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연재 | 글링
■ 소개 글 운명이라 믿었는데 그 남자의 치밀한 계략이었다. 너를 만나지 못한 발작의 시간, 가슴 가득 소금꽃이 피었다. 내가 단지 미미였을 때, 소금이 반짝이는 바닷가에서 도재혁을 처음 만났다. 도재혁은 나에게 모래를 파라고 지시했다. 나는 돈을 받고 삽질했다. 열일곱 살, 그는 커다란 손으로 내 손을 감싸 그림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숱한 의문을 남겨놓고 떠났다. 스물세 살, 꿈처럼 환각처럼 나타난 도재혁이 위험에 처한 나를 구해 줬다. 역시, 내가 의식을 차리기 전에 사라졌다. 스물일곱 살 현재,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는 운명이라 믿었지만, 알고 보니 도재혁의 계략이었다. 도재혁은 나에게 해명해야 한다. ■ “이름이 뭡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냉정한 그를 노려보았다. “안 들려요?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 “여긴 개인 사유지인데.” 결국 풀등을 가졌네. 갯벌에 도로까지 닦고. 갯벌을 걸어오며 거듭 생각했다. 도재혁은 대체 왜, 그랬을까. 그가 커프스링크를 풀어 장식장 위에 툭 던지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주거 침입으로 신고하기 전에 나가세요.”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한 발짝 다가섰다. “삽질해 줄게요, 돈 줄래요?” 그가 넥타이를 잡아당긴 후 셔츠의 목 단추를 풀다가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경고했지. 내 눈앞에 띄지 말라고.” “4년 전에도 너, 맞잖아.” 4년 전, 밤을 떠올리자 나는 용기가 생겼다. “그날 침대에서 네가 한 짓, 다 기억해.” 나는 도재혁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기다렸다는 듯 그가 상체를 확 숙였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응?” 남자가 눈매를 야릇하게 접어 웃으며 뻔뻔하게 말했다. “그때 못한 섹스라도 해줄래?” 그의 매끈한 구두가 진흙 묻은 내 스니커즈를 툭 쳤다. “벗어.” 나는 냉큼 스니커즈를 벗었다. 도재혁이 내가 벗은 신발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지금, 장난해?” 나는 팔을 교차해 진노랑 꽈배기 스웨터를 벗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를 세웠다. 두 손으로 맨 가슴을 받쳐 잡았다. 중지로 유두를 누르며 굴렸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 “벗었어. 이제 네 차례야. 해명해 봐, 도재혁.” ■ 도재혁 27살. 뉴욕 <녹스> 갤러리 계약화가. 아트 스쿨 시절(17살), 맨해튼 갤러리에서 단독 미술전을 개최. <하얀 소녀> 연작으로 2개의 상을 수상. 천재 소년 화가로 유명했고 예일대 졸업 후 파리를 비롯한 유럽 아트 페어 초청작가로 세계를 돌다 군 복무를 위해 잠깐 귀국. 일곱 살부터 미미의 사진을 봤다. 아버지의 첫사랑,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미친 여자의 딸, 미미를 지켜보는 게 삶의 목표. 가끔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짓을 한다. 미인이지만 어딘가 들끓는 불안한 눈동자가 사람을 빨아 삼킬 듯 흡인력 있다. ■ 미미->지해율 27살. 갤러리 <Traum;트라움> 학예 실장. 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와 폐쇄된 염전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살았다.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해 무심한 편. 도 교수의 별장에서 지내며 혼란스럽고 불안하던 중 엄마의 자살을 목격. 미미에서 지해율이 되면서 냉소적이고 차가운 성격으로 변함. <녹스>와 계약 만료된 도재혁과 계약, 그의 작품을 받는 것이 목표. 게다가 도재혁을 만나 반드시 해명을 들어야 했다. 천연 소금을 파우치에 넣고 다니며 뿌리는 엉뚱한 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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