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6년간의 전쟁을 마치고 약혼자가 돌아왔다. 그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데리고서. 그 여자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공작부인의 의무만 강요하는 무책임한 약혼자. “레일라, 넌 아직 공작부인이 아니야.” 그가 무심하게 뱉은 한 마디에 나는 파혼을 결심했다. * * * “제가 어디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뒤늦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는 걸 자각한 나는 황급히 수습했다. “송구합니다, 폐하. 이런 걸 물어보려던 것이 아니라 그게…….” [뭐든.] 칼리안이 내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웃고 있다고나 할까. [나라를 팔아먹는 게 아니라면 뭐든 해도 돼. 지금 그대는 나의 대리인이니까.] ……정말 제가 나라를 팔아먹으면 어쩌시려고요?
Chapter 1. 약혼자가 돌아왔다.
#1
제국의 검으로 불리는 윌리엇 공작가.
내가 윌리엇 공작가의 하나뿐인 후계자, 필렌 윌리엇과 약혼을 하고 공작가로 들어간 건 14살 여름이었다.
감사하게도 윌리엇 공작 부부께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지방 귀족의 딸인 나를 친딸처럼 여겨주었다.
맛있는 거나 좋은 게 있으면 필렌보다 내게 먼저 가져다주었고.
티파티나 사교 파티에 참석해서도 필렌이 아닌 내 칭찬을 더 많이 했다.
필렌은 그걸 항상 불만으로 여겼고, 날 볼 때마다 이 일에 대해서 투덜거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그건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검술 수련을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온 필렌은 날 보자마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혹시 너와 내 부모님이 바뀐 게 아닐까?”
“그럴 리가 없잖아, 필렌.”
나는 보고 있던 책을 덮으며 살포시 웃었다.
“넌 누가 봐도 공작 각하와 닮았는걸.”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정말이었다. 필렌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예상이 될 정도로 그는 윌리엇 공작과 똑같이 생겼다.
생긴 것뿐일까. 검술 실력도 닮았고 식성도 닮았다.
하나 불행히도 머리는 닮지 않았다.
윌리엇 공작께선 수재까진 아니더라도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필렌은 검술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윌리엇 공작 부인의 말에 따르면 제국어도 겨우 깨우쳤다고 했다.
“레일라, 네가 필렌의 머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녀는 내가 필렌과 정식으로 약혼하기 전부터 종종 내 손을 잡고 간곡하게 말하곤 했었다.
“아둔한 내 아들이 못하는 걸 네가 아내로서, 공작 부인으로서 채워주렴. 필렌을, 윌리엇 공작가를 잘 부탁한다, 레일라.”
당시 나에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기에 나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나는 윌리엇 공작 부인을 따라다니며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배웠다.
그것만 해도 바쁜데, 공작까지 은근슬쩍 그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준 탓에 생각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필렌은 검술 훈련으로 바빴고.
그렇게 서로가 바쁘다 보니 약혼을 했어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둘의 사이가 나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으레 연인처럼 아주 사이가 뜨겁거나 단짝 친구처럼 아주 친밀하지는 않았지만, 꽤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가끔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그 나이에 맞는 농담을 하고 장난도 많이 쳤다.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부터 시집살이하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괜한 참견이었다.
나는 윌리엇 공작가에서의 삶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이제야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루하루가 꿈같이 행복했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행은 느닷없이 닥쳤다.
* * *
내가 필렌과 약혼한 지 2년이 됐을 때였다.
나는 황명을 받고 잠시 영지를 비운 윌리엇 공작 부부를 대신해서 영지를 관리하고 있었다.
원래는 필렌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나보다 공작가의 사정을 모르는 그에게 영지를 맡길 수 없다는 공작 부부의 강력한 의견에 따라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우르르, 쾅-!
한참 서류를 보던 중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리자 창밖을 쳐다봤다.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려는 듯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영지민들에게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내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저택의 하녀장인 미사가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웃었다.
“아가씨께선 지금의 마님처럼 훌륭한 공작 부인이 되실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미사?”
“그럼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공작 부인은 내 우상이었다. 한데 그녀처럼 될 거라고 하니 기분이 좋아져 나는 옅게 웃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지.
나중에 공작 부부가 돌아오면 깜짝 놀라게 할 생각으로 다시 서류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덜컥, -쾅!
노크도 없이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는 저택의 하인이었다.
“이게 무슨 무례한…….”
“아, 아가씨! 큰일 났습니다!”
미사가 하인의 무례한 행동을 지적하기도 전에, 하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것도,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전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에 미사가 인상을 팍 쓰며 시종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나는 미사의 팔을 잡은 뒤, 하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저리 다급하게 달려와 소리치는 일이라면 분명 큰일일 테니,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건데.
“주인님과 마님이 탄 마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
내 판단은 정확했고, 하인이 알려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미사도 당황하며 눈을 홉떴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어? 공작 각하와 공작 부인께선 무사하신가? 아니면…….”
“그, 그것이…….”
거기까진 모르는지 하인이 주춤했다.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2025.10.28 16:07
올라온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뷰컴즈 주식회사
대표 : 김학성 | 전화 : 1811-8389 | 이메일 : help@gling.co.kr
사업자 등록번호 : 492-88-01088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2-서울영등포-1768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 171, 13층 13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