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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은 날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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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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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참여작

신하성은 눈꺼풀 아래 일렁이는 인영을 보았다.

 

새까만 머리, 마찬가지로 새까만 눈.

 

할 말은 꼭 해야만 했던 성정에, 좀 장난스럽고, 그런 것치곤 단정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웃으면 눈가에 장난기가 서리고, 날카롭게 활짝 웃을 수 있는.

 

[남선우.]

 

네 이름을 보면서 마주 웃어주면, 눈이 뜨인다. 그러면 그제야 깨닫게 된다.

 

맞다, 너 죽었잖아.

 

***

 

오늘은 사흘 차였다.

 

첫날에 빈소를 꾸리고, 이튿날부터 손님을 받고, 사흘째 밤부터 정리를 시작해서 나흘째 새벽에는 널 태우러 가야 한다니까.

 

하루 남았네. 신하성이 상 위로 엎어졌다. 막 행주로 닦아 물기가 끈적하게 남은 것이 느껴졌다.

 

끈적끈적한 그 위로 두 손가락을 세워서 무료한 손장난을 친다. 그러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가 앉은 곳은 남선우의 영정 사진이 제일 잘 보이는 빈소 바깥 자리였다.

 

양복을 차려입고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린 영정 사진이 꽃에 싸여있었다.

 

‘고딩 때랑 똑같이 생겼어.’

 

무심코 실소가 나왔다. 저 사진은 대학을 졸업하고 찍은 이력서용 사진이었는데, 아마 대학 입학 원서에 들어간 사진과 겹치면 모난 곳 없이 겹칠 것 같았다.

 

대학 입학 원서 사진도, 이력서에 넣었을 저 사진도 전부 신하성이 직접 찍은 거니까.

 

‘아닌가? 좀 달라졌나? 워낙 오래 봐서 다 엇비슷해 보여, 그냥.’

 

신하성과 남선우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까지 함께 나왔다.

 

하성이 선우와 같은 곳에 가겠다고 어찌나 애를 썼는지, 같은 대학에 붙고서는 평생 쓸 머릴 다 썼다며 징징댈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오래 볼 생각 없었는데.’

 

진심이었다. 장례식까지 올 줄은 정말 몰랐다. 끽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달쯤 지나면 연락 끊기겠거니 했지.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접점이 될 만한 게 전혀 없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희한하다 못해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하성은 1반, 남선우는 맨 끝 11반.

 

신하성은 밴드부 보컬, 남선우는 독서부 부장.

 

신하성은 어떤 무리에든 편하게 끼며 몰려다녔고, 남선우는 친한 사람끼리 조를 짜라고 하면 간신히 남겨지지만 않는 정도였다.

 

시간표도 전혀 달랐고, 선택과목이 겹치는 것도 없었고.

 

'사귀게 된 것부터 신기한데.'


하성과 선우는 고등학교 3학년 초부터 사귀기 시작했었는데, 닮은 거 하나 없는 두 사람이 온종일 붙어 있었더니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신혜성이 방학 동안 남선우 약점 잡아놓고 괴롭힌다더라, 협박당하고 있다더라, 남선우를 장난감처럼 데리고 논다더라 하는.

 

‘내가 걜 어떻게 협박하고 괴롭히는데. 했으면 내가 아니라 걔가 했지.’

 

남선우는 늘 당차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하성보다 10cm는 족히 더 작으면서 꼬박꼬박 따지고 들어 사람 말문 막히게 하는 재주도 있었다.

 

[야, 너랑 있으면 나만 너무 매달리는 것 같아. 너랑 사귀면 복권 1등 당첨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널 좋아했을까.]

[나랑 사귀는데 복권 1등 당첨까지 필요한 거면, 그건 날 사랑한 게 아니고 복권 당첨금을 사랑한 거잖아. 실망이다, 신하성.]

[말을 말자.]

 

오히려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건 걔가 더했는데. 사귀는 사이에 사랑한단 소리 듣는 게 그렇게 어려우면 서러워서 어떻게 사냐.

 

신하성이 힘주어 문 입술 끝이 터졌다. 입가에서부터 입 안으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네가 지금 나를 봤으면 또 아득바득 소리나 쳤겠지. 이미 다 지난 일에 미련을 가져서 뭘 어쩌고 싶은 거냐고, 너는 네 인생 살아야지 평생 이러고 있을 거냐면서.

 

‘보고 싶다.’

 

너 살아있을 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진짜 싫었는데, 없으니까 있는 게 나았나 싶고.

 

신하성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눈이 갑갑했고, 사람 없는 장례식장 내부가 흐릿하게 보였다.

 

네가 뭐라고 하든지 지금은 네 잘못이라고 하고 싶었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보든가. 기왕이면 랩으로 해 봐. 웃기라도 하게.

 

‘……내가 미쳤지.’

 

쟨 죽었는데 난 추억이나 팔면서 혼자 놀고 있네.

 

하성은 순간 밀려오는 자괴감에 잠시 굳었다. 추억팔이도 같이 추억을 같이 즐겼던 사람이 있어야 재밌는 거지, 혼자서 축축이 젖어만 있으려니 우산도 없이 장맛비를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물며, 하성과 선우의 일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여기에서는 더더욱.

 

“선우 친구?”

 

장례식장 빈소 바로 앞. 그게 하성이 선우와 사귄 지 6년만에 처음으로 선우네 어머니를 뵈는 자리였다.

 

선우랑은 언제 친해졌어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요. 어머, 엄청 자세하게 기억하네요. 네, 대학교도 같이 다녔고 많이 친했어요. 대학교도? 선우는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해 주지. 왜 말을 안 했대…….

 

속상해 보이는 그녀 앞에서 하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친구는 아니고요. 신하성에겐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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