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마왕을 처치하는 영광을 얻었으나 동료에서 배신당해 연인과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린 용사. 기억을 잃은 채 오랜 시간 방황하던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마왕. 마왕은 기억을 되찾은 용사에게 복수를 위해 힘을 합칠 것을 제안하는데.
1화
“자요.”
솔로 열심히 나무통 안을 닦고 있던 아서는 고개를 돌렸다. 코끝을 스치는 달큰하면서도 구수한 내음. 고개를 돌린 그는 자신의 앞에 내밀어 진 삶은 옥수수를 볼 수 있었다.
옥수수를 들고 있는 젊은 여인.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붉은 머리칼을 지녔으며 푸른 눈동자는 총명하게 빛나는 그 여인의 이름은 일레나였다.
“막 찐 거예요. 어서 먹어 봐요.”
일레나의 권유에도 아서는 통을 닦던 솔을 놓지 않았다.
“이것만 마저 닦고.”
아서의 말에 일레나는 살짝 볼을 부풀렸다.
“그러다가 식어버린다고요. 식으면 맛없어요. 그리고 밥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거라도 먹어요.”
일레나의 말을 듣던 아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비로소 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줘봐.”
아서가 손을 내밀자 일레나는 바로 옥수수를 건네주었다. 아서는 옥수수를 받자마자 그것을 통으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낱알만 먹는 게 아니라 속대까지 한꺼번에 씹어 먹는 아서를 보며 일레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먹었다.”
“옥수수 속대까지 다 먹는 사람은 처음 봐요.”
“씹다 보면 먹을 만해.”
“제대로 씹지도 않았으면서.”
옥수수 하나를 단숨에 먹어버린 아서는 다시 솔을 집어 들었다.
“자, 잠깐만 이게 끝이에요?”
“더 먹을 게 남았나?”
“아뇨. 그건 아닌데.”
일레나는 뭔가 억울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좀 천천히 먹으면서 쉴 수도 있잖아요.”
“말했잖아.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
아서는 솔을 들어 다시금 나무통을 열심히 닦아내었다.
“그럼 물 뿌리는 거라도 도와줄게요.”
일레나는 그 옆에 있는 물통을 집어 들었다.
“무거우니까 조심.......”
아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순간 일레나가 물통의 무게 때문에 휘청이며 팔을 크게 휘둘렀다.
촤악!
크게 뿌려진 물이 나무통과 함께 아서까지 한 번에 적시고 말았다.
“아.......”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지만 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회색빛 머리칼과 덥수룩한 수염에 잔뜩 묻은 물기를 털어내었다.
“죄송해요.”
“괜찮아.”
“젖었으니까 옷 갈아입으러 가야겠어요.”
일레나는 아서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기에 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
집 안으로 들어간 아서는 자신의 방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가 젖은 옷을 벗자 옷 안에 감추어져 있던 탄탄한 근육이 드러났다. 아서는 겉보기엔 중년으로 보였지만 그의 몸은 잘 단련된 젊은이들 못지않았다.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아서는 입을 열었다.
“훔쳐보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야.”
아서의 말에 문틈으로 그를 보고 있던 일레나는 깜짝 놀랐다.
“훔쳐보는 거 아니에요.”
“그럼?”
“필요한 게 있을까 봐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그나저나 보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이쪽을 보고 있지도 않잖아요.”
“그냥 알아.”
그때 일레나의 시선이 아서의 등으로 향했다. 그의 등은 상처투성이였다.
“아서는 뭐하던 사람이었을 까요?”
“모르지.”
아서는 새 옷을 뒤집어쓰며 말을 이었다.
“아무런 기억도 없으니까.”
그의 말을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잃은 채 6년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떠돌던 그를 홀로 살던 일레나가 거두어준 지 벌써 4년째.
아서는 중년의 남성이었지만 그에게 남은 기억은 고작 10년분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서의 이름은 그 용사님이랑 똑같잖아요.”
일레나는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혹시 아서, 진짜 그 용사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
옷을 완전히 갈아입은 아서는 문을 열고 자신의 방을 나섰다.
“그 아서란 용사는 이미 죽었으니까.”
용사 아서를 필두로 한 9인의 용사 파티는 마왕 ‘카르디나’를 토벌하러 모험을 떠났으며 결국 용사 파티는 마왕 카르디나는 토벌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 파티의 수장이었던 용사 아서와 그의 연인인 성녀 ‘올리비아’는 마왕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마왕을 쓰러뜨리고 세상을 구한 7인은 다시 제국으로 돌아와 영웅으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그들은 용사 아서가 지니고 있던 ‘신의 보구’를 한 파츠씩 나누어 가짐으로써 용사 아서의 의지를 이어나가기로 맹세하였다.
“하긴 그렇네요.”
일레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배시시 웃었다.
“그렇지만 용사 아서가 죽었을 때랑,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랑 시기가 비슷하잖아요? 그건 꽤 재미있지 않아요?”
“별로.”
아서는 그 말만을 남긴 채 방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일레나가 팔짱을 끼듯 그의 팔을 잡았다.
“들어온 김에 같이 밥 먹어요.”
“아직 씻을 나무통이......”
“아서 씨.”
“왜?”
“그 나무통은 제 꺼죠? 그러니 제가 이젠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예요? 맞죠?”
“그렇긴.......하지.”
“그러니까 오늘은 일 끝! 맛있는 저녁 먹고 푹 쉬자구요. 알았죠?”
***
잠시 후.
아서는 테이블에 앉아 일레나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자, 나왔습니다!”
힘찬 목소리와 함께 일레나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는 음식들을 테이블의 위에 올렸다.
“어제도 맛있고, 오늘도 맛있고 내일도 맛있는 스튜랍니다~.”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그릇에 뜨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아서는 입을 열었다.
“일레나.”
“왜요?”
“당분간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게 좋겠어.”
“어째서요?”
“군인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까.”
지금의 제국군은 옛날의 제국군과는 달랐다. 마왕은 쓰러졌지만 마물의 수는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국군은 마물토벌에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제국군은 실적을 쌓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거나 고문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으며 젊은 여자를 보면 억지로 끌고 가 몹쓸 짓을 벌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걱정 마세요. 제 몸 하나 정도는 제가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명예로운 7인’이 있잖아요. 그들이라면 분명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을까요?”
명예로운 7인.
마왕 카르디나를 퇴치하러 떠난 용사 파티의 9인 중, 마왕 퇴치에 성공하고 돌아온 나머지 7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명예로운 7인이 권력을 잡은 뒤로 세상이 더 어지러워진 것도 사실이야.”
“하긴. 마왕이란 인류 공통의 적이 사라졌으니 나라 간에 전쟁이 심해지긴 했죠. 하지만 그게 그들의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타국을 침공하도록 황제를 설득한 것도 그 명예로운 7인이지.”
똑똑.
그때 누군가가 집의 뒷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인가 봐요.”
일레나는 뒷문으로 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펑퍼짐한 낡은 옷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며 손에는 그릇을 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언니. 먹을 것을 좀 얻으러 왔어요.”
후드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일레나는 소녀가 구걸하러 왔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어머, 우선 들어오렴.”
일레나는 소녀를 안으로 들어오게끔 했다.
소녀가 안으로 들어오자 일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들고 있던 그릇을 건네받았다.
“잠깐만 기다려. 여기에 가득 채워서 가져다줄게.”
일레나가 부엌 안쪽으로 들어가고 난 뒤 아서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천에 싸인 길쭉한 뭔가를 매고 있었다.
“그건 꼭 검같이 생겼군.”
2025.11.30 19:31
2025.11.30 19:21
2025.11.3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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