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표지
불친절의 법칙
profile image
신민영
70화무료 3화

자유 연재

조회수 56좋아요 0댓글 0

부서의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은 인텔리커피 무역2팀의 계약직 직원 소연.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친절한 여자’ 역할을 자처하지만, 애를 쓸수록 삶은 도리어 더 고단하고 외로워진다.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지쳐가던 그녀 곁에 선 한 남자, 정관우.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이 내게 불친절한데, 나라고 세상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지.”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그가 알려주는 ‘불친절의 법칙’에 스며든다. * * * “나를 좋아하나?” 착한 눈동자로 소연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관우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어서 대답하라는 듯 소연을 재촉했다. 소연은 숨이 찬 사람처럼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새된 목소리로 망설이듯 대답했다. “저는…….” “너는?” “과장님이 이러시는 거 싫어요.” “어떤 점이?” “이렇게 헷갈리게 하는 거 싫어요. 내도록 그러고 계시잖아요. 계속 혼란스럽게 만드시잖아요!” “내가?” “네, 과장님이요. 그러니까 대답할 수 없어요. 안 할 거예요.” 그때, 토라진 소연의 입술에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관우의 입술이었다. 그의 입술에서는 박하 향이 났다. 소연의 눈이 번쩍 뜨인다. 관우가 살며시 입술을 떼고 다시 소연을 본다. “이제 대답해봐. 김소연은 나를 좋아하나?” “과장님…….” “왜 눈치가 있다가 말아.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으면 계속 그렇게 알면 되지. 왜 헷갈려.” 계약직, 경력직, 여성, 부하직원…… 먹고 먹히는 정글 같은 사회 속, 약자들이 찾아가는 소박한 낭만과 찬란한 희망, 그리고 사랑.

#로맨스#사내연애#상처남#냉정남#능력녀#순정녀#성장물#힐링물#현대

#프롤로그



북적이는 만원 지하철, 탁한 숨을 토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지분거리는 불쾌한 손길을 견뎌내던 어느 날 아침, 소연은 문득 수명록(壽命錄)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의 남은 목숨을 기록해놓은 명부가 떠오를 만큼 출근길이 고통스러웠느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만 회사에서의 남은 수명이 고작 1년 남짓할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1년 11개월. 처음 그 정도의 수명을 허락받았을 때는 그게 짧은 줄을 몰랐다. 당장 한 달을 살아낼 월급이 필요했고 어디에서 일하냔 사람들의 질문에 그럴싸하게 포장할 소속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만큼만 있어도 당분간은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동공을 키우는 대기업에서 1년 11개월을 보내면 앞으로의 인생이 세련되게 풀려나갈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 시간이 이 고달픈 출근 시간만큼 더디게 지나갔다면 남은 수명의 초가 짧아지는 것을 이렇게까지 안타까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이라는 것은 너무도 상대적이어서 오래 머물러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에게는 되레 눈물이 날 만큼 짧은 법이다. 마치 허파가 수명을 다해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진 노파의 마지막 봄과 같달까.

계약직 사원의 날들은 노인의 봄이다. 짧고 무기력하다.

소연은 신입사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비단 신입사원 교육뿐만 아니라 정직원들이 받는 모든 업무교육에서 늘 그녀는 배제되었다. 계약직 직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일을 할 때, 소연은 그들만큼 매끄럽지 못했다. 게다가 능력을 향상할만한 마땅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를 노인에게 약동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 드문 것처럼, 그녀의 상황 역시 그랬다. 계약직 사원을 보며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니까’라는 마음을 품는 것은 노인을 향해 마치 ‘어차피 곧 죽을 테니까’라며 잔인한 시선을 보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노인을 위해 양지바른 곳에 의자 하나를 놓아주는 것처럼, 회사는 부서 한 귀퉁이에, 어정쩡한 자리에 책상 하나를 내주었을 뿐이다.

소연은 오늘도 그 영양가 없는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된 출근길을 걷고 있었다.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녀의 수명록은 하루를 더 지워낼 테고 허파는 그만큼 더 졸아붙어 온몸을 들썩여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인텔리커피에서는 정규직 직원들이 하는 일과 계약직 사원이 하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정규직들이 결정하고 통보하면 그 부스러기 일을 모아 이어붙이는 일은 계약직 직원의 몫이 된다.

일테면 지금처럼 우편을 발송하는 일 같은 것. 소연은 출근해서부터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600통이 넘는 우편물을 접고 넣고 붙이느라 엉덩이 한 번 떼지 못하고 있었다. 소연은 지문에 덕지덕지 묻은 시커먼 딱풀의 흔적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그것이 인텔리커피에 어떻게든 붙어있고 싶어 하는 제 모습처럼 느껴졌다.

“소연 씨, 점심 먹어야지?”

윤 팀장과 김 대리가 소연의 파티션을 똑똑 두드렸다. 소연은 조금 서둘러야 오늘 내로 우편 발송을 할 수 있다는 말로 그들의 친절에 적절히 대꾸했다.

“김 대리, 뭐 했어? 좀 도와주지 않고.”

“에이, 팀장님. 저도 짬이 있는데 풀칠은 좀…….”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고객센터이용 약관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유료 콘텐츠 제공 약관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

Copyright © viewcommz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