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아마도, 탑에 들어온 초보 헌터에게 마땅히 일어나야 할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비 헌터를 탑에 초대하는 시스템 창은 기본 중 기본.
그 안에 ‘능력을 각성하셨습니다!’라는 문구나 무지개 효과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둘째.
자신 있게 주어진 스킬을 익힌 다음, 각성을 토대로 멋지게 스테이지를 클리어한다.
셋째.
유명해진다, 인기가 많아진다, 인생역전한다!
초보 헌터라면 당연히, 첫 상대는 고블린이라는 공식이 있다.
이른바 유명 헌터로서의 첫걸음이라는 말이지.
보통의 웹소설이든 현실이든 전투력 측정기라고 하는 그거 말이다.
나 또한 시스템의 초대를 받아 탑에 들어왔고, 어두 컴컴한 숲에서 첫 전투 상대로 고블린을 마주했다.
…근데 X발. 전개가 이렇게 되면 안 되지.
“시스템.”
[이도윤 헌터님의 스킬카드 지급을 심사 중입니다….]
불러낸 시스템 창의 상단에는 아까부터 끊임없이 로딩이 돌고 있었다.
오류라도 난 듯 겁나게 깜빡거리는 화면은 덤이었다.
심사.
그래, 심사 좋지.
내 능력을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준다니 아주 감사하다.
탑에 들어오자마자 10분 동안 주구장창 심사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감사했을 텐데.
그것도 고블린이 사방에 진을 치고 나를 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이 개판에!
내가 이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약 20분 전으로 돌아간다.
도대체 어떤 인생 사연이 있어‘수락’을 누르고 탑에 들어오게 되었느냐 하는 그거 말이다.
사실, 그리 거창할 건 없이 세줄로 정리가 가능한 게 내 인생이다.
내 꿈?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내 꿈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 가정사를 말하면 동정의 눈길을 받지 않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글렀다. 타고난 운명이라는게 변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더라. 현실에서 22년간 발버둥 처봤지만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이번 기회로 탑에서 이루고자 했을 뿐인게 내 전부다.
기왕 동정의 시선을 받지 않을 거, 조금이라도 동경의 시선을 받는 편이 탐나니까.
동정과 동경은 한 글자 차이임에도 그 사이가 어마어마하게 멀다.
탑 밖에서는 고아에 번번한 직장도 가지지 못한 우울한 인간일 뿐이지만.
탑 안에서는 스테이지를 누비는 헌터라니, 내 우울한 인생마저도 완벽한 서사의 한 축이 될 것 아닌가?
내가 바라는겐 정말 많지 않다. 탑 안에서라도 '평범'의 범주에 있는 삶을 누리는 것. 딱 그뿐이다.
잠시 설명하자면 여기서 탑이라 함은 15년 전에 별안간 나타나 인간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기준으로 ‘헌터’를 뽑아가는 존재의 이름이다.
인간 중 누군가 정한 게 아니라 탑이 자신을 그렇게 칭하면서 나타났다.
헌터를 선발할 때 마다 ‘탑이 당신을 선택했다’고 하거든.
그 모양새가 인간의 상식 밖의 것이긴 해도 사람들은 금방 적응했다.
아마도 헌터로서의 간택을 빨리 받아들인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그 이유를 찾는다면 헌터가 멋있기 때문이지.
극소수의 헌터들만 멋있게 성공한다고들 하지만, 그건 본래 대부분의 직업이 가진 고충과 다를바가 없어 굳이 위험의 요소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헌터라는 직업은 단시간 내에 아예 새로운 개념으로 세상에 정착했다. 현실을 벗어난,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티켓.
이것이 전 세계 사람들이 헌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현실에 만족하는 이는 현실에 안주했고, 새로운 삶을 바라는 이는 주저없이 헌터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나는 완벽히 후자의 사람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거절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공짜로 인생 리셋 기회를 주겠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냐고.
다만 20분 전의 내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명언을 조금만 더 일찍 떠올렸다면 이 결정을 조금은 망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도윤 헌터님의 스킬카드 지급을 심사 중입니다….]
아직 능력도 얻지 못한 뉴비 주제에 고블린 출몰 구간에 발을 들인 내 잘못이라고?
설마. 내가 탑에 들어온 것은 고작 10분 전이다.
그것뿐이 아니라, 나는 탑에 들어오고 나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망할 탑이 능력도 얻지 못한 뉴비를 고블린 밭에 던졌다는 뜻이 된다.
망할!
미련 따위 남아있지 않는 인생은 뒤로하고 멋지고 사랑스러운 헌터 인생을 즐기려던 내 꿈이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이제는 내 몸이 산산조각나려는 참이다.
아, 제발. 진짜 제발.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었을 뿐인데.
이대로라면 불가능할 것이 뻔한 평범한 삶을 헌터가 되어서라도 이루고 싶었을뿐인데!
내 욕망이란 정말 단순했다.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살고 싶다. 이른바 평범한 인생이 살고 싶었다.
그러나 탑에 들어오기를 결정한 내 안목을 탓할 시간은 더 이상 없었다.
“그우어억-!”
몬스터가 심각하게 못생긴 소리를 내며 내게 뛰어드는 순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곰 같은거 만나면 뛰지 말라 했는데. 이미 뛰었는데 어떡하지? 저거 곰인가? 곰 아니잖아. 아니 미친 몬스터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대처 방법이 뭔데?’
뒤조차 돌아보기 힘들어 무작정 뛰는 내 입에서 헉헉대는 꼴사나운 소리가 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입은 염불을 외듯 시스템 창을 불렀다.
이놈의 심사 왜 이렇게 오래결려? 일 안해?
속으로 마음껏 컴플레인을 거는 내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
“악! 미친!”
고블린이 휘두루는 방망이를 가까스로 피한 내 눈이 다시 상태창을 향했다.
와, 환장하겠네.
로딩이 아예 멈춰있었다.
게임으로 치면 보통 렉 걸렸다하는 그 상태가 내 목숨이 걸린 상황에 태연히 벌어지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소리를 지르는 와중, 무언가가 내 왼쪽 허리부터 오른쪽 허리를 가격했다.
…?
다시 생각해보니 상대가 들고 있는 건 무식하게 큰 몽둥이다.
근데 그걸로 양쪽 허리에 동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내가 쌍절곤을 몽둥이로 잘못 봤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내 의문의 정답을 알 수 있었다.
허리 반쪽을 포함한 하반신이 나보다 먼저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저것도 나네.’
와, 내가 나를 이겼어.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혼미해진 뇌가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그다음. 고블린의 몽둥이가 내 뒷통수를 가격하기 직전.
멈춰버렸던 시스템이 그것도 모자라 힘없이 픽, 하고 꺼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잠시만요. 이건 아니잖아.
초장부터 노이즈란 노이즈는 다 일으키고 비리비리하다 싶더니, 결국 저래 될 줄이야.
골이 울려왔다.
정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저러면 내가 스킬 카드를 어떻게 얻어.
탑이라면서요.
이렇게 개구린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게 맞냐.
2025.10.1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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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3 22:58
2025.09.2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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