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해피엔딩은 없었다. 백설공주는 전쟁에 휘말려 사라지고, 신데렐라는 독이 든 찻잔 앞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그렇게 파괴된 동화의 잔해 위에서- 끝나지 않은 감정의 서사가 다시 쓰인다. 감정을 잃고 살아가는 신데렐라의 딸, 아리안느. 백설공주의 잔상을 품고 미소 짓는 북부 대공, 이반. 기적이 아닌, 단 한 사람의 온기가, 얼어붙은 마음을 천천히 녹여간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 건가요…?” “그야,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니까.” 사랑을 잊어버린 사람과, 사랑을 기억나게 해주는 사람. 이건, 그 두 사람의 이야기. -인물 소개- 아리안느 폰 루시엘라 헤센카겔[여자주인공] : 남부 트레이티 왕국의 공주 / 신데렐라의 딸 어머니의 끔찍한 죽음 이후,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타자화하며 감정을 거세했다. 감정을 불필요한 변수로 치부하며 살아가던 그녀의 앞에, 이반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오류가 발생한다. 요하네스 반 스노우 비테게(이반)[남자주인공] : 북부 네이보르 공국의 대공 / 트레이티 왕실의 사생아? 능글맞고 가벼운 겉모습 뒤로 냉정한 통찰력과 계산을 감추고 있다. 아리안느의 뒤틀린 성향을 꿰뚫어 보고, 그녀 스스로를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여길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헌신한다.
옛날 옛적 한 왕국에, 눈처럼 새하얀 피부와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지닌 공주가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공주는 그만큼 수많은 사람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공주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죠.
그리고 그 말은, 새 왕비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왕비는 사냥꾼을 보내 공주를 죽이게 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변심하여 공주를 살려주고, 오히려 도망치게 내버려 뒀죠.
공주가 살아있음을 안 왕비는 직접 공주를 찾아갔습니다. 일곱 난쟁이와 숲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던 공주에게, 노파로 변장한 왕비는 레이스 끈으로 공주의 목을 졸랐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살아남았습니다. 저녁에 돌아온 난쟁이들이 끈을 잘라냈기 때문이죠.
공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 왕비는 다시 공주를 찾아가 이번엔 독이 묻은 빗으로 머리카락을 빗겼습니다. 머리에 독이 퍼진 공주는 쓰러졌고, 공주가 죽었다고 확신한 왕비는 그 자리를 떠났죠.
하지만 공주는 그럼에도 살아남았습니다. 공주를 발견한 난쟁이들이 공주의 머리에서 빗을 빼냈기 때문이었어요.
이번에도 공주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 왕비는 또다시 공주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독이 든 사과를 공주에게 건넸죠.
공주는 아무런 의심 없이 사과를 베어 물었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이번에는 난쟁이들도 어쩔 도리가 없어 유리관에 공주를 넣고 장례를 치러주었죠.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이웃 나라 왕자가 그곳을 지나던 중 공주를 발견했습니다. 공주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왕자는 난쟁이들에게 후한 대접을 약속하고 관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관을 통째로 챙기기엔 그 무게가 만만찮았고, 하인들이 관을 옮기던 중 덤불에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공주의 목구멍을 막고 있던 사과 조각이 빠져나와 공주가 살아나게 되었고, 깨어난 공주를 본 왕자는 그 길로 공주에게 청혼하여 왕국으로 데려가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왕자와 공주는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가, 흔히들 알고 있는 내용일 겁니다. 그렇죠?
그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
공주의 아버지, 그러니까 왕은 공주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이성을 놓았습니다. 왕국 전체를 뒤져도 공주를 찾을 수 없었으므로, 왕은 비통에 잠긴 심정으로 수색을 포기하고 시체조차 찾지 못한 딸의 장례를 치러야만 했죠.
그런데 이게 웬걸.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나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공주가 살아있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이웃 나라 왕자와 결혼까지 해서요.
당연히 왕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공주가 있을 이웃 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주를 만나고자 했어요. 죽었다고 생각했던 딸을 만나게 될 생각에 왕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이웃 나라로 떠났던 사신이 돌아와 공주의 말을 전했고, 왕은 전에 없을 정도로 크게 노하고 말았습니다.
공주가 사신에게 부탁한 대답은, 명백한 거절이었으니까요.
어째서 공주가 왕의 만남을 거부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건 오직 공주만이 알고 있겠죠. 다만 분명한 건, 거절의 의사를 밝힌 쪽은 공주였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웃 나라에서 공주를 보내주지 않기 위해, 자신과 공주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라고 왕은 여겼습니다.
간신히 벗어난 슬픔과 절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그 화살의 끝이 향한 곳은 이웃 나라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은 이웃 나라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딸을 되찾고, 자신한테서 딸을 앗아간 원수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이웃 나라도 최선을 다해서 막았지만, 중과부적이라고 할까요. 애당초 두 나라의 국력은 비교하는 것부터 실례였던 만큼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은 자신이 가장 총애하던 젊은 장군을 전쟁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장군은 왕이 주는 총애만큼이나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자였습니다.
전쟁터로 향한 장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습니다. 기어이 그는 여태껏 계속해서 그들을 막아 세우던 이웃 나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왕자마저 죽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네, 맞아요! 공주의 남편 되는 그 사람이죠.
그렇게 장군은 이웃 나라의 왕도까지 점령했고, 이내 멸망시켰습니다. 이웃 나라의 왕족들은 전부 처형당했고, 이는 어린아이라도 예외가 아니었죠.
공주는 어떻게 된 거냐고요?
아, 공주는 처형당하지 않았습니다. 왕도를 점령하고 군대가 처음 그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이미 공주는 죽어있었거든요. 왕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를 내버려 둔 채로요.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왕도를 점령하기 직전, 공주를 만나기 위해 최전방에 섰던 왕과 총사령관이었던 장군을 제외하면 말이죠.
물론. 그곳에 있던 이웃 나라의 백성들도 알고 있‘었’습니다만, 왕이 그들을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죠.
……음.
솔직히 공주가 죽고, 백성들이 학살당하고. 이런 건 그리 중요한 얘기가 아니에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공주의 죽음을 목격한 왕이 결국 미쳐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의 손주를 안고 돌아온 왕은 이전의 인자한, 성군의 모습은 조금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충언하는 신하들의 목을 베고. 새로이 후계로 임명한 손주를 제외한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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