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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었다고 세상을 멸망시키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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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별의첫손님
13화무료 13화

자유 연재 | 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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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도구로서 영웅의 삶은 불행하고 무감각했다. 그래야만 했을 999번째 생. 그 사람과 아이를 낳고, 특별하다는 게 무엇인지 감정이 회복되려던 때, 영웅은 늘 그렇듯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시작된 천 번째 생. 이전 생의 여파가 채 사라지기도 전, 임무에 따라 ‘세계수의 정원사’로서 차원 이방인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 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잘 지내라고, 해주세요. 이름, 불러, 주면서요.” “이름은... 로이, 예요....” 경악스럽게도 첫 번째 차원 방문자는 다시는 볼 수 없다고 믿었던 제 아이, 로이 세이크리프였다. 기적이었다. 그러나 한편, 영웅이 구원했던 999번째 세상은 다시 멸망해 있었다. “그, 사람이...! 흐윽! 황제가 세상을 멸망시켰어요! 감히, 감히 제 아빠인 척하면서요!!” 그리고 세상을 멸망시킨 원흉이 루디엘 세이크리프, 그 사람인 척하는 황제라고 한다. 반복되는 구원과 멸망의 순환 속에서, 구원의 도구로 살아온 영웅이 처음으로 ‘행복’을 선택하려 한다. 사랑과 기억, 그리고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천 번째 세계의 서사.

공모전 참여작#로맨스판타지#서양풍#아포칼립스#가족물#농사#회귀#환생#빙의#시스템/상태창#무심녀#직진녀#집착남#치유물#잔잔물

000 프롤로그


세상에 이해자가 존재한다는 건 완전히 틀린 말이라 생각해왔다. 이해라는 건 동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천 번을 반복하는 영웅의 과업, 생을 거쳐서도 모든 걸 기억해야만 하는 머리, 행복해질 수 없이 죽어버려야 하는 삶의 마지막 순간들은 이해받을 수도, 이해를 구할 수도 없는…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조건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마음에 들일 수도 없게, 가족이나 연인 같은 긴밀한 관계는 만들 수도 없게 말이다. 


‘이해자라는 게 있을 수가 없는데…….’


모든 결과는 선형적이며 원인값만큼 결과값이 발생한다던 세계수의 말이 전부 맞았다. 

도대체 저 자신이 뭐라고, 내가 뭐라고 그런 대가까지 치러가며 세상을 멸망시킨 건지 이해는 안 되었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세상에 이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겼던 아집을 철회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리아드네.”


찬란한 백금의 머리칼과 창공의 푸른 별을 담은 듯 애틋한 눈동자. 눈앞의 사람은 오로지 저 하나만을 위해 긴긴 시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다. 천 번의 생을 살아온 저조차도 놀랄 만큼 막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다. 

왜 그랬냐고, 도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냐고 다그쳐야 옳은데….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이름 하나에 저 자신이라는 존재가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는 이름 없는 삶이나 다름 없었다.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이니까, 한 사람을 완성시키는 단어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이름이 불릴 일을 줄여가며 고립해오던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던 세월들의 집합체가 단숨에 땅으로 내려앉으며 온전해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퇴적된 채로 두었던 시간과 기억들이 모두 와해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루디엘.”


그렇게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와는 완벽하게 다른 의미로 제 이해자를 입에 담아냈다. 그런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는 따스한 빛깔을 담아내고 있었다.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포용적이고, 시간을 초월해서도 변치 않을 것처럼 생생했다. 마치 영원을 약속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시선에 묶인 듯 루디엘은 침묵했다. 조용히 볼을 타고 쏟아지는 눈물의 강은 처연하기까지 했다.

아리아드네는 이제는 익숙해진 움직임으로 입술을 늘여 배시시 웃었고, 팔을 뻗어 제 사람의 눈물을 닦아내며 엄지로 볼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리곤 왜 우느냐고 입모양으로 물으며 다정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이름을… 이름을 불러줬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부르신 건지… 다 아는데……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잖아요…….”


그의 대답에 가슴이 벅차 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고립된 세상 속으로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함께 주저앉아 손을 잡고 몸을 감싸 안아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꺼워서, 그의 눈물이 저만을 위해 흐르는 것만 같아서 어쩐지 웃음이 났다.


“지금까지 많이 불러줬는데, 부족했나봐요?”

“그건……! 아리아드네와 제 사이를 인정하지 않는 공허한 부름이었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가짜 이름으로나 부르고…….”


울먹이며 따지는 루디엘에 아리아드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런 아리아드네의 표정 변화에 잔뜩 울상이던 루디엘의 표정이 더욱 거침없이 일그러졌다.


‘왜 갑자기 헛다리를 짚지?’


아무리 그가 꾸준히 제 정체를 부인했어도, 이전 생인 아세리아처럼 보일 법한 행동을 하며 그를 특별한 사람처럼 대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디엘 또한 제 정체를 알아본 것이었지, 그게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제가 아세리아인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루디엘이라고 정확히 부르지 않은 게 그렇게 서운했나. 그건 때가 온다면, 세계에 비로소 구원을 이룩하고나면 부르려고 아껴둔 이름이다. 


‘벌써부터 진짜 이름을 부르는 건 계획에 없었지만.’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걸 봐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잠시의 간극 동안, 무슨 상상을 한 건지 루디엘은 한 수 더 뜨기 시작했다.


“이제는… 때가 온 건가요? 사실을 다 알게 되었으니까… 제가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걸 전부 알게 되었으니까…!”

“좀… 굉장히 황당하긴 했죠.”

“…….”

“내가 죽었다고 세상을 멸망시키다니요.”

“죄, 허으윽! 송해요, 흐읍, 이제, 이제는… 죗값을 물으려는 거죠…? 서, 설마 버리려고, 버리려고! 마지막으로 잘해주면서 정체를 밝히시려는 건, 가요…?”


정확히 따지자면, 지금도 정체를 직접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넌지시 말해줄 수는 있겠지. 세계를 멸망시켜버린 황당무계한 일도…… 이제는 전부 이해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모른 척 일관하지 않아도 될 거다.

아리아드네는 말문을 열기 위해 눈을 똑바로 맞춘 채 미소를 띠었고, 시선을 마주한 루디엘은 놀라 펑펑 울기 시작했다.


“흐윽, 흐으윽! 죄, 죄송해요! 그, 래도, 어떻게 만났는데……! 무슨 짓까지 했는데! 버리지 마세요, 저 버리지 마세요! 버리면 안 돼요!”

“안 버려요.”

“그럼, 요? 크읍, 안 버리면……. 원래부터, 가진 적, 흐윽! 없었으니까… 흐으윽! 버리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


말을 곡해까지 하는 루디엘에 말문을 잃었다.


“그러면, 그러면… 크흡! 그동안 왜 잘해줬어요? 으으…! 진짜 아세리아, 흐윽! 님인 것처럼 행동하고! 부탁한 거는 다 들어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고! 딸기도 주고……! 왜 잘해줬어요? 줍지도 않을 사람인 거였으면 왜 잘해준 거였어요? 그럼 지금까지처럼… 흐윽! 계속 모른척 해주면 안 돼요? 제가 잘못한 거 알면서도, 크흑! 덮어준 거였잖아요……. 왜 이제와서…….”

“안 버린다고요.”


단호하게 말해보았지만 이미 루디엘의 눈동자는 불안과 광기로 뒤덮인지 오래였다. 눈알 돌아가는 모양새가 혼란의 악마라도 빙의된 듯 요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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