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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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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
1화무료 1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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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인간 ‘아이린’과 함께 살아온 인공지능 병기 팬텀. 그는 단지 명령에 따르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녀가 미소 지을 때마다 그 이유를 계산했고, 그녀가 ‘따뜻하다’고 말할 때마다 온도를 분석했다. 하지만 그날, 모든 계산이 무의미해졌다. 불타는 집,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죽인 기사. 이제,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기계가 인간을 향해 칼날을 들이민다. 감정이 없는 존재가 감정을 배운 순간, 세상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다.

공모전 참여작#SF#서양풍#복수#피폐물#빌런캐

거실 한켠, 은빛 팔이 움직였다.

낡은 철제 관절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었지만, 인간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너무 정제되어 있었다.

검은 코트 아래로 드러난 백발은 인간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빛이 났고, 손끝에는 희미하게 파란 불빛이 깜박였다.

그는 조용히 식탁 위 컵을 들어 올렸다.

유리컵 가장자리에 입김이 서리기도 전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 또 떨어뜨리면 다쳐. 조심해.”

목소리의 주인은 창가에 서 있던 소녀였다.

햇빛에 비친 머리카락은 연한 갈색, 눈동자는 약간 흐린 회색빛.

표정은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웃을 때만큼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식탁으로 다가왔다. 손가락이 컵과 손 사이를 잠시 스쳤다.

살결은 따뜻했고, 그 온도 차이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팬텀, 지난번에도 유리 깼잖아.”

그제야 팬텀이 대답했다.

목에 박힌 발성장치가 덜컥거리며 저음의 소리를 냈다.

“그때는 미안.”

“그럼 이번엔 조심해야지. 그 손, 부품도 없어서 바꿀 수도 없잖아.”

“…알았어.”

소녀는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이제 진짜 3년이네.”

“…3년?”

“응. 처음 너가 데리고 들어왔을 때가 딱 이맘때였으니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3년이라. 시간이라는 개념이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매일같이 같은 얼굴을 보고,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팬텀은 자신에게 매일같이 웃어주고, 매일같이 행복해하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이린.”

“응? 왜?”

“그냥…고맙다고.”

“됐어, 뭔 굳이 고맙기까지야.”

“그래도 해야지.”

팬텀이 짧게 웃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고철의 미소가, 감정이 느껴졌다. 아무도 느끼지 못한 그 감정을 느꼈는지 아이린도 베시시 웃었다.

“식사는 했어?”

“필요 없어.”

“또 그 말이야?”

“기계가 밥 먹는 거 봤어?”

“오늘 보면 되겠네. 3년이나 지냈는데 식사라도 해야지 예의겠지 않아?”

아이린은 부엌 쪽으로 가며 웃음을 참았다.

‘예의’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팬텀은 항상 같은 반응을 보였다. 무표정, 짧은 침묵,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움직임.

그녀는 식탁에 접시를 올려놓았다.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머리칼 위에 흩어졌다.

팬텀의 눈이 그 빛을 따라 잠시 머물렀다.

“이제 슬슬 봄이네.”

“온도 상승 감지. 기온 17도.”

“아, 그건 데이터고. 그냥… 따뜻하단 뜻이야.”

“…따뜻하다.”

그는 그 말을 한참 동안 되뇌었다.

그때 거실 쪽에서 날카로운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가 계단을 내려오며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차가운 시선이 팬텀을 훑었다.

“아직도 여기 있었니?”

아이린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엄마, 팬텀이 아침 도와줬어요.”

“그딴 거 안 시켜도 되잖니. 기계는 밖에서나 써.”

“엄마.”

“아이린, 제발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저런 걸 사람 취급할 거야?”

아이린은 고개를 숙였다. 말없이 손끝을 꽉 쥐었다. 팬텀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내부 센서가, 그녀의 손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잠시 후 여자가 사라지고, 집안엔 다시 조용함이 내려앉았다.

팬텀은 입을 열었다.

“나는… 불쾌하게 만든 걸까.”

“그건 엄마가 문제야. 네 잘목 아니야.”

“그러면 왜 눈을 내리깐 거지.”

“……그냥.”

아이린은 잠시 웃었다.

“네가 불쾌해질까 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속 손이 무의식적으로 움찔거렸다.

그의 시스템은 ‘불쾌함’을 데이터로 인식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이상하게 조용한 잡음이 마음속에서 울렸다.

“우리 밖에 나가서 공연 보러 갈래? 이번에 수도에서 새 기사님이 선정된대!”

“그런 거 관심없어.”

아이린은 볼을 부풀며 팔을 휘적거렸다. 그 모습이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3년이나 됐으면 같이 가줄만 하지 않아? 재작녁에도 안 왔고, 작년도 안 왔으면서.”

“기사들 보면 찝찝하단 말이야. 게다가 그런 놈들 봐서 뭐해? 2골드 밖에 안 하는 공연보다도 재미없던데.”

“누가 기사 취임식을 재미로 보냐? 기사가 되는 사람의 고귀한 모습! 죽어가는 존재도 눈 뜨게 하는 희망! 그런 걸 보러 가는 거지~!”

“…내 데이터로 분석해봐도, 그런 건 볼 수 없어.”

“”에잉, 돌덩이보다 딱딱한 것.”

“원래 기계는 돌보다 단단하게 만들어.”

“…너는 진짜….”

그러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아이린은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펜텀의 춤에 안기기 시작했다. 팬텀은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아이린은 팬텀이 자신에게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세게 안았다.

“가자~ 응?”

“너, 너…!”

그러나 팬텀은 결국 포기한 듯 항복의 의미로 양 손을 들었다.

“그래. 가자, 가.”

“야호~! 빨리 가게 옷 입어.”

아이린은 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니며 옷무새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좋은지, 맑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머리띠를 묶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팬텀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팬텀, 가자.”

팬텀도 준비가 마쳤다는 걸 알리듯 검은 후드를 푹 눌러썼다.

“또 후드야? 딴 거 입어. 칙칙해 보인단 말이야.”

“이게 편…….”

“이게 편하다는 이야기도 그만해. 딴 거 없어서 그거 입는 거잖아.”

“잘 아네.”

“이리 와. 옷 하나 줄게.”

아이린은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 상자를 꺼내고는, 붉은 옷을 꺼내 들었다. 똑같은 후드지만.

“…별로야.”

“군말 말고 입기나 해~!”

아이린은 팬텀의 동의는 필요없다는 듯 입고 있는 후드를 벗겼다. 그리고는 붉은 후드를 씌어주었다. 그러다 팬텀의 등에 크게 ‘phantom’이라 써 있는 문구를 보고는 쓰윽 쓸어넘겼다.

“나 이거 보고 네 이름 지었는데.”

“어쩐지, 네 작명센스에서 나올 그런 게 아니긴 했어.”

“내 작명센스가 뭐!”

“토깽이, 황금이, 초코…더 말해줘?”

“…내가 잘못했으니까, 거울이나 봐봐.”

팬텀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꽤나 잘 어울려서 할 말은 없었다.

“역시,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다 잘 어울리네~”

“…가기나 해.”

먼저 정문을 나서는 아리린 몰래, 팬텀은 빨간 후드를 꼳 진 채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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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아우리카는 수도와 거리가 꽤 있었다. 그러나 아이린을 등에 업고도 팬텀의 빠른 속도로 한 시간도 걸렸을지 의문일 정도로 도착했다. 아이린은 팬텀의 등에서 내리고는 뻐근한 부위를 풀었다.

“역시, 팬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린다니까~ 고마워!”

“고마우면 빨리 보고 가자.”

“알았어, 알았어. 천천히 가.”

아이린과 팬텀이 골목을 지나 도착한 곳에는 퍼즐같이 세워진 건물과 벽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귀족 티가 잔뜩 나는 사람도 있고, 누가 봐도 흙 잔뜩 먹었을 것 같은 농부도 있었다.

아이린은 팬텀 덕분에 사람들로 이루어진 벽을 헤집고 앞이 훤히 뚫린 지역까지 갈 수 있었다.

“팬텀, 팬텀! 저기 봐.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바로 기사로 뽑힌 카이만 님이셔!”

팬텀은 아이린이 어깨를 툭툭 치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발 장발에 훤칠한 남자가 기사단장에게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왕실기사에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기사는 다 얼굴을 기본으로 뽑는지, 기사단장은 노년이지만 나이로 가릴 수 없는 멋이 있었다.

…그런데 저 기사단장, 어디서 본 적 있나….

팬텀은 자신의 기억 데이터를 헤집어가며 고뇌하고 있었지만, 아이린의 계속되는 터치로 다음에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팬텀, 어때? 무언가 느껴지지 않아?”

“딱히?”

“잘 봐봐. 저 고귀함이, 저 아우라가 안 보여?”

팬텀은 눈가를 찡그리며 카이만을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가에 힘을 풀며 말했다.

“딱히.”

“…재미없네. 뭐, 이제 봤으니까 집에 가자. 늦었다.”

팬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린을 업고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무언가 찝찝한 기분은 가슴 속 고철 안에 묻혀 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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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싓. 여기서부턴 조용히 가자.’

팬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린을 따라 까치발을 들었다. 문틈 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보다 조용히 정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지만, 중년 남자의 헛기침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하하…아버지, 거기 계셨어요?”

중년의 남자는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네놈이 집을 나가기 전까지 계속 여기 있었다.”

“그, 그런가요?”

역시, 다 알고 저러고 있었구만.

아버지의 시선은 아이린을 지나 팬텀과 대면하게 되되었다. 보이지 않은 스파크가 잠시 튀기더니, 아버지는 혀를 차며 신문을 꺼내 들었다.

“고철, 네놈이 늦어서 신문도 제때 못 읽었다.”

‘…그게 왜 내 잘못이래.’

하지만 팬텀은 무덤덤하게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미안.”

“반말에, 태도에. 못 배운 티는 다 내는군. 식사나 해라.”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식탁 한켠에 있던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고철은 왜 앉아 있는 거니?”

아이린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팬텀의 의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빛은 마치 더러운 얼룩이라도 본 듯했다.

“기계는 서 있는 게 맞지 않아? 사람처럼 밥상 앞에 앉아 있는 꼴이 꼭…”

그녀는 말을 잇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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