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작됐다. “회사 망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붙인 순간, 세상은 아포칼립스 게임으로 바뀌었다. 좀비 사태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기업 식품회사. 신물질 X가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며 서울 전역을 오염시킨 것이다. 그리고 회사 건물은 자동 격리되어, 거대한 던전이자 생존 공간으로 변모한다. 시스템은 모든 직원에게 명령했다. [출근하지 않으면 배급은 없다.] [무단결근 3회 누적 시 퇴출.] 출근 체크를 하면 아침·점심·저녁 세 끼가 자동 지급된다. 5일 만근을 채우면 주말에 집으로 식사가 배송되고, 연차와 월차까지 사용 가능. 이거 완전히 망한 세상 속에서 회사 다니는 거잖아? 그러나 다들 똑같이 회사 생활을 하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배급을 위해 서로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왕따, 뒷담화, 파벌 싸움은 물론이고, 오피스 와이프, 불륜, 양다리 같은 사내 막장 드라마까지. 아포칼립스 속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렇다.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인간 본성. 그 속에서 주인공은 좀비에게 물려도 감염되지 않는 특이체질임이 밝혀진다. 배급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한 유일한 존재, 그리고 회사가 숨긴 진실과 치료제 단서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였다. 회계부, 인사부, 마케팅부… 부서별로 던전화된 회사 빌딩을 공략하며 그는 점점 진실을 파헤친다. 임원진은 배급을 무기로 생존자들을 통제하고, 대표이사는 회사와 융합한 거대한 보스로 변한다.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회사에 복수하듯 치료제를 개발하는 주인공. 보란듯 치료제를 개발하여 복수에 성공하나 싶었는데?
“하, 출근하기 개 싫다…. 나 빼고 세상 다 망했으면.”
은채는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랐다.
매일 사람과 시간에 치이는 하루의 시작.
잠을 잤어도 천근만근인 몸.
사회적 가면을 쓰고 더럽고 하기 싫은, 옳지 않은 일도 해내야 하는 삶.
은채의 머릿속엔 어젯밤 봤던 밈이 떠올랐다.
[직장인이라는 죄로.
회사라는 교도소에서
사무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조직도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정장이란 죄수복을 입고
업무라는 벌을 받고
퇴사라는 석방을 기다린다.]
밈을 떠올린 은채는 피식 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고싶지만 못하는 것이 퇴사 아니던가. 은채는 오늘도 자신의 이뤄지지 않을 소원을 중얼거렸다.
“하, 퇴사하고 싶다. 나 빼고 세상 다 망했으면.”
닭장과 같은 지하철 안에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도 가득했다. 은채는 한숨을 내뱉더니 숨을 깊게 들이켰다.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숨 속에는 어젯밤의 회식 냄새와 화장품 냄새 그리고 싸구려 향수와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침부터 대환장 파티네.’
입을 벌리고 자는 앞자리 아저씨.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 동영상을 보는 옆자리 아줌마.
은채는 생각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이럴 때는 모자란 잠을 채우는 것이 최고이니까.
운 좋게 자리에 앉게 된 은채는 회사일 따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회사에 가서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건 입사 초년에나 하는 일.
입사 10년 차인 대리 최은채는 어떻게 평탄한 하루를 보낼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팀장님이 보고서 가지고 꼬투리 잡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제도 까인 보고서가 떠오르자 고개를 저은 은채는 가방끈을 더 꽉 붙잡으며 단잠에 빠져들었다.
빰빠라 밤-
짧은 단잠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 귓가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것처럼 큰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 하차음도 광고 소리도 아닌 경쾌한 음악 소리.
은채의 눈이 저절로 떠질 수밖에 없었다. 은채의 게슴츠레한 시선은 자연스레 스마트워치로 향했다.
8시 20분.
회사까지는 아직 다섯 정거장이나 남아있었다.
‘아 씨, 누구야? 예의 밥 말아 먹는 놈은?’
떨어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뜬 은채의 눈앞에 보이는 건 게임에서나 보던 반투명한 상태 창.
《축하합니다! 당신의 염원대로 세상이 멸망했습니다.》
눈을 비비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왜? 화장 지워지니까. 그저 잠이 덜깼거니 싶어 눈을 껌벅거렸음에도 상태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회사 가기 싫어서 드디어 미친 건가싶어서.
몇번이나 눈을 깜박여도 상태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그대로였고, 눈을 감았다가 떠도 여전히 보이는 상태 창.
“이건 또 무슨 개같은 일이야.”
은채는 볼을 꼬집어 보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는 찰나.
“꺄아-! 사, 살려주세요!”
귀를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지하철 칸을 가득 메웠다. 은채의 시선은 저절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갔다. 빽빽한 사람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고개를 빼어들고 무슨 일인가 확인하려는데 사람들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별일 아니겠지 뭐.’
“아니 지금 뭐하는 겁니까!”
“밀지 마요, 아저씨!”
밀려나는 사람들, 욕설, 고함, 비명.
아수라장 속에서 기괴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리고.
기이하게 꺾인 고개 하며 앞으로 쭉 뻗은 팔, 어두운 피부, “으어….”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사람을 물어뜯는데, 이건 마치….
“…좀비?”
게임이나 영화에서 보던 좀비였다.
‘…출근 중에 좀비가 나온다고? 이거 촬영인가?’
사람들은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는 듯 바라만 보았다. 그러던 중 한두 사람이 좀비화가 시작되자 소리를 지르고 옆 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걔 중엔 핸드폰을 들어 좀비 떼들을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읍….”
은채는 본능적으로 의자 위로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좀비들은 눈은 둔감하나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 미친… 평소 영화나 소설을 많이 본 나 칭찬해.’
스스로 자조 섞인 칭찬을 떨고 있는데, 그 순간 좀비화가 진행된 누군가가 뛰어오다가 은채와 눈이 마주쳤다.
‘저, 저건 기획팀에 김 부장님?’
같은 지하철을 타는 타 팀의 김말곤 부장이었다. 분명 어제도 야근하던 분이 아니던가.
아아. 결국 야근의 끝은 좀비구나.
김부장은 피가 범벅이 된 입으로 “으어어-” 소리를 내지르며 승객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평소 보고서를 독촉하던 장면과 묘하게 겹쳤다.
“이걸 보고서라고 쓴 거야?”라며 윽박지르는 듯한 모습이.
“살려주세요!”
“무, 문 열어!”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 대는 상황은 아수라장, 아니 지옥도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역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지하철에 탄 우리는 공포의 상자에 갇힌 셈이었다.
“으아악! 오지 말아요!”
좀비를 막아보겠다면 휘두른 가방에 잇자국이 찍히고, 손목이 붙잡혔다. 그대로 물린 여자는 또 다른 좀비로 태어났다. 악몽과도 같은 전염 속도에 은채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이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가슴은 쿵쿵거리고 머리가 징징 울리는 가운데, 그녀의 눈에 전광판이 들어왔다. 곧 여의도에 도착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던 지옥도에 한 줄기 빛이 들었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여의도. 여의도역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눈앞의 상태 창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출근 체크 가능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2025.11.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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