 남을 때면 늘 이곳에 와 칼을 휘둘렀다.
고블린, 건물, 하다 못 해 돌도 부서진다.
하지만 탑은 부서지지 않는다.
회왕조차 흔적만 남겼을 뿐.
[1 데미지가 누적됩니다.]
저 흔적을 보면 나도 그런 상상이 들곤 했다.
만약 내가 1년. 10년 동안 데미지를 쌓으면 저런 상처를 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탑을 올라가고, 그 사람의 옆에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1데미지가 누적….]
누군가에겐 추하고 미련한 욕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1층의 버러지.
[1데미지….]
회왕은 하루만 사라져도 세상이 찾는 주인공이다.
[1….]
그러나 나는 영영 사라진다고 해도 찾는 사람 하나 없는 엑스트라.
[1]
단 한 번만이라도 그의 인생에 끼어들어 보고 싶었다.
[1]
단 한 번만이라도!
[1]
[1]
[1]
“…후욱. 후욱.”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능력 창을 확인했다.
그렇게 휘둘렀건만 쌓은 데미지는 고작 70.
고블린 한 마리 못 잡았다.
‘이딴 능력으로 상처는 개뿔.’
굼벵이가 꿈틀대봤자 여전히 밑바닥일 뿐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꽤 오래 있었는지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제때 집에 가려면 지름길을 이용해야 한다.
슬럼을 가로질러서 위험하지만, 이 구역에선 저녁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나았다.
“한 푼만 줍쇼. 한 푼.”
“콜록. 쿨럭!”
노숙자들과 범죄자가 길거리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1층 최대 빈민가.
위험하지만 저녁에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았다.
2025.10.09 06:58
2025.10.07 18:07
2025.10.06 19:00
2025.10.04 14:49
2025.09.27 03:49
올라온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