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1화
“일…나. 어서….”
춥다.
최근까지의 날씨와는 전혀 딴판이다.
이 정도 날씨라면 눈이 펑펑 내려도 이상하지 않지 않을까.
참 신기한 꿈이다.
에어컨 좀 끄고 잘걸…
“…일어나라 루크!”
퍽!
“으아아악!”
정수리에 퍼지는 알싸한 고통.
꿈이 아니었다.
“여, 여긴?”
고통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정신을 차리자 보인 건, 고풍스러운 저택과 창문 너머 내리는 눈이었다.
“어디에 정신이 팔렸길래 내가 하는 말도 무시하고 있는 거냐.”
“예, 예?”
내 정수리를 때린 건, 고급스러워 보이는 집사 옷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어, 일단 여기… 집은 아닌 거 같긴 한데.’
그때, 아직도 남아있는 고통에서 다른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집사… 티페르눔 영지… 크윽! 이건…?’
이 몸의 기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흘러들어오자, 난 빙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도 대답 못할 줄이야. 한 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나?”
‘갈레온 집사장이었나, 그거 한 대 더 맞는 건 사양이거든요?’
“아, 아닙니다! 잠깐 추위 때문에 머리가 굳었던 모양입니다!”
내 머리를 때렸던 중년 남성은 이제야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겠다는 듯,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래, 그러면. 크흠,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잘 들어라.”
그는 손에 쥐고 있는 삽을 들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출정을 나가셨던 태오 님께서 돌아오실 예정이다. 들어오시는 길에 눈이 많이 쌓여있으니, 모두 나가서 치울 준비를 해라. 이상.”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가장 먼저 밖으로 향했다.
나머지 집사들은 삽을 챙기고 밖으로 따라나섰고, 어느덧 나만 남아있었다.
‘한 소리 듣기 전에 나도 빨리 나가야 하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움직이던 중, 누군가가 삽을 건네주었다.
“자, 삽. 찾고 있었지?”
메이드 복을 입은 갈색 머리 여성이었다.
“어, 어어….”
“오늘 너 되게 이상하다? 집사장님 말도 제대로 안 듣고, 삽도 못 찾고.”
“아하하,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야….”
그녀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내 등을 살짝 밀치며 말했다.
“됐고, 어서 나가서 눈이나 치워. 또 한 소리 들을라. 태오 님도 좀 있으면 오시니까 빨리 치워야 해.”
“난 음식 준비해야 해서 이만 간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식당으로 보이는 곳으로 사라졌다.
“대체, 뭔 일이야 이게….”
***
퍽! 스으윽.
‘아오, 내가 뭔지도 모르는 곳에 빙의하고 하는 일이 왜 하필 눈 치우기인데!’
전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생긴 일이 또 이 마법의 똥가루를 치우는 일이라니.
‘무슨 눈이 사람 키에 2배까지 쌓여… 이런 건 인터넷에서나 본 건데.’
분명 치워지고 있는 건 맞았지만, 이건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애초에 중세 시대에 이걸 삽으로만 하는 건 현대에서도 안하는…
아.
그래, 이런 건 사람이 하는 게 맞긴 했다.
그래도, 이걸 누가 오기 30분 전에 이리 급하게 시키면 몸에 부담이 오기 마련인데… 도대체 누가 이렇게 시킨건지.
머릿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눈을 치우고 있으니, 그래도 사람 여럿 지나다닐 정도로 길이 넓혀졌다.
‘와… 역시 이런데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이거 하고도 지치지가 않네.’
그때, 아까 전 집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다들 그쯤 하면 되었다! 이제 태오 님께서 오시니 행색을 정갈히 하고 있도록!”
‘이제야 오시는구먼, 근데 태오라…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눈이 치워진 길 가장자리에 서서 기다리며 생각했다.
‘티페르눔 영지, 태오… 태오 티페르눔?’
‘태오 티페르눔이면 내가 봤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북부 대공이잖아!’
점점 멀리서 인영이 보이며 내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저 얼굴, 삽화에 나온 거랑 똑같이 생겼어….’
검으면서 푸른 머리 기계 같은 표정.
얼음으로 조각한 것 같이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얼굴은, 보고 있으면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셨습니까. 태오 님.”
집사장은 따뜻한 손수건을 건네주었고, 그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래, 이번에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뭔가 익숙한 영지 이름… 그리고 태오.
‘그렇다는 건… 자기 전에 읽었던 소설에 빙의한 거냐!’
그는 눈이 치워진 곳에 서있는 사용인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쓸데없는 짓을 했군. 이만 들어가지.”
집사장은 우리에게 말한 뒤 급하게 대공을 따라갔다.
“모두 질서 정연하게 오도록. 태오 님 이번 그리 마음에…”
사용인 대부분이 중얼거리며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 새벽에 힘들게 눈까지 치웠는데 쓸데없는 짓이라니… 너무하시지 않냐.”
“야, 조용히해. 그러다 들리면 어쩌려고.”
“아 하지만 그렇잖아. 이거 이만큼 쌓인 눈 치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도 알잖아!”
야 그만…
뭘…
그들이 멀어지고, 이번에도 내가 마지막 순번이 될 즈음에 난 출발했다.
‘아마 저런 말을 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기억의 조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소설 속 태오는 늘 차갑고 무뚝뚝한 대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극초반까진 무능, 혹은 망나니로까지 불리던 인물.
그렇다면 지금은 아직 그 ‘평판’이 굳어가고 있는 시기일까.
“저기, 너 뭐하냐? 안 들어오고.”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간다!”
저택 안은 밖의 눈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따스한 촛불과 벽난로에서 피어나는 불빛, 두꺼운 카펫이 깔린 복도.
눈 치우느라 얼어붙었던 손끝이 녹아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진짜 소설 속 세계라니.’
어제까진 분명 PC 앞에서 라면 먹으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내가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모두 식당으로 집합해라. 태오 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겠다 하셨다.”
집사장의 목소리에, 메이드와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2025.10.13 23:59
2025.09.27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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